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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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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호법, 도대체 무엇이 문제길래….

‘지역사회 간호’라는 문구, 간호조무사의 자격 규정이 문제
대통령 거부권 행사 했지만 야당 간호사협 극렬 반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계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부측은 전날 거부권 행사의 이유를 설명하며 ▲ 간호법 제정이 의료계의 갈등을 확산시킬 것이며 ▲ 간호조무사에 대한 학력 상한으로 직업 선택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대한간호협회는 정부가 의사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을 인용하며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단식 논성을 계속 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길래 이토록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난리 법석인가. 쟁점을 정리 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간호법의 조항은 ‘지역사회 간호’라는 문구와 간호조무사의 자격 관련 규정이다. 여기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등은 간호사와 관련한 별도의 법 제정 자체가 다른 의료 직역의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호법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의 자격, 업무 범위, 책무,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법으로, 의료법에서 간호 관련 내용을 떼어낸 독자적인 법이다. 2021년 국민의힘 최연숙, 서정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을 묶은 대안이 지난달 27일 여당의 표결 불참 속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 ‘지역사회 간호’ 규정으로 단독개원 가능?
갈등의 핵심은 제정안이 담고 있는 ‘지역사회 간호’라는 표현이다.
제정안 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사, 간호조무사 단체 등이 참여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의료기관 외에 ‘지역사회’에서 간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 단독으로 개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간호사가 의료행위를 해 의료 체계에 혼란이 발생하고,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이 늘어 병의원의 간호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역사회’ 문구가 간호사의 개원을 가능케 한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의료법이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 33조는 의사는 종합병원·병원·요양병원·정신병원 또는 의원을, 치과의사는 치과병원 또는 치과의원을, 한의사는 한방병원·요양병원 또는 한의원을, 조산사는 조산원만을 개설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도 10조 2항에서 간호사의 업무를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적고 있다.
당초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법이 규정하는 내용이 다른 법(의료법)에 우선한다’는 부분을 담고 있었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10조 2항의 ‘진료의 보조’라는 표현도 단독 개원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법안 심사 중 추가됐다. 하지만 의협등 반대론자 들은 개원은 않더라도 지역사회에서 단독 의료 활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논란에 대해 복지부는 ‘지역사회 간호’라는 문구로 간호사 단독 개원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이 규정이 가져오는 혼란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조규홍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간호법에서 지역사회라는 것이 목적에 들어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별로 없고 어차피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지난 15일 브리핑에서는 “간호법안이 보건의료인 간의 신뢰와 협업이 깨져서 갈등이 더욱 확산될 우려가 있다. 의료법 체계를 전면적으로 뒤흔들어 의료체계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논리를 폈다.

◇ 간호조무사 자격은 ‘고졸’?…”간호조무사 합격자 41%는 대졸”

간호조무사들의 단체인 간무협은 간호법안의 간호조무사 자격 관련 규정이 불합리하다며 ‘한국판 카스트법’이라고 비판한다.
간호법안은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특성화고의 간호 관련 학과 졸업한 사람’, ‘고등학교 졸업자로 간호조무사양성소 교육을 이수한 사람’ 등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들어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고졸’로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간호법은 간호조무사가 되려면 특성화고 관련학과를 나오거나 간호조무사학원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을 뿐 대졸 이상 학력자의 간호조무사 자격을 막고 있지 않다.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간호조무사 시험 합격자의 41%는 대졸 이상 학력자였다고 간호협은 주장한다.
간호법안의 관련 규정은 사실 의료법의 관련 규정을 그대로 따온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간호협은 복지부가 스스로 의료법에 신설한 규정을 간호법 탓인 양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간호협 등이 이 규정을 간호법에도 그대로 가져온 것은 학력을 ‘고졸’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문대 간호조무과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전문대에 간호학과가 있는 상황에서 간호조무과가 생기면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간호조무사의 학력 규정은 실제로 지난 2012년 한 전문대학에 간호조무과가 생긴 것을 계기로 논란이 된 바 있다. 특성화고교와 학원 측이 반발했고 현행 규정이 유지됐다.
이에 대해 간호조무사들은 간호조무사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이나 학원으로 충분하다는 시각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사이 ‘계급’을 고착화한다고 주장한다.
간무협은 이 문제와 관련해 “시민 건강을 지키는데 일조하고 있음에도 고졸출신, 학원출신 꼬리표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다. 응시 자격의 학력 제한은 독소조항이며 차별적이고 위헌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 대통령 공약 파기?…논란 규정 대부분 삭제돼 이익·손해 적어

간호협과 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윤 대통령이나 여당이 선거운동 당시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시절인 작년 1월11일 간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간호협회의 정책제안서를 받으면서 “간호협회의 숙원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간호사들의 지위가 명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간담회장에는 ‘간호법 제정으로 국민 건강 지키겠습니다’란 글귀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원희룡 당시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은 같은달 24일 간호협회와 정책간담회에서 간호법 제정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누구 못지않게 앞장서서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것은 후보가 직접 약속하셨다”고 말했다.
다만 간호법 제정은 대선 당시 정책공약집이나 정부 국정과제에는 빠져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간호사 처우 개선에 대한 원칙을 밝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지난 3일 논평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간호법 제정을 공약한 바 없다. 간호사 처우 개선에 대한 원칙을 선언했다”며 “공식으로 후보가 협회나 단체에 약속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조규홍 장관 역시 전날 브리핑에서 “대선 당시 국민의힘은 간호법 제정을 통해 지역사회 통합간호와 통합돌봄체계를 구축하고, 간호사의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간호법안으로는 통합간호, 통합돌봄체계 구축이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간호법 제정안으로 의료 직역간 갈등이 격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법안 자체만으로 볼 때 법 제정을 주장하는 쪽이 얻을 이익도, 반대하는 쪽이 우려할 손해도 적다는 지적도 있다.
논란의 핵심인 ‘지역사회 간호’ 규정은 ‘간호법 내용이 다른 법(의료법)에 우선한다’는 규정이 삭제되면서 파급력을 잃었고, 간호조무사 자격 관련 규정은 의료법에서 그대로 따온 만큼 이전 상황과 달라질 것이 없다.
이런 까닭에 의료계 직역간 자존심 싸움과 여야간 힘겨루기가 계속되면서 명분 없는 싸움이 격화돼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의료계 내에서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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