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 시찰 중 폴란드까지 열차로 극비 이동 미군 수송기에 올라
공중조기경보기(AWACS) 순찰, 긴급 출동한 미 F-15E 전투기들 엄호
바인든의 통큰 크리스마스 선물에는 울음보 블로드미르 젤렌스키 우크라니나 대통령이 개전 300일을 맞아 21일 미국을 전격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고 미 의회에서 30분간 격한 연설을 한 뒤 페트리옼트를 가슴에 안고 곧바로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깜짝쇼 처럼 연출돼 엄청난 성과와 회제를 뿌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이 성사를 위해 미국과 우크라이나 양국이 수 개월간 물밑작업을 해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의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전시상황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그의 미국행이 첩보영화의 한 장면처럼 중계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여론을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AP통신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의 보좌관과 미 관리, 백악관 고위급 관료 등을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지난 10월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서 열린 제1회 크림 플랫폼 의회 정상회의 이후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 자유주의 국가들의 흔들림 없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회의에 참석한 펠로시 의장이 미국으로 돌아온 뒤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의회 방문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케빈 메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미 의회 대표들에게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과 그와 나눈 대화를 전하면서 그가 미국 의회를 방문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는 수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대통령의 백악관 방문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한 미국 관리를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전부터 바이든 대통령과 미 고위급 관리들과의 통화에서 적절한 시기가 오면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은 나라는 미국이라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다 이달 11일 양국 정상간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거듭 초청했고,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가 왔다"고 말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성사됐다는 것이다.미국까지 오는 여정도 비밀작전을 방불케 했다. 구체적인 동선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전날 동부전선을 방문 한다고 언론에 알렷던 그는 실제 동부전선 최요충지인 바흐무트를 찾은 그는 폴란드 접경도시 프셰미실까지 열차로 이동한 다음 미군 전격적으로 수송기에 올라탔다. 미군 수송기가 북해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러시아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공중조기경보기(AWACS)가 순찰했고, 이후에는 긴급 출동한 미 공군 F-15E 전투기들이 엄호했다.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쯤 백악관에 도착했다. 전쟁 발발 이후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카키색 스웨터, 바지를 입고 부츠를 신은 채였다. 외국 정상으로서는 초유의 복장이었다. 그가 차량에서 내리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나란히 서서 인사를 건넸다.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마치 전장에 나가있는 휴가 군인 아들을 맞이하는 노부부의 모습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1일 바이든 대통령과 집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 "정말 더 빨리 오고 싶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 사실을 알지만,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그럴 수 없었다"며 "우리가 상황을 통제했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지원 덕분"에 이번 방문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의 회담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진행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사실을 언급하며 “당신은 미국에서 올해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지원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포대를 지휘하는 우크라이나군 대위의 부탁이라며 대위가 받은 무공훈장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건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는 매우 용감한 사람으로, 매우 용감한 대통령에게 그것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분하지만 감사히 받겠다”면서 “여기에도 전통이 있다.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내 아들도 이른바 커맨드 코인을 갖고 있다. 그가 그 동전 중 하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쟁 발발 이후 수시로 통화해온 두 정상 간 회담은 예정보다 길어져 2시간 넘게 진행됐다. 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 나선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는 질문에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며 “여러분의 자녀가 살아서 대학에 가고 그들이 자녀를 가지는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나 역시 아버지로서 말한다”면서 자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부모들이 너무나 많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지막 일정이 된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말 고맙다. 내게는 과분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25분간 통역 없이 영어로 연설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차림이었다. 민주당은 물론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도 연설 중간에 여러 차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연설 도중 18차례 기립 박수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