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독살 사건 계기로 언론 전면에 나서
수감 기간 국제 무대 활동…이제 야당 지도자로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으로 그 배우자 율리아나 나발나야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새로운 정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19일 폴리티코에 따르면 나발나야는 나발나야는 나발니 사망 3일 뒤인 이날 영상 성명을 내 “알렉세이를 죽임으로써 푸틴은 내 마음, 내 영혼의 절반을 죽였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나머지 절반이 있다”며 “알렉세이 나발니의 대의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임무를 이어받겠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해석된다. 나발니 최측근들도 이날 나발나야에 대한 지지를 표하며 “알렉세이 자리를 대신했다”고 인정했다.
그동안 나발나야는 러시아 대표 야권 지도자의 배우자치고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1998년 튀르키예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나발니를 만났다. 몇 년 뒤 첫 아이인 딸 다샤를 낳았고, 이후 전업주부가 됐다.
나발니가 명성을 얻고 당국의 단속이 심해지는 중에도 자신의 역할은 ‘가정 정상화’라고 일축했다. 한 인터뷰에선 “내 주된 임무는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에 변화가 없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나발니는 종종 가족과 생활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자주 공개했으며, 나발나야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공개적으로 표현했다. 사망 전 마지막 인스타그램 게시물도 나발나야에게 보내는 밸런타인데이 메시지였다.
이혼에 여러 명의 내연녀와 사생아를 둔 것으로 알려진 푸틴 대통령의 사생활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나발니 부부의 지인들은 나발나야가 가정에만 헌신하긴 했지만, 나발니 생전 그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전한다.
나발니의 반부패재단 미국 지부 소속인 안나 베두타는 폴리티코에 “알렉세이 경력 모든 단계에서 항상 율리아가 곁에 있었다”며 “두 사람 사이엔 일종의 텔레파시 연결이 있었고, 때론 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생각이 비슷했다”고 했다.
알렉세이 나발니와 율리아 나발나야가 2021년 1월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귀국 비행기에 탑승한 모습. 사진은 나발니 인스타그램 갈무리.
집회와 법정 공판에서 항상 남편 곁을 지켰고, 주목을 피하길 원했던 바람과 달리 뛰어난 체격과 침착함으로 언론 주목을 받았다.
2013년 나발니가 첫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이 개자식들은 절대 우리 눈물을 보지 못할 것”이라며 거칠게 말하기도 했다.
나발나야가 전면에 나서게 된 건 2020년 여름 나발니의 독극물 사건이 계기가 됐다. 나발니가 비행기에서 노비초크 신경작용제에 중독되자, 나발나야는 치료를 위해 그를 해외로 보내달라고 언론에 적극 호소했다.
이후 독일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긴장을 풀고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질 것 같았다”고 전했다.
영국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의 독살 사건 조사에 따르면 나발니가 노비초크에 중독되기 두 달 전 나발나야도 독극물 중독 증상을 보였다. 벨링캣은 나발니를 독살하려던 시도가 실패한 데 따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나발니가 회복된 이후 다시 가정주부 역할로 돌아갔지만, 2021년 초 나발니가 러시아 귀국 직후 체포되자 다시 대중 관심을 받게 됐다.
나발나야는 나발니가 공항에서 체포되는 중에도 의연하게 작별 인사를 했고, 그 모습이 지지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나발니 수감 기간 국제무대에서 활동을 늘린 나발나야는 배우자의 죽음으로 이제 야당 정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됐다. 나발나야의 잠재력을 감지한 러시아 당국은 일찌감치 언론과 SNS를 통해 불륜설, 부친의 KGB 요원설, 독일 국적 의혹 등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렸다.
다만 일반 러시아인들은 나발나야가 야권 지도자 역할을 맡는 데 회의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센터 선임 연구원은 폴리티코에 “서방이 푸틴 전복에 이용하는 인물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러시아 대중에 다가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에 망명 중인 점도 약점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어떤 의미에선 나발니가 배우자를 통해 환생한 것이지만, 나발니와 달리 나발나야는 러시아에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