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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콘사 RGM '영웅의 진격'에서
연재소설

<연재소설> 영웅의 약속

안동일 작

연재 9

…..“오빠 정말 국무장관 할려고 그래?”
승혜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물어왔다.
“그럼 국무장관만 해, 대통령도 하려고 하는데…”
“피…”
윌리의 허풍과 말하자면 엄청난 고백에 승혜의 기분이 많이 풀어져 있었다…..

윌리는 승혜와 함께 센트럴 파크를 걷고 있었다. 윌리는 런던대학 교환 학생으로 런던대학에 가서 한학기를 마치고 어제 돌아온 참이었다. 어딘지 승혜는 수척해 보였다. 윌리는 뉴욕으로 날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생각한대로 오늘쯤은 그녀와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워낙 승혜의 분위기가 가라 앉아 있어 어디서 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며칠전 국제통화를 나눌때 수화기 속에서 흘러 나오던 승혜의 목소리는 밝고 정에 넘쳐 있었는데 왜 이리 변했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었다.
알데르센 동상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미국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인 그를 자기식 발음으로 엔더슨이라고 불렀다.
“승혜, 내가 가장 먼저 배운 영어가 무슨말인지 알아?”
“글쎄 아이 엠 어 보이 정도는 아닐것 같은데 뭐야?”
“보이스 비 엠비셔스야,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몇살때 그말은 배웠는데?”
“아마 다섯살때 였을 거야, 그때 아버지 친구들 모아 놓고 영어로 연설을 했다고 하니까…”
“설마 어떻게 연설을…”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 섞어 가며 했겠지.그때 했던 말 가운데 지금도 생각 하는게 바로 그 말이야.”
“그래서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뭔데?”
“야망이 뭔지는 궁금하지 않고?”
“그것도 궁금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뭔지 알면 그걸 알 수 있을 테니까.”
승혜의 표정은 계속 굳어 있었다.
“뭘하고 있나… 승혜 만나고 있지.”
“그게, 오빠 야망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승혜는 동갑이었는데도 학년이 하나 어리다는 이유로 윌리를 오빠라 불렀다.
“아니야 이것도 크게 상관있는 일이야.”
“난 잘 모르겠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 사는게 아니잖아? 그리고 남자의 꿈은 옆에서 지켜주는 여자가 있을때 확실해 지는 것 아닐까?”
승혜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윌리에게도 느껴 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채 걷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기 있잖아…”
윌리도 웬지 다음말이 잘 나오지 않아 더듬 대고 있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승혜가 내옆에서 나를 지켜 봐 줬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윌리가 승혜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승혜의 손은 참 작고 부드러웠다.
“무슨말 인지 잘 모르겠는데…”
승혜는 윌리의 손에 잡혀 있는 손을 빼려는 듯 꼼지락 거리면서 딴청을 피웠다.
“정말 모르겠어?”
“그렇다니까…”
“그럼 그동안 우리가 열심히 만난건 뭔데?”
“우리가 열심히 만났어? 그게 열심히 만난 거야?”
“그럼, 그만하면 얼마나 열심히 만난건데?”
“오빠한테야 그렇겠지, 옆에서 지켜봐 줄 사람들 다 챙기려니까, 얼마나 바쁘겠어?”
“무슨 소리야 그건?”
“어제 제니퍼가 공항에까지 나갔잖아? 집에 까지 같이 가는것 같던데…”
승혜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승헤의 입장에서는 엉뚱한 소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제니퍼라는 여학생이 공항에 나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윌리는 제니퍼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제니퍼는 엄마 동창생의 딸로 괜찮은 여자대학에 다니고 있는 처녀 였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제니퍼 쯤 되는 아이와 사귀어야 한다는 의미 에서 인지 걸핏 하면 그녀를 불러내 윌리와 자리를 함께 해주려 했다.
방학때 유권자 등록 자원봉사 일 할때도 몇번 제니퍼가 사무실로 찾아 온 적이 있어 승헤도 제니퍼를 알고 있었다.
“그럼 어제 승혜도 공항에 나왔었단 말이야?”
승혜는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이 없었다.
마침 빈 벤치가 눈에 띄었다. 윌리가 먼저 자리에 앉아 손바닥으로 떨어진 낙엽을 쓸어 냈다. 승혜가 그자리에 앉았다.
“공항에 나왔으면 왜 나한테 안왔어, 그렇지 않아도 혹시하고 찾았는데…”
집히는게 있었지만 그렇게 밖에 물어 볼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나서? 오빠 아버지도 있고 제니퍼도 있는데…”
승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바보같이…”
윌리가 승혜의 어깨를 살며시 안았다.
“놔 이거…”
승혜가 어깨를 틀었다.
“그애 하고는 그렇게 반갑게 얼싸 안던데?”
승혜는 공항에 숨어서 윌리가 나오는 광경을 다 지켜 봤던 모양이었다.
“그게 어디 얼싸 안은거니? 제니퍼가 다가 와서 응대해준것 뿐인데…”
“예전에도 많이 생각했고 어젯밤에도 생각해본 일인데…”
승헤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무언가 심각한 얘기에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오빠하고 나는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 더더욱이 오빠처럼 야망이 있고 잘난 사람 한테 나는 짐만 될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이쯤에서 그만 두자 응? 그게 좋을 것 같아.”
“왜 그런 소리를 하니? 바보 같이…”
“어제 내가 얼마나 비참 했는지 알아? 오빠 아버지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들킬까봐 숨어서 보는데 얼마나 눈물이 펑펑 나오는지 창피해서 죽는 줄만 알았다. ”
“왜 자꾸 바보 같은 소리 하니? 다 내가 잘못했어. 아버지 한테 다 얘기 할께, 우리 아버지 겉으론 냉정한것 같아도 속은 그렇지 못해, 내가 우기면 그게 끝이야, 정말이야.”
“그래도 난 자신이 없어. 난 영어도 못하고 학교도 시시한데 다니고 집안도 별볼일 없고 예쁘지도 않고 하나도 오빠 같은 사람 하고 어울리지 않아…”
승혜와 처음 어울리던 무렵, 그녀를 한번 집으로 데려간 적이 있었다. 다른 남자 애들도 몇명 같이 있었는데 잠깐이었지만 아버지는 아주 냉정한 태도로 친구들을 대해 윌리를 무척이나 난처하게 했었고, 특히 승혜에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느학교 다니느냐, 언제 미국에 왔느냐고 그것도 빠른 영어로 물어 그녀를 제일 당황하게 했었다. 아버지의 표정은 웬지 승혜의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부터 굳어 있었다.
“영어 잘하는게 뭐 대수야? 하면되지, 그리구 니가 뭐가 부족하다고 그렇게 자신이 없어?”
윌리는 승혜의 어깨를 다시 안았다.
이번에는 그녀가 살며시 끌려왔다.
한참을 아무말 없이 어깨동무한 채 앉아 있었다. 쿵쾅거리는 승혜의 맥박 고동이 밀착돼 있는 승혜의 옆구리를 통해 윌리의 가슴으로 전해 졌다.
“그동안 계속 승헤를 보면서 난 결심을 했거든 승혜가 옆에 있어 준다면 착착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그래서 오늘 우리 약속을 하자고 하고 싶었는데…”
“난 정말 자신이 없어…”
“그런 소리 그만 하라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할께, 승혜는 날 따라 오기만 하면 돼. 내가 누구야? 국무장관 윌리엄 아니야?”
윌리의 어릴때 별명이 국무장관이라는 것은 유명한 얘기였다.
“오빠 정말 국무장관 할려고 그래?”
승혜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물어왔다.
“그럼 국무장관만 해, 대통령도 하려고 하는데…”
“피…”
윌리의 허풍과 말하자면 엄청난 고백에 승혜의 기분이 많이 풀어져 있었다.
“그거야 물론 내가 하려 한다고 해서 되는일이 아니겠고 쉬운일이 아니겠지만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난 여자 문제라고 그럴까, 결혼 문제라고 그럴까 그런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해, 그런 문제는 너 한승혜 하나면 족해. 무슨말인지 알았어?”
“난 오빠의 그런 자신감이 두려워…”
“두렵다고 생각하지 말라니까,듣고 보니까 승혜의 의사는 묻지 않고 내 생각만 늘어 놓는것 같아 미안해지기는 하는데, 가능성을 열어 놓고 같이 노력 하면 돼잖아.”
“내가 어떻게…”
그러면서 승혜는 윌리에게 기대왔다.

승혜를 만난 것은 대학 2학년때의 일이었다. 그해 여름 윌리는 뉴욕 한인회가 적극 나서 추진했던 유권자 등록 켐페인에 자원 봉사자로 나서 활동 했었다. 아버지야 윌리가 한국인 학생들과 어울리고 또 그런 일에 까지 나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크게 내색을 하면서 반대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때쯤 아버지도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어차피 한국인이라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유권자 등록은 이민자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말하자면 시민권자로서 참정권을 찾는 일이었는데 당시 뉴욕일원에 30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유권자 등록을 마쳐 선거권이 있는 교포는 그 20분의 1에 불과한 만 5천명 수준이었다. 그러니 한인들의 정치적 위상은 보잘것 없었고 정부나 정치인들도 한인들을 업수히 여길 수 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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