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ykorea
타운뉴스

동양인 클래식 음악 진출 선도한 지휘자 오자와 타계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 베를린 필,  등  명문 교향악단  지휘

한·일·중 아시아 음악인 서방 진출의 선각자로서 1960~70년대 서방 클래식 음악을 휘어 잡으며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욕 필 등을 30년 동안 이끌었던 일본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지난 6일 88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오자와는 2010년 초 식도암 진단을 받은 뒤 투병해왔으며 수술로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말 년에 심장 판막 질환으로 입원했다.

오자와는 지난 반세기 동안 클래식 음악의 변화를 주도한 대표적 인물이다. 오자와의 클래식 진출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클래식 음악인들이 대거 서방에 진출했으며 한국, 일본, 중국에 클래식 음악이 확산했다.
오자와는 아시아 음악인들이 결코 서방 음악의 정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불식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성가가 과장돼 있다는 일부의 평도 있지만 그의 뒤를 이은 정명훈 형제, 요요마 등 한국인 아시안 음악가 들의 서방 진출에 길을 열었다는 점은 확실 하다.

35년생인 그는 우연히 피아노를 치는 걸 보고 재능을 알아챈 아버지와 큰 형은 시계를 팔아서 산 피아노를 리어카에 싣고 집에 가지고 왔고, 이 피아노로 세이지는 열심히 연주했다. 이처럼 당시 집안이 상당히 가난했기에 어머니가 가사도우미 부업까지 하면서 음악을 가르쳤다.

1951년 어머니의 먼 친척이자 지휘자인 사이토 히데오가 운영하는 지휘학원에 입학했고, 사이토의 권유로 1955년 토호단기대학에 입학하여 1957년 졸업하게 된다. 1958년 군마 교향악단을 지휘하거나 도쿄 필하모니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1959년 스승 사이토 히데오의 조언으로 유럽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유럽 유학 당시 오자와는 생계를 위해 유럽에 주재한 일본 기업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모터사이클 세일즈맨 생활을 했다. 1959년 프랑스 브장송(Besançon)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며 유럽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브장송 콩쿨의 심사위원이었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샤를 뮌슈는 그를 보스턴으로 초청했고 거기서 오자와는 샤를 민쉬와 피에르 몽퇴에게 지휘를 배우면서 탱글우드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다.
1960년 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밑에서 지휘를 배우게 되어 다시 서베를린으로 떠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그를 주목했고, 1961년 번스타인은 오자와를 뉴욕 필의 부지휘자로 채용했다. 뉴욕 필의 부지휘자 시절인 1962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지휘하며 서방에서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다.

1962년 여름 뉴욕 필 부지휘자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최고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척 권위적인 단원들과 아직 20대 후반의 새파랗게 젊은 신참 지휘자였던 오자와는 극심한 마찰을 겪게 되었다. 결국 일부 단원들이 오자와의 지휘를 거부하면서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중에 오자와가 세계적인 거장이 된 후에도 NHK 오케스트라와의 관계는 복구되지 않았고, 만년에야 가까스로 화해했다. 도쿄에서의 갈등 후에 오자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1964년 번스타인은 다시 그를 부지휘자로 채용했다. 이후 뉴욕 필과 필라데피아 필과 함께 미국 3대 심포니로 꼽히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29년 동안 이끌었다.  (안지영 기자)

Related posts

뉴저지주 ‘김치의 날’제정은… 대미 수출의 밝은’청신호’

안지영 기자

애플, 내달 차세대 음성비서 공개…챗GPT 탑재 주목

안지영 기자

세대갈등·연령차별, 뉴욕서도 예외 없다.

안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