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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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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29)

   안동일 작

 신앙이란 무엇인가,  천주실의와 단군신화

“전에도 대충 이지만 아버지 서가에서 꺼내 봤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리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 선생 께서 워낙 조리있게 쉽게 설명을 해놓으셔서… 천당 지옥론 이라든지 영혼 불멸론이 조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서두…”
상덕이 대답했다.

“ 저는 유교의 상제(上帝)를 그 책에서 천주로 부른다는 것을 알고 무척 반가왔습니다. 그 사람들도 유학의 가르침을 알고 있구나 싶어서였습니다.”
상문의 대답이었다.

동섬은 무언가 생각을 하는 표정이더니 책 내용과 저들의 이해 정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책이 나쁜 책은 아니지만 아직 드러내놓고 읽었다고 자랑할 만한 책이 아니라는 것은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
“예, 알고있습니다.”
상덕은 그랬지만 상문이 이때 토를 달았다.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 동섬 숙사께서 저희 외할아버님이신 순암어르신 때문에 그러신다는것… 외할아버지께서는 왜 그러신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안해줘도 애들의 눈치는 빨랐다. 돌아가는 사정을 저들은 꿰고 있었던 것이다.
직암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어른께서 걱정이 되서 하시는 얘기지, 상문아 그 책 얘기는 나중에 아비하고 다시 나누자꾸나.”
“그래 나도 그책을 읽었지만 아직 어린 상문이 자네에게는 어른의 훈도가 필요해.”
금대도 한마디 했다.

그날 천주실의 얘기는 그쯤에서 접어졌지만 후일 그 후과는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천주실의, 천주의 실제적인 의의,  이날 훈훈했고 한편으론 학구적 이었던 천렵놀이 자리에 있었던 친 동기 이상의 끈끈한 정으로 묶인 다섯명은 천주의 의의 였던지 다른 무슨 운명 이었는지 모두 엄청난 고초를 겪는다.

넷은 목숨을 잃었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동섬은 아흔두살 까지 삼수갑산 유배지에서 영욕의 삶을 지탱하면서 이나라 천주교가 명맥을 유지하는데 수훈갑이 된다. 그가 다른 네사람 처럼 이내 목숨을 천주에게 바쳤다면 이나라 천주교는 없었다. 상문과 상덕은 후일 순교를 인정 받아 시성까지 됐지만 직암과 가환은 그렇지 못했다. 세례명도 없었던 가환은 장살 되어 시신이 길에 버려지기 까지 했다. 장살은 때려 죽였다는 끔찍한 말이다.

직암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후 동섬은 슬퍼만 하던 애제자 윤유일을 추동해 주문모 신부를 이땅에 모셔올 수 있게 했고 주문모 신부며 윤유일 정약종 등 이나라 중추들이 모두 처형된 이후에는 간신히 살아남은 정약종의 아들 하상 바오로를 큰 동량으로 키워내 절멸할뻔 했던 이땅의 천주교를 회생시키게 한다. 그 와중에 권씨 집안과 조씨 집안의 천주 안의 인연은 직암의 막내 딸인 정례 데레사와 동섬의 친조카인 조 숙 베드로의 동정부부라는 한떨기 꽃으로도 이어진다.

아무튼 정신을 가다듬은 동섬은 신화에 대한 하릴없는 대화식 강학을 이어갔다. 진작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직암으로서는 가히 화룡점정이라 할만 했다. 동섬은 천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 나라는 신화적으로나 역사적 으로나  천신, 천제가 보우하는 나라로 치자를 포함하는 온 백성이 천신, 하늘의 뜻을 좆는다면 종국에는 행복해 질것이라는 낙관론을 설파해 직암을 위시해 좌중을 안도케 했던 것이다.

“금대 자네가 이 나라의 미래는 정녕 없느냐고 물었지? 상문이 자네는 이 어려운 세상에 인내를 가져야 한다고 했지? 오늘 우리는 어쩌다 보니 승총명록에서 시작해서 우곤치수 단군신화 천주실의 까지 멀리 돌아 왔는데 역사 학도로서 나는 천지신명이 이 백성들을 보살피고 있다고 믿고 있다네, 오랜 탐구 끝에 내린 결론일세”

모두들 조금은 놀랐다. 비판적이고 비관적이기만 한 동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 그 상징이 단군 신화라고 생각 한다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지 다짐을 받고는 천인을 내려보내 나라를 세웠다. 얼마나 웅대하고 교훈적인가. 천상의 물건을 훔치고 예리한 칼로 배를 가르고 상상속의 흉칙한 동물인 용이 튀어나오고 홍수 난리가 나고… 중국의 신화와는 사뭇 다르지 않는가. 나는 역시 그중에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라는 홍익인간 이 부분이 압권이라고 생각하는데… “
잠시 사이가 있었다.
“자네들 단군 신화가 언제부터 이땅에 알려지고 구전되기 시작 했다고 생각 하는가?”
이번에는 청년들이 아니라 직암과 금대를 향해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언제 부터입니까? 이야기야 전부터 있었겠지만 고려대에 와서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명문화 되기 시작된 것 아닙니까? 이승휴 선생도 제왕운기에 썼다고 하지요.”
박학다식 가환이 냉큼 대답했지만 답은 아니었다. 직암도 사실 궁금한 사항이었다.
“그 신화를 일연이나 김부식이 창작했다고 보는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부분이 가미되고 정형화 된것은 그 무렵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 분들도 고기(古記) 라는 책을 인용 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책에는 형님 말씀하신 그 홍익인간이라는 단어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던데 … 고기라는 책의 존재 자체도 불분명 하고…”
“그래 홍익인간이라는 성어가 다 나오지는 않지, 그렇기는 하지만 그 단어가 나오던 안 나오던 간에 그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하늘이 인간을 만들었고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의 정신은 단군신화를 설명하는 모든 역사책에서 여전하다네, 실은 그 고기를 찾기위해 스승님과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는가? 끝내 찾지 못했지만 스승님은 고기가 ‘단군고기’ 를 뜻한다고 단정하고 계신다네, 그런 책이 분명 있었고… 강목에 그렇게 확정지으셨더군.”
강목은 스승 안정복과  동섬이 갖은 애를 써서 편찬한 동사강목을 말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고구려 시절에도 이 신화가 확정되고 정형화 돼 있었다는 증좌는 찾았어, 선조 때 신충일과 최연중 이라는 어른이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이 있었던 집안에 다녀 왔는데 거기서 고구려 시대 큰 비석을 보고 오셨더군. 그분이 보시기에 추모왕비가 틀림없다는 거야. 워낙 장대하고 훼손이 심해 다른 것은 판독할 수 없었지만 천손 환인 환웅 단군 이라는 글자를 분명이 확인했는데도 중국사람들은 자기네 것이라고 우긴다는데… ”
“백번 양보해서 중국 어느 인물의 비라 하더라도 단군이라는 존함이 그시기 고구려 초기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증좌는 충분히 되지 않겠는가? 그분이 그 얘기를, ‘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 라는 견문록으로 남겼어요. 기록이 있어요. ”
그러고 보면  가난하고 척박한  이 땅에는 역사를 찾으려는 기인이사가 참 많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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