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8 안동일 작
…플라톤의 향연에 보면 안드로노기스라는 인간의 선조에 대한 전설이 나온다. 안드로노기스는 남성과 여성이 한데 붙어 있는 발넷에 손까지 네개인 생명체 였다. 워낙 재주가 뛰어 나고 동작이 빠르기 때문에 신에게 까지 도전을 했고 이에 노한 신이 안드로노기스를 반으로 갈라 남자와 여자로 나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후부터 인간은 자신의 반쪽인 이성을 그리워 하게 되었고 또 그 반쪽을 제대로 만나야 인간이 완성 된다는 전설이다…
락커에 가서 옷을 갈아 입으면서도 으르렁 대면서 소년들은 서로를 약 올렸고 잠시후 여덟 소년은 황야의 결투를 벌이는 무법자들 처럼 지금은 시티 필드라 불리는 쉐이 스타디움 옆 폐차장 공터에 마주 섰다.
“좋아 자 일대일로 붙을래? 한꺼번에 붙을래? 남자답게 나서봐.”
윌리가 녀석들을 하나 하나 노려 보며 말했다.
“네깐 치노 녀석들이 무슨 남자를 따지긴 따져, 임마”
한 녀석이 윌리의 얼굴로 다짜고짜 주먹을 날려 왔다. 녀석은 복싱이라도 했는지 주먹이 꽤 빨랐다. 가까스로 얼굴을 돌려 피하면서 윌리는 옆차기로 녀석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녀석도 몸이 빨라 제대로 가격 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타격이 있었는지 몇걸음 주춤 했고 이때 부터 난전이 시작 됐다. 닥치는대로 주먹과 발길을 내질렀다. 숫적으로 열세 였기에 정확히 가격을 할 여유가 없었다. 유진이야 윌리보다 주먹이며 발길질이 날래면 날랬지 못하지 않았지만 크리스가 걱정이었다. 약골인 크리스는 진작 부터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 가운데 가장 덩치큰 두 녀석이 크리스를 집중 공략 하고 있었다. 크리스는 요리저리 도망 다니듯 피하고 있었지만 곧 한녀석에게 붙잡혀 땅에 깔렸다. 윌리는 어깨 쭉지며 옆구리와 등에 녀석들의 발길질과 주먹을 몇대 맞으면서 그쪽으로 급히 달려 갔다. 크리스를 타고 앉아 막 주먹을 날리려는 녀석의 면상을 향해 발길을 날렸다. 그틈에 크리스는 일어 설 수 있었고 그때 유진도 그쪽으로 다가와 세 사람이 등을 마주 대며 섰지만 한녀석의 태클에 윌리가 땅에 뒤굴어야 했고 크리스가 다른 녀석의 태클에 다시 넘어지면서 닭싸움 판처럼 모두 뒤엉켜 엎치락 뒤치락 얻어 터지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면서 정신이 없어졌다. 사실 윌리도 유진도 처음 해보는 이런 종류의 난전이었다. 갑자기 울부짓는 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소년들은 모두 놀라 싸움을 멈춰야 했다. 녀석들 가운데 한녀석의 팔뚝에서 피가 분수처럼 솓고 있었다. 땅에는 웬 스위스 칼이 떨어져 있었다. 유진과 엎치락 뒤치락 하던 녀석이 날카로운 그 칼의 끝날에 팔뚝을 찔려 동맥이 터진 모양이었다.
“빨리 꼭 잡아.”
“누구 끈 없어 팔뚝을 동여 매야지.”
모두 놀라 싸움을 그치고 소년을 둘러 쌌다. 운동화끈을 풀러 팔뚝을 동여 맸지만 출혈이 엄청 났다. 서로를 노려 보는 눈에도 모두 겁에 질려 있었다. 다친 녀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는데 꼭 죽는줄만 알았다. 그때 마침 순찰 중인 경찰차가 왔다. 경찰은 능숙한 솜씨로 응급처리를 했고 여덟 소년은 경찰서로 끌려 가야 했다.
부모들이 달려오고 학교에 까지 연락돼 담임선생이며 테니스부 지도 교사가 달려 오고 해서 그날로 경찰서에서는 훈방이 됐지만 결과는 너무도 치명적 이었다. 이 싸움 때문에 유진은 퇴학을 당해야 했고 윌리는 하바드진학이 좌절 돼야 했다. 싸움의 발단이나 경과 보다도 스위스 칼이 윌리네 쪽에서 나왔다는 것이 가장 불리하게 작용 했다. 윌리는 칼에 대해 경찰서에 들어가서야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가 넘어질 때 그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던 것이 있었는데 그게 스위스 칼이었다. 테니스 라켓의 줄이며 손잡이 밴드를 수리하기 위한 것으로 테니스 가방에 있어야 할 물건 이었다. 그걸 이런 싸움판에 처음 끼게 된 크리스가 주머니에 넣기는 했지만 차마 사용하지는 못했는데 주머니에서 떨어 졌던 것이다. 상대편 한 녀석이 그걸 줏어 들어 ‘비겁한 놈들 칼을 준비했냐’며 유진을 위협했고 서로 밀고 당기다 손목을 그었던 모양이다.
상대방 녀석들의 부모가 모두 한다하는 부자들이었던 것도 상황을 어렵게 한 요인이었다.
상대방 부모들 특히 다친 녀석의 부모는 윌리등을 형무소에 보내야 한다고 길길이 뛰었다. 지혈이 빨리 되지 않았다면 물론 큰일이 날뻔도 했지만 녀석도 별탈 없이 며칠 뒤에 학교에도 걸어 갈 수 있었는데도 녀석의 부모는 변호사 까지 동원해 윌리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 졌던 것이다. 그나마 녀석에게 팔뚝에 칼날이 그어진 순간, 칼이 자신의 손에 있었고 칼을 주워든 것이 자신이 먼저 였다는 진술을 받아 냈던 것이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하나는 소년원에 가던지 엄청난 변상을 했어야만 했었다.
학교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유진은 자신이 혼자 책임 지겠다고 나섰고 교장선생과의 면담에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 쓴 채 최악의 처벌인 퇴학을 용인 했던 것이다. 윌리의 입장이 너무도 난처 했다. 유진에게 정작 사움을 하자고 결정한 것은 자신이 아니었냐고 들이 댔지만 유진은 막무가내 였다. 어차피 한사람의 처벌은 어쩔수 없는 것이고 모범생인 윌리나 크리스 보다는 자신이 책임 지는게 어울린다고 했던 것이다.
윌리는 유진이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 하고 있다.
“임마, 너야 하바드가서 한다하는 변호사가 돼야 하잖아. 어차피 나야 주립대학 정도 갈텐데, 그렇게 미안 하면 꼭 날리는 변호사 돼. 알았지?”
유진의 이런 무구한 의리와 우정에도 불구하고 윌리는 하바드에 진학 할 수 없었다. 싸움 사건이 일어난 그 무렵이 하바드의 면접관이 각 학교를 돌며 일차 조기 선발된 학생들을 만나 면접을 실시하던 기간이었다. 윌리도 조기 선발에 들어 있었다. 안경낀 깐깐한 용모의 하바드 면접관이 윌리네 학교에 오던날 공교 롭게도 다친 녀석의 변호사가 와서 유진과 윌리를 불러내 닥달을 하던 날이었다. 면접관은 윌리가 싸움에 연루된 사실을 알게 됐고 빙그레 웃고 가기는 했지만 그게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 했던지 최종 입학 허가서가 날라오지 않았다.
사람의 운명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파도에 휩쓸려 망망대해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것처럼 훤히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파도가 다시 밀려 올지 모르는 것이라고 느껴야 했다.
윌리는 결국 뉴욕의 명문인 콜럼비아 대학에 진학 했고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 갔던 유진은 제대로 진학할 수 없었다. 그는 시립대학에 적을 두었다가는 그마저도 중간에 그만 두었다. 얼마간 소식이 없었는데 한참 뒤 유진은 아틀랜틱 시티의 카지노의 딜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윌리가 본교 로스쿨에 막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대학시절 유진과 격조하게 지내야 했던 이유는 유진이 연락을 끊었던 까닭도 있었지만 윌리는 윌리 나름대로 바쁜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대학 재학중에도 대붕이 되겠다는 야심을 나름대로 실천 하고 있었고 또 승혜라는 여학생이 그의 앞에 운명처럼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유진이며 크리스 헤리와 같은 친구들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다지곤 했던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다짐들은 이성에 눈 뜬 청년의 가슴에 자신의 반쪽인 반려를 찾는 일 앞에서 주춤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보면 안드로노기스라는 인간의 선조에 대한 전설이 나온다. 안드로노기스는 남성과 여성이 한데 붙어 있는 발넷에 손까지 네개인 생명체 였다. 워낙 재주가 뛰어 나고 동작이 빠르기 때문에 신에게 까지 도전을 했고 이에 노한 신이 안드로노기스를 반으로 갈라 남자와 여자로 나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후부터 인간은 자신의 반쪽인 이성을 그리워 하게 되었고 또 그 반쪽을 제대로 만나야 인간이 완성 된다는 전설이다. 교양학부 시절 철학사 시간에 텁석부리 유태인 교수로 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윌리는 자신의 반쪽이 누구일까 궁금하게 여겼다.
그럴때 승혜가 윌리의 곁에 나타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