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작
“기리에 엘레이손 (자비를 베푸소서)”
유항검, 그가 태어난 초남이(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는 호남지역 천주교회의 발상지로 성지(위 아래 사진)로 꼽힌다. 이단원이 내포의 사도라 불리고 있다면 그는 ‘호남의 사도’라 불리운다.
그는 1780년 무렵부터 양근의 권철신 집에서 권철신과 그의 문하생들이 서학을 탐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권철신 형제와 외가쪽 친척 이었고 이종 사촌인 윤지충을 통하여 이벽, 이승훈, 정약전과도 인척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양근 권문의 소식을 꿰고 있었다. 항검의 어머니가 안동 권씨였다. 학구열도 뛰어나 유학의 수준도 높있던 유항검은 당대의 석학인 녹암 철신을 비롯해 영민한 정씨가 3형제가 깊이 빠진 신학문이라면 배우고 따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양근 권씨가를 찾았고 천주교 서적을 처음 접하게 된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어려운 철신 보다는 일신을 먼저 찾았다.
“관검 자네가 왠일인가 이 먼걸음을 다하고” 관검은 그의 자였다.
“직암 형님, 좋은것 있으면 혼자 가지려 하지말고 아우에게도 나눠 주십시오”
관검은 직암을 다른이들 처럼 숙사라고 하지 않고 형님이라고 불렸다.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좋은일 이란것이 무었인가, 있으면 내 기꺼이 나누지. 나같은 서생에게 자네에게 필요한게 뭐 있으려나 모르겠지만서두.”
“서학 말씀입니다. 서학 그것이 그렇게 심오하고 신묘 하다면서요?
“그 얘기구만, 신묘는 모르겠고 심오하고 실용적이기는 하지”
“그 가르침을 나눠 주십시오”
직암으로서는 반갑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러자고 했고 직암은 전주로 돌아가는 항검에게 천주실의와 칠극을 들려 보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서학과 만났다. 한달만에 다시 양근을 찾은 항검은 이번에는 셩교 절요와 천주강생을 가지고 갔다.
그는 의외로 꼼꼼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초기 성도들 가운데 직암이 가장 어렵게 공을 들여 동지로 만든 이가 그였다. 서학의 철학이나 천주 실의, 칠극의 가르침에 따를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 할 수 있지만 신앙으로 다가 오지는 않는 다는 것이었다. 천주실의와 칠극 까지는 무리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데 성교요지와 천주강생기략에는 의문이 많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읽은 교리서 들은 한결같이 가난한 이와 병든 사람을 이야기 하고 있았고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 귀를 통과 하는 것과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사회 변혁 부분에 있어 서도 천진암 강학 초기 성원들이며 이단원과는 결이 달랐다. 조선 사회가 문제점은 많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갈아 엎어야 된다는 생각은 그러서는 할 수 없었던 게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고 다 아는 이야기 이겠지만 잠시 쉬어가는 요량으로 에수와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반추해 본다.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어떤 부자청년이 예수를 찾아왔다. 그는 예수에게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물었다. 예수는 그에게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느냐 반문했다. 부자청년은 십계명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는 부자청년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네게는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줘라. 그러면 하늘에서 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 청년은 예수의 말을 듣고 근심하며 예수를 떠났다. 예수는 근심하며 떠나가는 부자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부자청년은 ‘영생’을 얻길 원했만 자신의 재산을 다 댓가로 지불하고 영생을 얻기는 원치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재물을 댓가로 지불하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댓가로 지불하고 재물을 얻는 것을 선택했다.
성경은 부자청년이 그런 선택을 한 원인을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라고 기록했다. 그 청년이 재산이 적었다면, 혹은 재산이 없었다면 그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부를 소유했지만 부도 역시 그를 소유했던 것이다. 그가 소유한 부는 그의 선택에 결정권을 행사했다.
성경에 그 청년의 뒷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청년의 뒤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느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느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셨다.
직암은 차근차근 관검을 설득했다. 그러면서 왜 교회 역사에 있어 선교가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자신 스스로가 먼저 깨닫고 있어야 했다. 관검과 대화를 나누면서, 관검의 계속 되는 질문에 답하면서 직암 스스로도 길을 잡아가고 있엇던 것이다.
직암이 아시아 선교의 선구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알게 된것도 이 무렵이었다. 관검같이 수중이 높은이를 설득하려면 풍부한 자료가 있어야 했던 온갖 서적을 다 뒤져 가면서 “옳다구나 다음번에 만나면 이얘기를 해줘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았던 것이다. 선생은 가르치면서 배워가는 법이다. 하비에르는 일본 불교 승려의 옷을 입고 불교 사찰을 교회로 삼아 신도들을 규합해 나갔다고 하지 않던가. 그의 제자 마태오 리치는 중국 유학자의 옷을 입고 황제에게 절을 해가며 중국땅에 천주교를 심었다.
처지가 비슷하고 생각이 비슷했던 사람과 한데 어울리고 일을 도모하기는 쉬운 법이다. 하지만 기반과 처지가 완전히 다른이와 동지가 되려면 더 큰 노력과 양보, 때로는 선의의 작은 억지도 필요한 법이다.
“어떤가? 무언가 길이 보이는 듯 하지 않은가? 우리 인생의 길 말일세. 같이 공부해 나가도록 하세나”
유항검은 어느날 밤 직암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교덕서를 읽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았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5:10)
이 또한 자신의 이야기 였다. 오늘만 해도 전답관리 때문에 집사와 마름들과 꽤 골치아픈 씨름을해야 했지 않은가.
그날밤 관검은 묘한 꿈을 꿨다. 찰신 일신 형님들이며 정씨 삼형제 등 일행과 함께 어딘가로 가아 헸는데 아미도 천주실의 에서 말하는 천당인 듯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