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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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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북> 커피 한잔과 H 마트

영화 ‘에치마트에서 울다’속 의 ‘커피 한잔’을 기다리며… 

안지영기자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국에서 대 히트했다는 펄 시스터즈의 ‘커피한잔’이다. 이 노래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올드타이머들이 의외로 많다.

이 노래 ‘커피한잔’ 하면 지금은 덴버리에 가 있는  닥터 주,  엘리스 언니가  생각난다.  류마티즘 최고 전문의인 엘리스 언니는 재주도 많다. 피아노를 연주자 급으로 치는가 하면 노래도 잘한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작은 언니가 또래 친구였던 조영남 윤형주 같은 가수들을 집에 불러와 자신에게 긴 드레스를 입혀놓고 자랑스레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데 그 노래가 바로 커피한잔 이라는 얘기를 몇번이나 하면서  흥얼거리곤 했었다.  그런날이면 남편은 돌아오는 차속에서 계속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커피한잔’ 노래가 한국계 미국 뮤지션이 중심이 돼서 만드는 영화의 주제곡으로 등장하게 된단다.
며칠 전 기자로서는 엄청난 인물일 수 밖에 없는 한아름, 에치 마트의 권일연 회장을 만났는데 그에게 들은 얘기다.
한국계 뮤지션 미셀 자우너가  쓴 베스트셀러 ‘H마트에서 울다’가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처럼 우리 에치마트 광고 선전을 해줍디다.” 권회장은 이 소식을 이렇게 전하면서 껄껄 웃었다. 커피 한잔의 기다림은 그에게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H마트에서 울다’는 유명 인디 팝 밴드인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한국계 미셸 자우너의 사연을 담은 에세이다.

자우너는 지난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누가 미스 브렉퍼스트를 연기하길 원하는가”라는 게시물을 올리며 자신의 책이 영화로 제작되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18~25세 한인 여성 배우를 캐스팅 중이라고 밝히면서 “자기소개 영상과 거주지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이메일 주소도 ‘에치마트 오픈 콜 케스팅’이다. (hmartopencallcasting@gmail.com) 영화는 ‘더 화이트 로투스’의 이든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윌 샤프가 감독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에세이집 ‘H마트에서 울다’는 한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우너가 25살 때 엄마를 갑작스럽게 암으로 떠나보낸 뒤 H마트와 한국음식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쓴 글이다.
지난 2021년 4월 책으로 출판되자마자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같은 해 뉴욕타임스의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67주간 이나 머물렀다.

이 에세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 뒤 에치 마트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글을 쓴다'” 하고는 “전화해서 우리가 예전에 에치 마트에서 사 먹었던 그 맛있던 김이 어느 브랜드냐고 물어볼 사람이 없다면, 내가 아직도 한국인일까?”라고 다짜고짜 묻는다.

이 책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자신이 한국인임을 확인하는 과정, 세상을 떠난 엄마를 기억하려는 노력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디아스포라적 삶이 현기증을 불러 일으킨다”고 평가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대부분의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는 얘기다.

  H마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자우너의 혼란스러웠던 성장기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와 함께 한 유년 시절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어머니는 본인뿐만 아니라 딸의 외모에도 집착했고, 자녀의 주체적인 삶을 독려했던 미국의 부모들과 달리 자우너의 장래에 집착했다. 딸도 엄마도 때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다. 미화되지 않은 보통의 날것 그대로인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록밴드를 하겠다는 딸에게 어머니는 “가난한 예술가”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극력 반대한다. 보통의 자녀들처럼, 자우너도 성인이 되자 지루한 고향과 갑갑한 부모를 떠난다. 하지만 독립 이후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던 화려한 미래는 어디에도 보장돼 있지 않았다. 그의 밴드는 생각보다 유명해지지 않았고, 어느덧 스물다섯이 된다. 도시의 생활에 지쳐갈 때쯤 어머니의 투병 소식을 듣고 그는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모녀는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았고, 이제야 서로를 이해할 여유를 가진다. 에치마트에서 구입한 식재료로 만든  한국음식이 그 중요한 매개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자우너는 미국에 온 한국의 이모와 사촌 오빠에게 대접할 된장찌개를 끓인다. 유튜브에서  끓이는 법을 검색한다. 어머니의 샌들을 신고 H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고, 평생 어머니가 그를 위해 밥을 했을 솥에 밥을 지었다. 그날 이후 그는 종종 유튜브에서 한국 음식을 검색해 요리한다. 그녀의 책에는 떡국, 동치미, 김, 미역국, 만둣국, 삼겹살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의 이름이 나열돼 있어 반갑다.

음식을 통해 그렇게 어머니의 온기는 다시 딸의 곁에 남는다. 물론 자우너에게 어머니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자우너는 어머니에게 온 편지 한 통을 집에서 발견한다. 편지에는 그림을 배우며 즐거워했던,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있다. 딸은 어머니가 떠난 뒤에야 자신이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야 하는 처지”가 됐음을 깨닫는다.

어느덧 자우너의 밴드는 여러 나라에 투어 공연을 갈 만큼 유명해졌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맛본 성공이다. 실제 그녀는 그래미 후보에도 올랐고 빌보드에도 소개 됐다. 성대한 한국 공연을 마친 어느 날, 그는 어머니 이정미씨가 그토록 좋아하던 노래, 틈나면 흥얼거리던 그 노래 ‘커피 한잔’을 떠올린다. 노래방 반주에 맞춰 ‘커피 한잔’을 부르며, 자우너는 그렇게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 남겨진 또 하나의 비밀을 해독해 나간다. 기다림의 미학을 역설적으로 담은 그 커피한잔이 바로 자신의 영화 주제곡이다.

영화의 스토리가 어떻게 각색 되어질런지는 아직 모르지만 문득, 하필이면 왜 음식을 통해서 엄마를 추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음식은 단순히 생명 유지를 위한 먹거리만은 아니다.
나만의 취향과 선호를 나타내고, 우리 가족만의 밥상문화로 우리식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 어떤 냄새만 맡아도 인상적인 한 순간의 식탁과 엄마의 손맛을 기억하게 한다. “밥 한번 먹자”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우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나라마다 다른 식탁 매너로 예절과 교양까지도 표현한다.
식 문화라고 표현할 정도로 음식이야말로 문화의 핵심이다.
한국의 음악과 춤, 영화와 드라마, 휴대폰과 자동차가 세계에서 인정받은 가운데, 다음은  한국의  음식문화 차례가 아닌가 싶다.

한국의 식문화를 이곳 미국땅에 알리고 있는 일등 공신이 바로 H 마트 아닌가. 82년 우드사이드 작은 골목에서 시작한 한아름은 이제 미전역에 90여개의 지점을 운영 중이다. 연매출은 20억달러로 중남미, 아프리카 소국의 연 수출액을 웃돈다.

권회장은 자신들  에치마트 사람들로서는 기특하고 고마운 미셀 자우너를  지 지난해 자랑스런 한국인상 수상식에서 잠깐 스쳤을 뿐  에세이집 출간에도 영화에도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고,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지런하면 먹고는 살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40년 이민 동기로 형 아우로 지낸다는 남편 안동일 기자 덕에 어쩌다 보니 이날 처음 만나 식사를 함께 한 권일연 회장은 자신감 넘치면서도 겸손한 그리고 근검하면서도 쓸때는 쓸 줄 아는 그런 부자였다. 진득한 기다림은 찬스를 불러오는 법인가 보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공은 물들어 올때 열심히 노를 젓는다고 했다.

그는 결코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지난해 리틀페리 매장을 오픈했을 때 작업복에 목장갑을 끼고 스피커 설치를 하고 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야 했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다시금 놀랬다고 했었다. 그날도 커팅 테이프는 아들인 브라이언 사장이 했단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감사하고 감탄하라고 만드셨다는데 권회장과 에치마트는 미국에 온 순간부터 나를 늘 감탄하게 만들었다. 첫째 그 규모 때문이었고, 둘째 변하지 않는 종업원들 때문이었다. 좋은 기업은 종업원이 만드는 법이다.

자우너의 경우 십수 년이 지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의 음식을 다시는 맛볼 수 없게 되었을 때,  H마트에만 가면 운다고 했는데… 큼직한 통에 담긴 깐 마늘은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데, 한국 음식 요리에 마늘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아주는 곳은 그곳 뿐임을 알게 됐다는데…  그래서  H마트는 한국계 미국인에게 늘 기다리게 되는 ‘고향의 맛’을 찾게 해주는 보물창고다.
H마트에서 장을 보고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자우너는 이곳에서 “모두가 기다리던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는 걸 깨닫는단다.

나는 이날 권회장과 ‘밥’을 함께 먹고 이어진 티타임을 함께 하면서 그의 ‘커피한잔’은 진득한 기다림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권회장과 만나고 돌아온 오후, 기다리던 엘리스 언니의 전화가 덴버리에서 왔다. 엘리스도 이제는 기다림에 익숙해 졌단다. 오히려 그곳에서 기다리니 “스트레스 프리”라고 했다.
엘리스의 구명운동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권회장과 함께 엘리스의 커피한잔을 듣고 싶다.
아무리 봐도 기자와 기자의 엄마 얘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 한  영화 ‘에치마트에서 울다’의  개봉이 몹씨도 기다려 진다.  (7/13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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