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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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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3)

 안 동일 작

서(序), 들어가는 장

  그런데 천주교 본산인 교황청 에서는 권선생의 죽음을 공식적 순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성자로 시복 되지 않고 있다. 형조에 자진출두한 그는 그 심한 매질 고문에 굴하지 않고 천주교 사상의 유익한 점을 설파 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정조 임금이 직접 나선 회유와, 어머니 때문에 ‘회오문’ 이라는 일종의 반성문을 쓰고 완화된 귀양 처분을 받았으나 혹독한 매질의 후유증으로 귀양길 첫날 경기도 구성의 한 주막집 에서 장독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죽음과 반성문을 놓고도 얘기가 많다.   회오문 자체가 왜곡 변조 돼 잘못 전해졌다는 얘기, 단순한 장독 후유증이 아니라 노론 벽파가 보낸 괴한들에 의해 주막집에서 장살 됐다는 이런 저런 얘기가 있지만 그는 외부에서는 교주로 지목됐고 내부에서는 자체 주교 “도탁덕 방낙 어르신” 으로 존중 받으면서 스스로 형조를 찾아가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초기 조선 천주교 교단의 걸출한 지도자였던 사실은 확실한 역사다.  당시 가성직 제도에서 최초 세례자인 이승훈이 주교를 맡아 그가 권일신 최창익 정약용등을 신부로 임명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이승훈전기를 쓰는 쪽에서 나온 얘기로 달레의 천주교사에도 권선생이 주교를 맡았다고 분명히 서술돼 있다. 

 많은 이들이 정약용 선생 형제분들의 활약, 특히 정약종 선생 부자의 희생에 주목해 정씨 형제가 없었다면 이 나라 천주교가 없었다고 말 하지만 가족, 친지의 희생을 놓고 본다 해도 권일신 선생을 따르지 못한다. 권 선생은 부인, 아들. 며느리, 딸 심지어 손자까지, 그리고 잘 알려진 큰 형님 부자, 향리의 주변 친지 동학들 모두 순교했다. 그의 고향 양근(양주) 땅이야 말로 피로 물든 순교의 성지다.      

 광암 이벽에게 서학, 천주교 사상을 포함한 서학을 처음 체계적으로 일러준 이가  녹암 권철신 선생, 권일신 선생의 큰 형이다.   당초에 천진암과 주어사를 먼저 알았던 이는 광암 이었지만 그곳에서 강학을 꾸리고 이끌었던 이들이 권씨 형제분이다.  

 그래서 따져보면 권씨 형제분들이 이 나라 천주교단 성립의 진정한 초기 수훈 갑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리고 권씨 형제 분, 특히 인품이 남달리 후덕했고 지금으로 따지면 조직의 달인, ‘오르그’였던 권일신 선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 그 훈향이 훨씬 풍부하고 깊이가 있어진다는 것도 내  생각이었다. 물론 이벽 선생이며 이승훈, 정약용 형제분들의 이야기는 섭섭지 않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는데 이 경우, 오늘의 현실 특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미국과 연관 지어 흔한 말로 10%가 부족 했다. 소설 적 으로야 죽음을 앞둔 을사년, 형조 감옥에서의 권 선생 처지를 그의 회상과 독백으로 밀도있게 풀어가면 나름 깊이가 있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기자로서 정보의 전달자, 강남 제비의 역할을 자처했던 내 글 세계와는 결이 다르게 된다.  또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는 그걸 절절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풀어낼 만큼의 능력, 황구라 형님이나 조정래 선배, 이문열 선생 같은 이야기꾼, 소설 대가의 깊이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이야기거리를 만들고 거기에 더해 의미를 얻기 위한 끊임없는 상상과 자료조사를 골똘하게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더 큰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집필에 있어 더 근본적인 문제 일 수 있는 것이었다.  소설이 꼭 무슨 의미를 찾기 위해 쓰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이 시대에 종교 얘기, 기독교, 가톨릭 얘기, 그것도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조금 새롭게 쓴다고 해서 무슨 반향이 있을 것이고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나한테야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었고 황홀경까지 불러온 이야기였다지만 다른 사람들, 종교, 특히 기독교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은 종교의 시대가 가고 있다고 하는 판 아닌가. 얼마 전 미국의 한 유력 신문은 전세계 적으로 종교가 침몰하고 있는데 기독교 문화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의 그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쇄락해 있다는 내용의 장문 특집기사를 싣기도 했다. 특히 젊은이들의 종교 폄훼 현상은 심각할 정도라고 적고 있었다. 유서 깊은 성당들이 극장, 술집 심지어는 스트립 바로 변모하고 있다지 않은가.  

 내가 천주교 교리반에 나간다고 했을 때 멀리서 가장 기뻐했던 서울의 성당 다니는 절친 교교동창 녀석도 그 글을 쓰겠다고 했더니 반응이 시큰둥했다.  

“요즘 종교얘기 특히 천주교 얘기, 그 가운데서 천진암 오대 성조 얘기 별 인기 없을 텐데…”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천주교 막 접하면서 뭘 안다고 쓰냐는 그런 뜻도 있었겠지만  요즘 서울서 오대 성조 추앙 운동과 그 발상지인 천진암 성역화 작업과 관련해 이런 저런 논란과 분규가 꽤 있는 모양이었다. 과유불급이라고 100년을 기한으로 세계 최대의 성당, 최고 높이의 예수상, 마리아상을 건립하겠다고 한다니 그럴만도 하다. 그것도 불교 사찰이었던 그곳에서 불교는 쏙 빼고… 

 그래서 포기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신명이 한풀 꺾여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권일신 선생으로 짐작되는 하비에르라 적힌 목각상이 뉴저지 유명 수도원의 시그니쳐와 함께 내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 조각상 밑바닥에 적혀 있는 하비에르라는 글자와 뉴튼 성당의 표식을 확인하는 순간, 그리고 며칠 뒤 라루선장의 기적에는 파티마의 성모 현현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 그간의 이런 고민이 해결 됐다. 새상 일이 날줄과 씨줄로 다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내 내면의 망설임과 소침이 날아가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실은 그정도가 아니라 유대교의 야훼가 이스라엘 민족을 택했다면 가툴릭,  기독교의 여호와 께서는 우리 한민족을 택하셨다는 맹랑하지만 근거 확실한 자신감으로 까지 퍼져 올랐다는 것을 먼저 밝혀 둔다.  

 목각상이 불러낸 뉴튼 수도원과 라루 선장, 마리누스 수사는 그동안  한국 전쟁과 성조들의 이야기, 그리고 20세기 초반 조선땅을 찾은 초기 미국 기독교의 선교사를 접목시킬 방법은 없을까 골몰했던 내 번민을 일거에 날려 보내는 일대 반전이었다.  그동안 초기 천주교 얘기를  한국전쟁과 교직 시키는 방안을 다각도로 떠올려 보기는 했었다. 본격 역사소설이 아닐 바 에야   과거와 현재가 엇갈리며 교직하는  수법이야 말로 움베르또 에코 이후의 전형적인 장편 작법으로 등장해 있지 않는가.  하지만 자칫 생뚱 맞게 되거나 견강부회가 될 것 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마리누스 수사와 권일신 성조의 연결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안성맞춤 이었다.   그래서 마리누스 수사가 손수 제작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곳 성바오로 수도원의 시그니쳐가 새겨져 있는 권일신 선생의 목각 인형이 이곳 뉴욕에서 나를 찾아온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닌 일로 믿기로 했던 것이다.   

 라루 선장, 마리누스 수사가 말년에 뉴튼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맡았던 소임이 성물방, 그러니까 수도원 부설 기념품 센터의 관리였다. 관리라고 하지만 혼자서 성물방을 지키고 판매하는 일이다. 우리들에게는 영웅으로 다가서 있는, 신앙으로 귀의했던 거룩하고 신비한 그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우리의 상상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어쩌면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도하며 일하는 생활’을 모토로 하는 베네딕토 수도원의 사정에서 보면 성물방 일은 나름대로 그곳 수사들에게 매우 좋은 일이다. 이른바 꽃보직이라는 얘기였다. 넓은 나무 농장이 유명해 크리스마스트리 판매가 최고의 수입원인 뉴튼 수도원의 경우 수사들은 묘목장과 옥수수등 작물 농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노동의 강도가 보통이 아니란다. 하지만 성물방의 경우는 사람들 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노동의 강도가 적은 일 아닌가.  종신 서약을 했다고는 해도 수사들에게도 고된 일은 힘겨운 법이다.  대신학교 학생들도 무슨 일이 있어 저녁 기도는 생략해도 된다고 하면 환호를 지른다고 하지 않던가. 마치 군대에 간 청년들이 훈련이나 점호, 열외라면 좋아하듯이…   (계속)

  • 실록소설 ‘순명 그때거기 지금여기’는 매주 월 수 금 3일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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