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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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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연재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12회      안동일 작

/로컬 어페어즈라 불리우는 부서에서 국제부로 승진해 옮겨 갔지만 거기는 더 아사리 판 이었다.
국제부라는 곳은 대개 제3세계 가난한 나라에 진출 하고 있는 미국 대기업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일이었다.
국내 일에서는 그래도 얼마쯤은 체면도 지키고 여론의 눈치도 보곤 했지만 여기서는 그런것이 전혀 없었다.
단지 돈만 벌면 된다는 그 원칙 만이 지켜질 뿐이었다. 자신과 회사는 철저하게 돈의 편이었다. 돈 받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와 법률회사의 일이었다./

 

윌리로서는 학교를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변호사가 되면 적극적으로 나서 그녀를 수소문 하겠다고 다짐 했지만 회사의 일은 윌리를 한가하게 놔두지 않았다. 그러니 일에 더 짜증이 났다.
법률회사 출근 첫날 부터 윌리는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저어야 했다. 회사는 월가의 고층 빌딩군 안에 있었다. 경관과 전망이 뛰어난 최고급 사무실이었다.
그러나 윌리가 배정 받은 방은 빌딩의 서쪽 구석이었다. 남쪽에서는 뉴욕 항만과 대서양이 내려다 보이고 북쪽 에서는 맨해턴의 스카이 스크랩퍼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건물 이었는데 회사 측에서는 주니어라 불리우는 신참 변호사들에게는 유독 빌딩들에 가로 막혀 있는 서쪽 구석을 배정했다.
방 배정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첫날 초임 변호사들의 메니저 역할을 하는 파트너 중의 한사람인 브라운의 교육 내용이 참 한심한 것이었다. 파트너는 일반 회사로 치면 이사를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윌리의 회사에는 파트너만 통털어 2백명 가까이 됐다.
브라운은 다짜고짜 S.S & M 회사의 품위 부터 강조 하고 나섰다. 사건에 대한 법률적 소양이나 고객에 대한 법률 서비스 보다 회사의 멤버로서의 품위와 자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몇차례 반복해서 말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윌리가 입고 있는 옷과 신고 있는 구두를 자꾸 쳐다 보는 것이었다. 윌리가 생각해도 아침에 구두를 닦고 나올걸 그랬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구두에 먼지가 뭍어 있기는 했지만 옷이야 별일 있겠나 싶었다. 윌리는 백화점에서 구입한 카키색 기성복을 입고 있었다. 고급품은 아니었지만 쓸만한 양복 이었는데도 브라운의 눈초리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 했다. 함께 입사한 다른 녀석들 가운데 최고급으로 쏙 빼입은 녀석들을 쳐다보는 눈길과는 천양지차 였다. 윌리도 들은 바 있는 얘기였다. 빅펌에 입사한 초임 변호사들은 연봉 타서 옷 사 입기 바쁘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빅 펌에서는 최고급만을 요구 했다. 갑자기 메스꺼워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브라운도 더이상의 말은 않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쓰잘데기 없는 훈화와 회사 자랑만 잔뜩 들은 뒤에 자신들의 자리로 내려 왔다.
초임 변호사들에게는 두명에 한명 꼴로 여비서가 배당 됐다. 윌리에게 배당된 비서는 스텔라는 50줄의 백인 할머니였다. 변호사 비서 생활만 30년 넘게 한 능구렁이 중의 능구렁이였다.
여비서가 비서가 아닌 감시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스텔라 들은 자신이 맡은 변호사가 몇시에 누구와 어떤 통화를 하고 있으며 몇시에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점심은 누구와 몇시간에 걸쳐 먹는지 세세한 것 까지 일일히 기록해 인사부서에 보고 하는 모양이었다.
윌리등이 입사해서 처음 몇달 동안 한 일 이라고는 회사 자료실과 복사실을 오간 일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자료를 찾고 복사를 하거나 베껴 써야 하는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견습생 시절 보다 더 고됐다. 윌리도 법과대학원 졸업반때 인턴쉽을 한적이 있었는데 워싱턴의 그 회사는 이처럼 많은 복사를 시키지는 않았었다.
S.S & M 의 방침이 바로 물량과 권위로 상대방을 제압 한다는 것이었다. 변호사들은 사건을 배정 받게 되면 그와 유사한 사건의 판례, 관련 법조문들을 모조리 찾아내 복사하거나 새로 타이핑해 아예 책 한권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근사한 가죽 장정 까지 마친 뒤 그 두툼한 자료집을 들고 법정에 들어서면 상대방인 검사나 변호사들은 기가 질려 처음 부터 주눅이 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또 판사나 배심원들 역시 그처럼 엄청난 준비를 평가하게 된다는 얘기 였다. 그러자니 죽어 나는 것은 주니어 변호사 들이었다. 이놈의 회사는 그 흔한 컴퓨터 온라인 시스템을 깔아 놓지도 않았기에 더 죽어 나야 했다. 시어머니 여비서들은 정시에 퇴근하고 신참들만 새벽까지 사무실의 불을 밝히고 있어야만 했다.
윌리들은 아에 회사를 학교라고 불렀는데 모든 것이 교육이라면서 신참들을 혹독할 정도로 훈련 시켰기 때문이다. 복장에서 부터 화술 그리고 테이블 메너며 고객을 후리는 방법 까지 독특한 사풍으로 가르치려 들었다. 가끔씩 파트너들이 신참들에게 점심을 함게 하자고 데리고 나가는 날이 있는데 이 또한 고역이었다. 파트너들은 주로 점심시간에 고객과 만났다. 이 점심시간에 몇잔의 마티니를 마실 수 있냐는 것이 그의 지위를 나타내는 징표 였다. 파트너 변호사들은 꼭 보드카 마티니를 마셨다. 아무리 술이 센 사람이라 해도 벌건 대낮에 석잔쯤의 엑스트라 드라이 마티니를 마시면 취하게 마련인데 파트너들은 여섯잔까지도 마셔 댔다. 나중네 알고 보면 그들이 마신것은 거의 맹물이었다. 클라이언트를 안내 하는 고급 레스토랑은 그들의 단골이었고 바텐더들은 그들이 마실 잔에는 물을 보냈고 상대방만을 취하게 하는 약속된 트릭이 있었던 것이다.
또 파트너들은 일식당을 좋아 했다. 스시며 사시미를 먹을 줄 알아야 유능한 변호사가 되는줄 아는지 호들갑을 떨면서 고급 초밥과 생선회를 찾았다. 정말로 그들이 그 맛을 즐기고 있는지는 윌리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꼭 푸른 겨자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떼어내 생선회에 얹어 기꼬만 간장에 찍어 먹었다. 파트너 한명과 일식집에 처음 갔을때 윌리는 습관대로 간장에 겨자를 듬뿍 풀었더니 그의 인상이 찌푸려 지는 것이었다. 간장 종지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은 천박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일에 묻혀 시간에 쫒겨 가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와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갔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 수록 자신에 대한 그리고 자신 직업에 대한 회의와 불만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동안 윌리가 맡은 사건이란 것들이 대부분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더 괴롭히는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맡았던 사건이 큰 쇼핑몰과 콘도미니엄을 지으려는 대형 부동산업자가 자신의 옛 건물에 세들어 살던 테넌트들과의 분쟁에서 그들을 내쫒는 부동산 업자의 편에 서야 했던 것 부터 단추는 잘못 끼워지고 있었다.
테넌트들을 회유하고 협박하고 테넌트 편에 있는 로컬 변호사들을 조롱 이라도 하듯 예의 권위와 물량으로 밀어붙혀 사건을 유리하게 담판 짓고 종결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배당 받은 사건이 보험회사간의 분쟁이었다. 어떤 중년 남자가 사망 했다. 사인은 심장 마비였다. 그 남자는 생명 보험에 가입해 있었다. 두개의 회사에 각각 25만불과 50만불의 액수가 그 프리미엄이었다. 작은 액수는 지방에 본사를 둔 작은 회사에서는 별 군소리 없이 보험금을 지급 했는데 큰 회사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보험금 지급을 차일 피일 미루다 사망자가 병력을 속였다는 이유를 내세워 약속액의 3분의 1만을 지급 하겠다고 유가족에게 통보했다.
유가족 들이 가만 있을리 만무였다.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게했다. 대동소이한 약관이었는데도 어떻게 한 회사는 군소리 없이 지급 했는데 한 회사는 딴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소송서 큰 회사는 소송인에게 졌는데 이번에는 작은 보험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회사 명예를 훼손했고 보험업계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부당한 개입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소송을 걸었다. 윌리가 큰 회사의 대리인이 돼야 했다. 그 다음에는 가난한 시정부를 상대로 대 회사가 제소한 세금 반환 소송, 그다음엔 또 부동산 업자의 손발이 되어 테넌트들을 내쫒는 일…
윌리가 맡은 사건들은 대개 이쪽이 승소하거나 유리한 담판으로 결말이 나곤 했지만 그때마다 윌리는 씁쓸한 미소를 스스로에게 흘려야 했다.
큰 펌에서 일 한다는 것이 어차피 그런 일이 아니겠냐고 스스로 자위 하기도 했고 ‘그래서 세상은 실력이 있고 돈이 있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되뇌였지만 그보다는 더 크게 이게 아닌데 하는 소리가 자신 내부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로컬 어페어즈라 불리우는 부서에서 국제부로 승진해 옮겨 갔지만 거기는 더 아사리 판 이었다.
국제부라는 곳은 대개 제3세계 가난한 나라에 진출 하고 있는 미국 대기업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일이었다.
국내 일에서는 그래도 얼마쯤은 체면도 지키고 여론의 눈치도 보곤 했지만 여기서는 그런것이 전혀 없었다.
단지 돈만 벌면 된다는 그 원칙 만이 지켜질 뿐이었다. 자신과 회사는 철저하게 돈의 편이었다. 돈 받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와 법률회사의 일이었다.
국제부에 있으면서 윌리는 남미며 중동의 여러나라를 여행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곳에 무기며 전략 상품들을 판매하는 큰 군수산업체가 회사의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들에 갈때 윌리는 고객을 대신해서 그 나라의 실력자들에게 돈가방을 전달 하는 비리와 부정의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 했다. 그것 뿐이 아니었다. 그런나라의 실력자들이 미국에 오는 경우에는 에스코트 서비스 전화까지 윌리들이 해 줘야 했다. 한심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대형 법률회사에 속한 변호사들이란 겉으론 그럴싸 해 보이는 신사였지만 속으로는 곪아 터진 빛좋은 살구 와도 같은 존재 였다.
이런 생활이 계속 되면서 윌리는 승혜와의 약속을 생각 하곤 자신을 자책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진 변호사가 되어 작으나마 세상의 법과 정의를 지키고 그를 발판으로 더 큰일을 도모하겠다고 다짐했던 과거의 일들이 자신을 조소하듯 문득문득 뇌리를 파고 들었다.
백방으로 수소문 해 봤지만 승혜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서산 어딘가에 살고 있을텐데 주소를 아는 사람도 또 소식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가끔식 아틀랜틱 시티의 유진을 찾아 가는 것이 그나마 그시절 윌리의 가장 큰 위안 이었다.
아틀랜틱 시티에서 대서양 바다를 바라보면 시름과 회의를 얼마간은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속성과 탐욕이 그대로 표현되는 카지노의 분위기와 그 속의 군상들에 섞여 있으면 돈의 냄새, 탐욕의 냄새, 그리고 얼마간의 범죄의 냄새에 휩싸여 묘한 위안을 받게 되는 감상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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