hinykorea
연재소설 타운뉴스

<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66)

 안동일 작

  “탄압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하겠는가?”

“애 썼네 만천, 이제는 베드로 사도님이라고 불러야 되는가? “
돈화문 통 관아 거리에서 승훈을 맞은 권일신이 그의 손을 잡으며 반겼다. 승훈은 창덕궁에서 막 사신단 해단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직암은 마침 통의동 서방에 들렸다가 사신단  해산 행렬과 마주하게 됐기에 한참을 기다려 그를 맞았던 것이다.
승훈이 북당에서 세례까지 받게  됐다는 낭보는 달포 전에 돌아온 연경 사신단 귀환 선발대의 역관 김인문에 의해 승훈의 서신으로 통보받은 바 있었다.
“ 숙사와 광암 형님 덕분이었습니다. 드릴 말씀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 차차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얼른 집에가서 여독을 푸시도록 하게나”

세례자가 나왔다는 것은 강학 도반들에게는 경사 중의 경사였다.

며칠 뒤 강학 도반들은 명례동 김범우의 집에서 이승훈 귀국 환영연을 열었다. 그때 까지의 도성 안 모임장소 였던 수표동 이벽의 집과는 달리 한의원과 약재상을 겸하고 있는 김범우의 집은 형편도 넉넉했기에 꽤 융숭한 상차림이 있었고 모두들 흥겹게 먹고 마시며 조선 천주교단의 본격적 태동을 기뻐 하면서 앞날을 설계 했던 뜻 깊은 자리였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가졌던 처음이자 마지막 음주 가무와 서화가 있었던 세속적 잔치였다.

이벽과 권일신, 정씨 3형제들 중 약전과 약종이 참석했고 최창현 최인길도 왔고 천안서 이단원, 멀리 전라도 전주의 유항검 진산의 윤지충도 까지 참석했다. 홍낙민과 윤유일이 자리를 함께 했고 이총억과 상문도 말석에 자리했다. 이번 경사에 큰 역할을 한 역관 김인문도 초대 됐다. 가히 강학 성원들이 총집합한 초유의 잔치라 할 만 했다.

좌중의 강청에 의해 승훈과 함께 상석에 앉은 직암은 다음부터 이런 자리가 생기면 꼭 덕조를 상석에 앉혀야 겠다고 생각했다. 함의가 있는 생각 이었다. 승훈이 연경에 머물고 있는 동안 몇번의 천진암 강학 모임이 있었고 둘이 따로 만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 직암과 광암은 천주학의 가르침이 처음 생각 했던 것 처럼 보유론적 입장에서 성리학과 조화를 추구 할 수 있는 학문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독립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천주교는 그 공부가 깊어질수록 점점 성리학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특히 천주교에 포함된 평등사상, 우상 숭배로서 조상의 제사를 금지하는 교리 등은 성리학적 윤리관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것이었다.

또 하나 큰 문제는 천주교에 뜻을 모은 이들  대부분 남인 계열의 소장들 이었기에 언제 다른 당파의 공격을 받을 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비록 임금이 탕평책을 펼치고 있었다고 하나, 붕당의 앙금과 정쟁의 씨앗은 언제나 남아 있었다. 천주교는 저들에게 남인 전체를 공격 탄압하기에 매우 좋은 소재라는 것을 직암과 광암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안정복 등 성호학파의 선배들도 천주교를 따르는 후배들의 학문 경향을 경계하는 전갈을 계속 보내오고 있었다.  학문의 성격을 넘어서 신앙으로 커져가는 천주교는 남인 전체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위험 요소였다.
이를 이겨내자면 강한 조직이 필요 했고 조직에는 질서와 기강이 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덕조 이벽은 신언서판 뭣하나 빠지는게 없는 조직의 수장으로 제격인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천주학에 대한 그의 성찰과 이해는 일취월장 하고 있었다.

약방으로 쓰는 앞채 마루며 마당에 일단 모여 있다가 일행이 얼추 모이자 집 주인 범우의 안내로 사랑채로 들어 섰다.  사랑채  윗방 아렛방의 장짓문을 터  매우 넓어진 큰 방은 정갈하게 치장돼 있었다.
인원수에 맞춰 일인용 팔각 통영 호족반이 정면 상석 두개를 기준으로 두 줄로 마주 보며 놓여 있었다.

“저희 집으로서는 처음으로 양반님 네 흉내를 내봤는데 면구 스럽습니다. 차린게 너무 없습니다.”
집주인 김범우가 뒷머리를 긁으며 한마디 했지만 소반 위의 음식은 주안상과 다과상을 적당히 안배 했는데 그 안목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마도 호족반 이며 짝 맞는 작은 유기 그릇을 갖추기 위해 옆집의 도움을 받지 않았나 싶었다. 왠만한 대갓집들도 이런 잔치 때면 호족반과 유기를 주변에서 서로 빌리곤 했다.

승훈과 직암이 정면 상석에 나란히 앉았고 광암을 왼쪽 첫 자리로 해서 단원 약전 창현등 대개 나이 순 으로 앉았다.
“참 오늘 술은 이 자제군관께서 이번에 연경에서 가져온 모태주와 저희 가양주인 송엽주로 준비했습니다.” 김범우가 한마디 더했다.
소반 위에는 작은 호로병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부잣집에 오니 다르긴 뭔가 다르군.” 누군가 그랬다.
직암이 덕조 이벽에게 눈짓을 했고 덕조가 입을 열었다.
“자 좌정들 하셨으면 한 순배 합시다. 우리 집에서 모였으면 교자상에 면장(국수)과 탁배기 였을텐데 말씀대로 부잣집에 오니 다르긴 다릅니다. 자 옆 사람 잔을 채워들 주십시오.”
그러면서 덕조는 승훈의 잔을 채웠고 직암은 단원과 서로의 잔을 채웠다.

직암은 모임을 주재하라는 뜻으로 그에게 눈짓을 했건만 광암은 사회자 노릇을 했다.
“”자 그러면 좌상이신 직암 숙사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아니,  강학때 처럼 모임을 이끌어 가라고 눈짓 했건만… 내 말이 뭐 필요하겠소, 이렇게 잘 차려준 주인장 김 역관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면서 이번에 정말 큰 일을 해낸 자제군관 만천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를 먼저 들읍시다.”
승훈에게 차례를 넘겼다. 승훈은 선배 동학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소임을 마칠 수 있었다면서 어깨가 무거워 진다는 말로 간단히 인사를 대신했다. 대신 승운은 멋진 선물 꾸러미를 풀었다. 후일 큰 의미를 지니면서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되는 선물이었다.
인사말이 끝내면서 승훈은 범우 에게 눈짓을 했다.
“상 위에 작은 비단 주머니가 보이시죠? 이번에 자제군관 이진사께서 연경에서 가져오신 귀한 선물입니다. 한번 끌러 보십시오. 그래서 미리 놓아 드렸습니다. “
일동이 호족반 위에 놓여 있던 주머니를 끌렀다. 영롱한 구슬 꾸러미가 나왔다.
“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성모님의 매괴군요. 정말 곱습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랬다. 승훈은 모두에게 돌린 것은 매괴 였다.
매괴는 불가의 염주와 같은 것으로 구슬이나 나무알을 열 개씩 구분해 엮고 십자가를 단 천주교의 기도용품이다. 요즘말로는 묵주(默珠), 영어로 로사리오 다. 그때 승훈이 가져온 것은 당시 조선에서는 매우 귀했던 영롱한 유리 구슬로 만든 프랑스제 매괴였다.
좌중이 감탄할 만 했다.

“우리 안 사람이 아주 좋아하겠습니다.”

소문난 애처가 항검이 한 마디 했다.  실제 이날 일동이 받은 매괴, 로사리오는 하나같이 일동의 부인들 차지가 되었다.  이를 받은 부인 들은  너무나 좋아했고 최고의 소장품으로 여겼으며  얼마 뒤 하나같이 성모송에 열심이었고 남편들 저리가라의 신심을 지니게 된다.  이벽의 부인 안동 권씨, 직암의 부인 순흥 안씨, 항검의 부인 평산 신씨, 정약종의 부인 문화 유씨 모두 그랬다.  모두 한다하는 양반 댁  안 주인들 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들 부인, 아녀자 전교에 일등 공신들이 된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희생 됐다.  이때 영롱한 로사리오를 부인들에게 돌아가게 한 하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특히 유항검의 말대로 그의 부인  평산신씨는 어찌나 이를 좋아했는지 다른 패물이 꽤 있었음에도 이 매괴를  한시도 몸에서 떼놓지 않았단다. 목에 거는 것은 아니라는  승훈의 당부가 있었던 지라 목걸이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팔뚝에 치렁  걸고는 때 마다 쳐다보며 그리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고 했다. 그런데 신씨 부인이 정말 좋아 했던 것은 매괴 끝에 달려있는 금빛 십자 고상이었다.  후일 신씨는 동정 며느리에게 이 매괴와 십자 고상을 물려 주면서 그사연을 전해 주게 된다.

일동이 신기한 듯 로사리오를 만지고 있을 때 승훈이 북경에서 배워온 성모송 암송을 선 보였다.

“원래 신자가 되면 식전 식후 기도를 해야 하는데 아직 익숙치들 않으실테니 오늘 공양기도는 성모송으로 하겠습니다.”

“만복마리아,만피성총자,주여이해언;여중이위찬미,이태자야소병위찬미。천주성모마리아,위아등죄인,금기천주,급아등사후。아문。”     (계속)

Related posts

뉴저지 545억불 새 회계년 예산안 확정

안지영 기자

NYT 북리뷰 , 한국계 작가들 작품에 유난히 주목

안지영 기자

뉴저지트랜짓 일주일간 무료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