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처리 컨테이너 84만3천 TEU로 LA 항구 추월
요율 인상한 파나마 운하, 때 아닌 특수 누려
미국의 물류 적체가 해소 되지 않은 가운데 동부 뉴욕·뉴저지 항구의 물동량이 서부 지역의 대표적인 항구인 LA 항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물류 데이터 회사인 ‘프로젝트 44(Project 44)’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뉴욕·뉴저지 항구에서 처리된 컨테이너 물동량은 84만 3천 191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단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뉴욕·뉴저지 항구보다 물동량이 많았던 LA 항구는 80만 5천 314 TEU에 그쳤다.
뉴욕·뉴저지 항구는 지난 1월 물동량이 76만TEU에 그치는 등 매달 거의 10만 TEU 정도 LA 항구에 뒤졌으나 8월 들어 처음으로 LA 항구를 제친 것은 물론 미국 전체에서 가장 많은 물동량을 기록하게 됐다.
그동안 LA 항구는 미국의 주요 통상 국가들이 모여 있는 아시아 지역과의 해운이 편리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물동량이 많은 항구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뉴욕·뉴저지 항구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됐다.
LA 항구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줄어든 것은 팬데믹이 끝나면서 아시아 국가로부터의 수입이 늘고 있지만 최근 노동자 파업이 발생해 물류가 적체되는 병목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컨테이너를 움직이는 정기 선사들은 LA 항구를 피해 뉴욕·뉴저지 등 동부지역 주요 항구로 물류 이동을 늘리고 있다.
한편 ‘맥크라운 컨테이너 물동량 관측(McCown Container Volume Observator)’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에 뉴욕·뉴저지 항구를 포함해 미국의 상위 10대 항구의 컨테이너 물동량(해외 수입 컨테이너 기준)은 총 216만5939TEU를 기록했다. 이는 월간 기준으로 사상 5번째로 많고, 7월보다 3% 증가한 것으로 미국 경제가 팬데믹을 벗어나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증거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뉴욕·뉴저지 항구는 지난 7월 한달 동안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에서 오는 수입 컨테이너 물동량이 지난해 7월과 비교해 18.7%나 증가했다.
아시아에서 미 동부로 오려면 파나마 운하 (위 사진)를 거쳐야 하는데 이 때문에 파나마운하의 선박 통과 량도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파나마가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한편 파나마운하청은 지난해 4월, 이용고객인 선사들에게 의견을 묻는 절차 없이 통행료 인상을 단행해 해운업계가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옛 파나마 운하의 경우 폭 91피트 미만인 선박은 1만500달러, 폭 107피트 이하이자 길이 900피트 미만인 선박은 4만달러, 폭 107피트 이하이면서 길이가 900피트에서 966피트 사이인 선박은 5만달러의 통행료를 내도록 했었다. 선박 크기에 따라 최소 2500달러에서 최대 3만5000달러까지 6단계로 운영돼왔다.
지난해 까지 2500달러의 통행료를 내던 길이 300피트 이하 선박의 경우 요율 인상으로 4.2배가량 오른 1만500달러를 물게 됐으며 폭 140피트 미만 선박은 7만달러, 폭 140피트 이상 선박은 8만5000달러로 인상됐다.
파나마운하청은 일관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약시스템을 통해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운하 예약시스템 요금을 조정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통행요율은 지난해 4월15일 이후 적용되고 있다.
1914년 완공된 파나마 운하의 소유권과 관리권은 1999년 까지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파나마 운하로 재미를 본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파나마 는 물론 거의 전 셰계의 반발로 파나마 운하 지대 반환을 결정하게 되고, 1977년 9월 7일 파나마 운하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가 자신의 공약으로(파나마 주둔 미군 철수 공약) 열성적으로 추진했다. 파나마에서는 이 조약 비준을 국민투표에 회부해 67%의 찬성(투표율 96%)을 얻어 조약을 비준했으며 미국에서는 상원에서 찬성 68 대 반대 32로 비준 동의에 필요한 2/3 찬성(67명 찬성)을 가까스로 넘어 비준되었다.
1979년 10월 1일 합영기업형태의 파나마 운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파나마 측에 반환했으나 파나마인들은 운하 자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펼쳤고, 마침내 1999년 12월 14일 파나마 운하 반환 협정을 맺어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 운하도 반환했다.
1914년에 완공된 이후 85년만에 이뤄진 일이였다. 권한 이양식 때 미국 현직 고위 공직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서 미련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고 회자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