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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해묵은 ‘종교갈등 망령’ 부르나

시아파 무슬림 120만명 피란길 올라

기독교 주민 공포 확산…“피란민 떠나라” 요구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남부 시아파 무슬림 주민들이 대거 피란길에 오르면서 과거 내전까지 촉발시켰던 해묵은 종교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침공을 시작한 후 약 2주간 레바논 전체 인구의 25% 이상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레바논 정부는 120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다고 밝혔다.
남부지역 시아파 무슬림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공격을 피해 대거 이동하면서 수니파 무슬림과 마론파 기독교 마을들도 교회나 학교 등을 개방해 이들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피란민들을 수용한 마을조차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되면서 긴장감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이스라엘군은 기독교도가 다수 거주하는 북부 즈가르타 지역의 아이투 마을을 공습해 최소 21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주요 활동 지역은 레바논 남부로,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와 무관한 북부 기독교 마을을 공습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공습을 받은 아파트가 최근 이곳에 온 피란민 가족에게 임대됐다고 전했다.

기독교 주민이 대다수인 남부 마르자윤 마을도 전쟁 발발 후 많은 시아파 무슬림 피란민들을 수용했으나, 이후 지난 1년간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전혀 없었던 이 마을에 공격이 시작되며 마을 주민 2명이 사망하자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한 주민은 로이터에 “우리 집에 불길을 불러오고 싶지 않다”면서 이스라엘군의 공격 후 피란민을 환영하던 마을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밝혔다. 피란민 중 헤즈볼라 대원이 섞여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되는 것을 주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마을에선 남부에서 온 피란민들에게 주민들이 떠나라고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다. 종교와 인종에 따라 주거 지역이 구분된 레바논 사회에서 그간 이스라엘과의 분쟁은 ‘시아파 무슬림의 일’로 여겨져온 경향이 있었으나, 피란민이 대거 발생하고 이스라엘의 공습 범위 역시 넓어지자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레바논은 중동지역에서 보기 드문 다종교 사회로, 중동에서 유일하게 국교를 지정하지 않고 18개 종파를 공식적으로 헌법에 인정한 ‘모자이크 국가’다.

정치 체제 역시 이런 점을 반영해 종파별로 의회 의석을 배분하며, 균형 유지를 위해 대통령·총리·국회의장직을 인구 수가 많은 각 종파가 맡도록 한 권력 배분 원칙이 헌법에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가,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가,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나눠 맡는다.

이스라엘의 침공과 이에 따른 대량 이주가 그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온 종파 간 균형을 깨고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촉발했던 종교 갈등이란 ‘망령’을 불러오고 있다고 로이터는 짚었다.

레바논 내전은 1975년 기독교 민병대와 팔레스타인 난민 간 충돌로 시작됐고, 종교 갈등에 더해 지역 갈등과 외부 세력의 개입까지 복잡하게 얽히며 15년간 이어졌다.

헤즈볼라도 현 상황에 크게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레바논 소식통은 “헤즈볼라가 최근 휴전에 대한 입장을 완화한 것이 대량 이주에 따른 압박 때문”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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