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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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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뉴스

한국 실험미술 거장 김구림 퍼포먼스, 구겐하임서 재현

검게 변한 백지에 관객들 박수…한국 미술 특별전 기간 마지막 퍼포먼스

한국 실험미술 원로작가 김구림 퍼포먼스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서 재현 됐다.

지난 1일(금) 오후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2층 갤러리에선 레바논계 미국 시인 에텔 아드난의 시집 ‘서지'(Surge)가 낭독됐다.

마이크 앞에 선 여성은 시를 읽은 뒤 해당 페이지를 찢어 옆에 앉은 남성에게 건넸다. (위사진)
이 남성은 찢어진 페이지 위에 담긴 시의 내용을 목탄으로 흰 종이에 써 내려갔다. 남성은 내용을 모두 옮긴 뒤 찢어진 페이지를 구겨 던져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성 앞의 흰 종이는 빈공간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은 선으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20페이지에 달하는 시 내용을 종이 한 장 위에 겹쳐서 썼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집은 표지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페이지가 찢겨나갔다.
2층 갤러리를 채운 관객들은 종이에 더 이상 채울 빈공간이 사라지면서 시낭독이 종료되고, 목탄을 든 남성이 자리를 떠나자 그제야 박수를 보냈다.
30여분간 진행된 이 퍼포먼스는 한국 실험미술계의 원로 김구림(87) 작가의 퍼포먼스 ‘생성에서 소멸로’를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시를 읽고 이를 종이에 적는 행위는 ‘생성’을, 찢어버린 시집과 까맣게 변한 흰 종이는 ‘소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이번 전시회를 공동 기획한 안휘경 구겐하임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는 “김 작가의 ‘생성에서 소멸로’는 많은 의미를 담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6월 이 작품이 재현됐을 때에는 한국 여성 연극배우가 윤동주와 김소월 시인 등 한국 시인들의 시를 낭독했다.
그러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김 작가의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국 관객들을 위해 미국인 낭독자가 영어 시집을 읽는 것으로 형식이 변경됐다.
김 작가는 지난 6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퍼포먼스를 지켜봤지만, 뉴욕 퍼포먼스는 참석하지 못했다.
김 작가는 비디오아트와 설치, 판화, 퍼포먼스, 회화 등 매체와 장르, 주제를 자유롭게 넘나든 원로작가다.

김구림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1세대 행위예술가이자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즉 전위예술가인 동시에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앞서간 선구자이다. 특히 미술뿐 아니라 무용, 연극, 영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서 활동한 ‘총체 예술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 소개된 최초의 전위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 1969〉, 한국 최초의 대지 미술 〈현상에서 흔적으로, 1970〉, 한국 최초의 메일아트 <매스미디어의 유물, 1970> 한국 최초의 일렉트릭 아트 〈공간구조 69, 1969〉 등이 모두 그의 불세출의 뛰어난 작품들이다.

한국에서는  김구림작가의 특별전은 지난 8월24일 부터 내년 2월24 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 김구림 작가는 명확한 예술에 대한 신념과 작가정신, 그리고 끊임없는 새로움에 대한 실험정신을 단 한순간도 잃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작가정신을 지키며 바꾸지도 않았다. 일찍이 이렇게 전위예술가로 자신의 일생을 전위적인 예술로 고집부리며 평생을 살아온 예술가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외로웠고, 억울해했고, 분노를 가슴에 묻고 살았다. 그는 유행에도, 물질에도, 명예에도 탐닉하지 않고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김구림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영국 테이트 모던미술관이었다.

미술계에 신선한 자극을 꿈꾸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버텨온 외로운 예술가의 길은 험난했다. 2012년, 영국의 최고 미술관인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이브 클라인, 쿠사마 야요이 같은 현대미술을 이끄는 세계적인 예술가 20인 명단에 마침내 김구림이라는 이름을 그 리스트에 올렸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한국인의 이름이 올라간 건 백남준 이후로 두 번째이다.

내년 1월까지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라는 특별전을 열고 있는 구겐하임미술관은 앞서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건용(81)과 성능경(79) 작가의 퍼포먼스도 소개했다.
김 작가의 ‘생성에서 소멸로’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이번 전시 기간에 준비한 한국작가의 마지막 퍼포먼스였다.
참조 컬처램프(http://www.culturelamp.kr)  (안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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