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 넘치던 전직 대통령 깊은 수심에 잠긴 듯…”
법원 바깥 풍경도 비교적 차분한 모습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인영화 배우에게 성추문 입막음 돈을 지급했다는 혐의의 유무죄를 가리는 형사재판이 22일 개시됐다.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막음 시도가 2016년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 사기였다고 주장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무죄라고 반박하면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 최초로 피고인 신분이 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토드 블랜치 변호사 등 변호인단과 함께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석했다. 그는 법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오늘 재판은) 우리 나라 역사상 최악 대통령(조 바이든)의 경쟁자를 해치기 위한 목적에서 열리는 것”이라면서 이번 재판이 자신의 대선 출마를 겨냥한 “마녀사냥”이자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가 자신과의 성관계를 폭로하려 하자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을 통해 입막음 돈을 주고, 이 비용을 회삿돈으로 충당하면서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매슈 콜란젤로 검사는 45분간의 모두진술에서 “피고인은 2016년 대선을 더럽히기 위해 범죄 계획을 조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은 장기간에 걸쳐 계획되고 조직됐다”며 “트럼프의 행실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을 침묵시키고자 불법적인 지출을 하고, 이를 통해 트럼프가 당선되는 데 도움을 주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순전하고(pure) 단순한 선거사기였다”고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문건 조작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블랜치 변호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면서 “해당 비용은 2016년 대선 당시 그의 성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불한 돈이 아니며, (검찰의) 주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금”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에서 선거에서 이기려는 시도 자체는 불법이 아닌데도 검찰은 (억지로) 범죄인 것처럼 몰아간다”라며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통령’ 또는 ‘매우 검소한 사업가’라고 지칭했고 남편, 아버지, 동료 뉴욕 시민 등으로 언급하며 그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번 공소장에 기재된 대니얼스와 관련한 범죄사실 외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선거에 불리한 정보를 사들인 뒤 대중에 알려지지 않도록 묻어버리는 ‘캐치 앤드 킬’(catch and kill) 수법을 활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인 배우 캐런 맥두걸(53)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한때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려 하자, 타블로이드지 내셔널인콰이어러가 맥두걸에게 15만 달러를 지급하고 독점 보도 권리를 사들인 뒤 이를 묻어버린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첫 공판에 출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평소 활기가 넘치던 전직 대통령은 깊은 수심에 잠긴 듯 보였다.”고 묘사했다.
그는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팔짱을 낀 채 먼 곳을 바라보거나 거의 움직임 없이 앞을 응시했고, 변호인들과 잠시 속삭이거나 배심원단을 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검찰이 45분에 걸쳐 피고인 혐의를 설명하는 모두 진술을 할 때도 검찰 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판사를 향해 거침없이 발언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좌절감을 언론에 전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표정을 짓곤 했다”며 이날 그의 태도는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법원 바깥 풍경도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일대 혼잡이 빚어질 수 있다는 당초 예상과는 달랐다는 설명이다.
뉴욕 당국은 재판 기간 법원 맞은편에 위치한 콜렉트폰드 공원을 시위 장소로 지정했지만, 이날 이곳에 모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소수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동차를 타고 법원으로 향할 때 공원에는 지지자들보다 반대파들이 더 많았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차창 밖의 모습이 분명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