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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생활 타운뉴스

“다음 임기 때는 더 열심히, 더 잘 하겠습니다.”

 최초 한인 여성 주 하원  ‘엘렌 박’ 의원

 “기대 이상”  “엄지 척”  동포들의  박수받으며  재선 도전,    
 한복과 김치 알리는 K 문화 전도사 역할도 멋지게 수행.

  안지영 기자

미국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한명의 상급 의회 (주 의회 이상) 선량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지난 18개월 동안 여실히 목도 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이 바로 엘렌 박 뉴저지 주 하원 의원이다. 그는 아다시피 뉴저지 한인 사회 최초의  주 하원 의원. 그것도 여성이다. 여든 명의 하원 의원과 마흔 명의 상원 의원 총 120명의 주의회 의원 중 유일한 한인, 동 아시아계 의원이 그녀다.

그는 지난 2021년 선거에서 37선거구애서 당당히 1위로 주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37선거구가 펠팍, 포트리, 레오니아, 잉글우드 등 한인 밀집지역이 다수 포진해 있는 선거구 임에도 우리 한인들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았었는데 그간의 우리 한인사회의 꾸준한 유권자 등록 운동, 참여 켐페인이 주효해 마침내  쾌거를 만들어 냈었다.

22년 1월 임기를 시작한 그는 지난 18개월 동안 기대 이상의 성과있는 활동을 벌였고 올 11월 선거에서의 재선을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는데 무난히 당선될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그녀는 방심은 금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그는 동포사회를 위해 1백만 달러에 달하는 주정부 예산을 끌어왔고 우리 한국 문화의 전령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베트남 전쟁 참전 한국군 예우 법안, 인종차별 제지 법안을 마련하는 등 우리 한인과  한인 사회를 위한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면서 뉴저지 한복의 날 지정에도 큰힘을 쏟았고 지난해 12월 에는 ‘김치의 날’ 제정 결의안을 발의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엘렌 박 의원은 도움이 필요한 문제를 듣기 위해 지역 내 여러 한인 단체를 꾸준히 찾아가 만나오고 있다.

날씨도 화창했던 지난 수요일   지역구 사무실로 그녀를 찾아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엘렌 박 의원 과의 본격 인터뷰는 오래전의 계획이었지만 그간 양쪽의 사정에 의해 미뤄지다 마침내 이루어진 일이었다.
박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은 잉글우드 잉글 스트릿 96번지로  얼마전 이전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안동일 기자를 사진기자로 대동하고 그곳에 도착 했을 때 장선직 보좌관이 입구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 사무실은 길가 큼직한 일반 주택을 통째로 빌려 1층은 고든 존슨 주 상원의원  2층은 박 의원과 러님메이트 였던 샤마 헤이더 주 하원의원이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데 2층 박 의원의 방이 전망도 있었고 가장 넓었다. 기자를 안내한 장 보좌관의 설명에 의하면 새 사무실 건물은 160여년 된 고택을 리모델링 한 것이란다. 그래서인지 과거와 현대가 만나 이루는 세련미가 물씬 풍기는 내부였다.

집무실 책상에서 일어나 기자를 환하게 맞이하는 박 의원은 지난번 후원회 때 보다 훨씬 날씬해져 있었다. 옆의 안동일 기자가 주책없이  “굳이 할 필요 없는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셨군” 하는 것이 아닌가.  옆구리를 쿡 찔렀지만 마이동풍이다.

하긴 안동일 기자와 박 의원의 인연은 각별하다면 각별 할 수 있다. 박 의원의 부친인 박양명 악단장 또한 40년 이민지기로 형, 동생으로 지낸단다. 지난번 선거 때도 자신이 진행하고 있던 라디오 시사프로에 여러번 당시 박 후보를 초청해 대담을 나눠 그녀를 알리고 당선 시키는데 일조 했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기도 하다.  부친의 전언에 따르면  다이어트가 아니라 운동으로 날씬해 진 것 이란다..

일단 그날 나눈 얘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 한다.

– 벌써 첫 임기가 다 돼 갑니다. 그간의 감회를 간단히 들려 주신다면.

“말씀 하신 대로 세월 참 빠릅니다. 벌써 첫 임기가 다 돼 간다는 얘기는 다음 선거를 신경 써야 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번에도 동포 여러분들 꼭 나서 주셔야 합니다. 경쟁하는 공화당 만만치 않습니다.(웃음)  그것보다 누구를 지지하던 어느당에 표를 주건 선거에는 꼭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18개월 동안 정신없이 열심히 뛰었다고 자부 하는데 그럴수록 우리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습니다.  지난 기간은 동포들의 참여 덕에 작으나마 성과도 올렸고, 앞으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게된 기간 이었습니다. 처음엔 내가 해낼 수 있으려나 겁도 나기도 했지만 해볼 수록 지난번에 주 의회 선거에 나선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번 임기때는 더 잘할수 있다는 자신도 붙었습니다.”

– 지난 2년간의 성과라면

“먼저 지난해 뉴저지 한인회와 KCC,  올해 뉴저지 상록회와 민권센터에 주정부 예산을 지원받게 한 일을 꼽고 싶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돈이 말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주 의회에 들어가 보니까 의원이 신경쓰고 힘쓰면 따 낼 수 있는 각종 베네핏이 많더라구요.  앞으로도 열심히 찾겠습니다. 그리고 한복과 김치 등 우리 한국문화를 알린 것을 자랑스레 꼽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의회 내에서 김치 전도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만나는 의원마다 저에게 한국 김치에 데해서 물어오곤 하거든요.  민주당 공화당 의원 가릴것 없이… 어떤 의원은 며칠 전 카메라맨을 대동하고 사무실로 찾아와 김치 시식 장면과  그에대한 소개 강의를 녹음해 가지고 가서 자신 유튜브 방송에 올리기 까지 했어요.  조회수가 꽤 높던데요.
그리고 의원들이 너도나도 한복 데이에 자신들도 모델로 서고 싶다고 저에게 청탁과 압력(?)을 가 해오기 까지 합니다. 그만큼 한복의 성가가 높아졌다는 얘기죠.  그동안 우리들이 아시안으로서, 한국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들어가서 보니까 우리를 몰라서 그랬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것을 조금만 더 친절하고 친근하게 알려 주니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닙니까?”

– 반가운 얘기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아직 아시안 혐오범죄에 크게 신경쓰고 있습니다.

“물론 혐오범죄와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것을 계속 핵심 의정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주의회 에서는 금년에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의 역사를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교육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요. 현재 커리큘럼을 만드는 위원회가 조직돼 있고,  이르면 내년부터 뉴저지에 있는 모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아시안 역사와 문화를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문화에 대해서만 의무교육입니다.  인종차별을 막기 위해선 어릴 때부터 다문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 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주 의회 레벨로 가보니까 오히려 정당별 분파 현상이나 대립 현상이 심하지 읺다는 것입니다. 요즘엔 공화당 의원들이 더 살갑게 대해 옵니다.”

– 지난 의정 활동중 어려웠던 순간은

“우리 어르신들이 막무가내로 법과 규정을 어겨가면서 민원을 처리 해 달라고 할 때, 참 곤혹 스럽지요. 미국은 법치주의 나라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편법과 탈법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어느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준법 정신을 꼭 지녀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 이곳 뉴저지를 비롯해 미국내 각지에서 한국계 정치인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미한 실정인 듯 합니다. 이에대한 소견은?

“최근 인구센서스 통계를 보면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가 180만명에 이릅니다. 중국계는 2500만명이나 되지만 미국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비율을 보면 한인들이 훨씬 많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하원 435명 가운데 한인이 4명이죠. 대단한 일이기는 한데 들어와 보니까 연방의회보다 주의회가 한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더군요. 앞으로는 주의회에도 더 많이 진출해야 합니다.  이제는 뉴저지와 뉴욕주 한인 인구가 비슷한 규모입니다. 그럼에도 뉴저지 주의회는 상원 40명, 하원 80명인데 제가 유일한 동아시아계입니다. 인도계 4명, 파키스탄계 1명 등 아시아 출신이 6명에 불과해요. 뉴저지 아시안 비율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12명은 있어야 한다고 얘기됩니다. 더 많이 더 높게 진출해야 합니다. 필연이자 소명입니다.”

– 한국계 정치 진출과 우리 한인 동포 사회 발전은 서로 맞물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간과 했었는데 미국에서 한인들은 아시안 이라는 큰 카테고리로 묶였던 것이 사실이지요, 물론 과거에 비해 지금은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용어로 주류사회에  차별화 돼 각인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계 직업 분포를 보면 주로 소상공업이나, 변호사, 의사, 교수 등 특정 소수 직업군에 밀집되어 있어요. 제가 진출한 정치 분야는 물론이고 경찰, 교육, 정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야 어떤 이슈가 있을 때 모든 분야의 한인들이 뭉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저 역시 그 부분을 기회 있을 때 마다  지역사회에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 한국계 의원들이 한미관계 증진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얘기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인 동포들은 우리의 뿌리를 한국에 두고 있고, 한인 정체성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갖고 있는 집단입니다. 모국 걱정이 누구보다 강하지요.  다른 한편으론, 우리는 한국과 미국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미국내에서는 일단은 우리 스스로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조용히 참는 건 미국에서 결코 미덕이 아니죠.  그런데 더 큰  안목에서 보면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모국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미국 내 한인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순간 입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죠, 또 한국계 정치인에 대한 모국의  지원과 협력 그리고 관심은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한편으로 우리 한인 정치인들 역시 역시 다양한 소통 창구를 모국 한국과  만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 가을에 필 머피 주지사가 한국을 방문 하는데 저와의 동행을 요구해 와서 흔쾌히 승락 했습니다. ”

– 한국계 정치인들의 더 높은 진출을 위해 위해 동포 사회에 요청하고 싶은 게 있다면.

“첫째도 참여 둘째도 참여 입니다. 시민권 취득, 유권자 등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주 차원 연방 차원에서 한국계 의원이 늘어나면 우리  공동체에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한국계 정치인들 역시 나는 미국의 선량이라는 고지식한 생각만을 가질게 아니라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듯이 다소 무리가 되는 듯 싶더라도 한인 정체성을 간직하고 발현해야 합니다.  가령 제 사무실은 뉴저지에서 처음으로 인턴 6명을 모두 한인 학생으로 뽑았습니다. 이들의 경험이 쌓인다면 의회와 공직에 진출하는 한국계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정식 보좌관도 한인으로 채용했는데 뉴저지 주의회에서 유일하지요. 모두 우리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위해서  입니다. 다시 제 개인 얘기로 돌아오면  저 역시 이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힘들게 얻어낸 주 의원 자리를 다른 한국계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 상원, 연방 의회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그런 큰 포부를 갖게 되셨군요, 정진과 매진을 적극 성원 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위사진 지난 번  한복의 날 행사에서 중전마마 의상을 차려 입은 엘렌 박 의원.>

엘렌 박 의원은 1972년생으로, 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뉴욕 퀸스 플러싱으로 건너온  1.5세다. 한국이름은 정주. 박정주.   뉴욕의 명문  브롱스사이언스고교,  NYU를 거쳐 호프스트라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됐다.
6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채 이민 온 그녀는 박양명 브라스 밴드 악단을 이끌고 저녁마다 연주하느라 바빴던 아버지와 퀸즈의 릿지우드 에서 꽃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가 바쁜 와중에  여동생 지니(Jinny)의 식사와 옷가지를 챙기던 기특한 장녀 였다. 그랬던 동생  지니는 지금 공인 회계사가 돼 있단다.

부친 박양명씨는 그녀가 자라면서 한번도 자신의 속을 썩인 적이 없는 튼튼하고 활달한 공부도 잘하는 만점 딸이었다고 자랑한다. 엄마 아빠가 서울에 가 꽃집을 비웠을 때는 고사리손으로 어깨 넘어 배운 부케를 만들어 내기도 했던 그녀는  운동 또한 좋아해   중 고교때 축구부에 들어 그라운드를 달리며 공을 찼던 여자 축구의 선각자급 이었다고도 한다.

주류 사회에서 한인들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정치력 신장’이라 여긴 ‘엘렌 박’은 대학생 때인 1992년 부터 퀸즈 일대에서 유권자 등록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2001년  변호사가 되어서도 소수민족 정치력 신장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2015년 뉴저지 잉글우드클립스 타운의  시의원 선거에 나섬으로  현실 정치 활동에  마침내 발을 들였지만 그해 선거에는  단 26표 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녀는 이듬해에 다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여유있게 당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민주당 소속 시의회 의원으로 일했다.

당시 그녀는 아시안 변호사 모임에서 만난 대만계 연방검사 출신 이든 마 변호사와 결혼해서 슬하에 두 아들( 단테와 엑셀)을 두고 있었다.  2018년 그 무렵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곤란을 많이 겪어야 했기에  재선을 단념하고 가정으로 돌아갔었는데  지지난해인  2021년, 버겐 카운티 민주당 위원회가 그녀를 호출 해 주하원의원 출마를 권유 했던 것이다.

지금와서 우리 동포들이 생각 할때 민주당의 그 결정은 썩 잘한 결정이었다.  현재 주 하원에서 금융기관 및 보험 위원회와 과학기술혁신 위원회에 속해 있는 박 의원은 자신이 주 의회에 선출된 최초의 한국 여성일 뿐만 아니라 현재 유일한 동아시아 대표임을 깨닫고 있어  아시아의 대표 라는 생각으로 의정에 임하고 있다.

‘베스트 오브 아시아 인 아메리카 신스 2022’ 라고나 할까.   베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베스트로 머물기 위해서는 동포들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다.

미국정치에 있어 정치인 후원은 세금납부 못지않은 거의 시민의 의무사항이다. 정치인들의 성가는 그 모금액수 보다는 성원자 수에서 가늠 된다고 얘기된다.  그녀를 이곳에 올려 놓은 우리들은 그녀를 더 높은 곳으로 올리기 위해 지금이라도 체크북을 열어 그녀의 후원구좌를 적어야 하지 않을까.  5달러 10달러가 결코 부끄러운 금액이 아니란다.

엘렌 박 의원 사무실 연락처는  201- 308- 7062 (새번호), aswpark@njleg.org (이메일 한국어 가능) .  특기할 사항은 사무실 번호로  연락을 한번 하게 되면 엄청난 정보의 보고이자 하이클라스 사랑방인 박의원 중심의  단체 ‘카카오톡’ 멤버가 되는 특전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안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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