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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55)

안동일 작

전장의 예수, 교회의 예수,  헤이마켓의 예수

  카트라이트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서로 싸워야 만 한다는 논리에 결코 찬동 하지 않지만 굳이 편을 나눈 다면 노동자 편이다.  대다수 노동자들, 가난한  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가족과 함께 편한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  인간을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하늘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본가라 불리우는 부자들도  하늘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부여한 최고의 덕목 양심과 이성에 입각해 자신의 의만 내세우지 않는것이,   인간의 이성을 새삼 내세우면서도  종국에는  믿음 앞에서의 겸손을 강조한 성 토마스의  뜻 이었으며  하느님을 대신해 이 땅에 온 예수의 가르침도 그것  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카트라이트에게 있어서 미국의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의 역사는 후일 그가 베네딕토 수사 라루와 함께 천착하게 된 한국의  보수 진보간 갈등과 관련해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안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은 미국의 노동운동의 양상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북군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후에 찾아온 상황은 부쩍 늘어난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더 고달픈 것이었다. 

 신흥 재벌들과 돈 있는 권력자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노동자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노동운동을 멈추고 전쟁에 참여해 승리로 이끌어 냈던 노둥자들은 분개 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이에 과격한 형태로 저항한다. 전쟁 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더욱이 미국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1865년부터 1917년까지 2,750만 명이라는 전례 없는 이민자의 물결이 몰려들어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고, 캘리포니아주와 같은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던 지역에 다양한 지역 사회를 형성했다. 산업의 발전과 인구의 확대는 적지 않은 사회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 기간 인구 증가와 산업 성장으로, 미국은 국제 사회에서도 그 힘을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미국은 전신 및 제철 그리고 정유 산엽에 있어  새로운 기술에 따라 세계 선진 공업국이 되었고, 철도망을 갖추고 풍부한 천연 자원을 사용하여 제2차 산업 혁명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80년 초   2만 8천 명의 ‘노동자 기사단’이 조직되었고, 1886년에는 그 숫자가 70만 명으로 까지 불어났다.  노동자 기사단(Knights of Labor; KOL)은 1880년대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했던 노동자 단체다.  이 단체가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노동자의 사회문화적 복지 향상을 꾀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래도 떨어져 있는 대륙이었기에 사상사적으로는 한발 뒤 늦을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도들도 대다수 포함돼 있는 노동기사단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고, 공화주의적 생산자 윤리를 옹호했다.  몇몇 경우 기업주와 교섭을 하며 노동조합의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조직화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노조라고 부르기는 어폐가 있다.

  부익부 빈익빈의 상황에서 철도와 광산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급속히 확산되자 자본가들은 파업을 봉쇄하기 위해 독자적인 무장조직 까지  조직해 이틀을 탄압했다.  그 당시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했던 신문들에서는 이런 말도 안되는 기사들을 쓰기도 했다.    “이 야만적인 종자들은 몽둥이의 힘 밖에는 무서운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이것만 두고두고 기억나게 해주면 된다.” (뉴욕 트리뷴)      “노동조합원들에게는 수류탄을 던져 혼구멍을 내주어야 한다. 그러면 다른 파업 참가자들도 겁을 먹고 잠잠해질 것이다.”(시카고 타임즈)

메이데이,  5월 1일은  전 세계가  기념하는 노동절이다. 이 메이데이가 미국의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메이데이를 기념하지 않고 다른날을 노동절로 정해 휴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미국의 당시 상황과 현실을 들어내는 극명한 예다.

  1886년에 노동기사단의 온건함을 비난하면서  ‘미국노동총연맹’이 결성됐고 이 연맹은 이렇게 선언했다.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하나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투쟁은 압제자에 대한 피압박자의 투쟁이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사회 이익의 증진과 보호를 위해 굳게 단결하지 않는다면 수백만의 노동자들은 결국 엄청난 재앙에 부딪칠 것이다.” 

 미국노동 총연맹은 그해  1886년 5월 1일을 기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총파업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드디어  5월 1일,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 구두(이미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는 공장에서 만든 제품)’를 신고 ‘8시간 담배’를 피우며 깨끗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온 가족이 거리에 나와 마치 축제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평화 행진을 벌였다.  시카고를 위시해 뉴욕 워싱턴 등  미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그런 광경이 펼쳐 졌다. 

 문제는 시카고에서 터졌다.  시카고 경찰은 이 시위에 대해 최루탄을 쏘아대면서  대해 과격한 진압을 했고 다수 시위자들을 연행해 갔다. 실탄 까지 사용돼 시위자 여러명이  숨지는 일까지 벌어 졌던 것이다.  

 며칠 뒤인  5월 4일, 시카고 시 중심가인 헤이마켓 광장에서 노동자들은 전날의 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격 진압을 규탄 하고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애당초 시위는  경찰에게 살해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평화 행진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경찰이 그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신원불명의 누군가 다이너마이트를 경찰 쪽으로 던졌다. 폭탄 폭발과 뒤이은 발포로 인하여 경찰 일곱 명과 민간인 네 명 이상이 죽었고, 숱한 사람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시위 주동자  여덟명이 음모 혐의로 체포돼 기소 됐다.  기소 증거는 피고 중 한 명이 폭탄을 만들었을 수 있다는 것 뿐이었고,  실제 그들 여덟 명 중 아무도 폭탄을 던지지 않았다.  피고 중 일곱 명에게는 사형이, 나머지 한 명에게는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   사형수 중 두 명은 일리노이 주지사   오글스비가 종신형으로 감형해 줬고, 한 명은 교수대로 끌려가기 전에 자살했다. 나머지 네 명은 1887년 11월 1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일종의 사법살인 대목을 읽으면서 카트라이트는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가 곰곰히 생각하게 됐었고 이일은 그후 한국의 70년대 유사한 사건과 함께  그의 머리 속에서 한 궤를 긋게 되면서 사변과 함께 겸손의 기도를  계속 하게 한다.

‘정녕 이 세상 한 목숨은  왔다가는 소풍의 자취 일 뿐이어서 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단 말인가?”

  3년 뒤인 1889년,  벨기에서 열린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제 2차 인터내셔널은 이  1886년 5월의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의미로  5월 1일을 국제노동절, 메이데이로 정하게 된다.  

한편 헤이 마켓 사건은 후일 미국내에서도 새롭게 조망돼 일종의 명예 회복을 이루기는 한다.  1893년에  일리노이 주지사로 취임한  존 피터 올트겔드는 그때까지 살아있던 피고들을 모두 사면하면서  재판이 매우 잘못 됐다고 선언했다.  링컨 처럼 가난한  고학파  변호사 출신인 그는 1850년대 이후 일리노이의 첫 민주당  주지사였다.  민주당 내 진보운동의 선도적 인물로서, 재임중  직장안전, 아동노동 관련 법안들에 서명했으며,  1894년,  풀먼사 파업 당시 군을 동원해 분쇄하라는 연방정부와 의회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다.  1896년 선거에서 열정적인 선거운동을 펼쳤으나 연임에 실패했다.

 그후 헤이마켓 사건 발생 장소는 1992년 시카고 시장이 결정하는 사적지(Landmark)로 지정되었고,  2004년 그 자리에 조각상이 설치됐다. 또한 억울하게 사형당한 희생자들의 무덤에 헤이마켓  기념물이 세워졌고 1997년에는 주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5월1일을 노동절로 삼는 것 만큼은 한사코 용인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냄새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메이데이를  노동절로 삼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사회주의란 말만 들어도 펄쩍 뛰는 미국인들,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제2차 인터내셔널이 제정한 5월 1일을 노동절로 삼기는 싫었던 것이다. 미국의 노동절, 레이버 데이는  5월과는 뚝 떨어진 매년 9월 첫째 월요일이다. 

  레드 컴플렉스 라는 말이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지칭하는 표현. 공산당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으면 심지어 물건의 색이 빨간색이기만 해도 기피한다는 의미다. 넓은 의미로는 이러한 공포심이 배경이 되어서 자행하는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포함된다.   레드 컴플렉스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콩글리시 표현 으로,  카트라이트가 알기에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 되지만 그 함의가 충분하다고 생각해  공포 로 까지 인식하지는 않지만 기피하고 혐오한다는  한국적 정서에 입각해  천주교내 공산주의 전문가  카트라이트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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