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만난다.
문화원 신청사 개관 기념 전시, 5월2일 부터 6월 13일 까지
뉴욕에서 뉴욕 출신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를 만나게 됐다.
뉴욕한국문화원(원장 김천수)은 신청사 개관기념으로 김환기(1913-1974) 특별전(Whanki in New York)을 내달 2일부터 6월13일까지 개최한다.
올해, 2024년은 김환기가 1974년 7월 뉴욕에서 생을 마감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로, 이번 전시는 김환기의 마지막 흔적과 그의 추상미술의 정점을 이뤘던 그의 독특한 ‘전면점화’ 예술혼이 탄생한 뉴욕에서 50년만에 그를 다시 만나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여져 큰 기대가 쏠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그림 작품 이외에도 뉴욕시대 김환기의 삶과 예술세계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그의 일기, 사진, 편지글 등을 비롯해 10여년간의 뉴욕시대, 그중에서도 특히 종이 작품이 중점적으로 다루어 지게 된다는데 이 작품들은 서울의 환기미술관에서 직접 선정한 그의 대표작품들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김환기 화백은 1912년 전남 신안 에서 태어나 1931년 19세의 나이로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도쿄의 니혼대학 예술과 미술부에 입학해 수학 하면서 전위를 표방하는 미술단체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 참여했다. 그후 당시 저명했던 후지타 츠구하루의 주도하에 길진섭, 김병기와 함께 창작 동호회 ‘백만회’를 조직해 도쿄의 화랑에서 여러차례 단체전 , 개인전을 가졌으며 1937년 귀국했다.
1946년-1949년 사이에 서울대학 미술대 교수를 역임했고 52년에는 홍익대 미술대 교수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전시회를 하다가, 1956년 44세의 나이에 파리로 건너가 그곳에 정주하면서 파리와 니스 그리고 벨기에의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해 명예상을 수상했다. 이 비엔날레 참석을 계기로 뉴욕으로 건너와 11년간 록펠러 3세가 설립한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뉴욕에 정착했다.
이곳 뉴욕에서 김환기의 대표작인 전면점화가 탄생했다. 김화백은 1970년, 한국일보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그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1905∼1977) 시인의 시 ‘저녁에’
시인 김광섭과 화가 김환기는 1960년대 서울 성북동에서 이웃사촌으로 살았다. 문학을 사랑했던 화가는 조병화 서정주 등 여러 시인들과 교유했다. 그중에서도 중동학교 선배이면서 8살 많은 김광섭 시인을 무척 따랐다. 1964년 김환기 화백은 뉴욕으로 떠났고 이후 시인과 화가는 서신을 주고받으며 문학과 예술 담론을 이어 갔다. 그러던 1970년 어느 날 김 화백은 김광섭 시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슬픔에 빠진 화가는 서울의 시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붓을 들었다.
김시인을 위시한 고국의 그리운 친구들, 고향 신안 안좌도의 푸른 바다, 수많은 인연의 고리들은 화가의 붓끝에서 무수히 많은 점들로 변주되며 심연의 우주와도 같은 ‘점화(點畫)’한 점으로 완성됐다. 그림 제목은 김광섭의 시 마지막 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따왔다. 김환기의 점화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했다.
마치 무수히 많은 밤하늘의 별처럼 검푸른 점들로 가득 찬 김환기의 이 그림은 이 시기에 그려진 그의 또 다른 점화 ‘우주’로 이어져 이 ‘우주’는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당시 13번의 치열한 경합 끝에 현장에 있는 사람(화교로 알려짐)이 이 작품을 가져갔다. 수수료 18%를 제외한 낙찰가는 무려 47억2100만원. 한국 미술품이 한번도 넘보지 못했던 최고 기록이었다. 2007년 5월 박수근(1914~1965)의 ‘빨래터’가 45억2000만원에 팔린 이후 8년 만에 대기록이 깨진 것이다.
소탈했던 그는 작가들과 친해서 ‘빼지 않고’ 술 한잔에 장정이나 삽화를 많이 그려넣어 줬다. 수필집이나 시집 같은 경우에는 김환기의 삽화나 장정이 들어가면 값이 많이 뛴다. 또한 대체적으로 그가 장정을 해준 작품들은 상당히 수준이 높은편이다. 뉴욕시절 그는 반려 김향안 여사 (1916~2004 / 1944년 결혼, 환기 미술관장 역임)와 함께 자신들도 어려운 형편임에도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아 백남준, 존 배, 정찬승, 강익중 등 기라성 같은 후배들을 발굴 적극후원 해냈다.
185cm로 장신이었는데 큰 키와 가만히 작업하는 화가 특성상 목 디스크를 가져 평생을 고생했다. 끝내는 이 지병으로 74년 뉴욕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회복 중 그만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61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환한 달항아리를 무척 좋아했는데 조선백자 중에서도 ‘달항아리’의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뉴욕 전시 개막행사는 5월2일 오후 6~8시에 열리게 된다. △문의 212-759-9550(내선 204)
(안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