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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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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연재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7 

…윌리쯤 되는 똑똑한 소년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 의미를 자연스레 체득 할 수 있었다. 그 즈음 윌리는 생애 최초의 좌절을 맛보았었다. 학생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것이다. 표차가 당초의 예상 보다 엄청 났다. 지난해 학생회장이 한국 학생이었던 것이 가장 불리하게 작용한 요인 이었다.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 어떻게 명문 스타이븐센트의 학생 회장을 한줌도 안되는 한국인이 독점 할 수 있냐는 인종적 편견을 바탕에 둔 배타의식이 강력하게 불었던 탓이었다….

뉴욕 플러싱 쉐이 스타디움 옆에 있는 내셔널 테니스 코트는 매년 여름 U.S 오픈대회가 열리는 미국내에서도 손꼽히는 테니스 구장 이었다. 때문에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꿈이 이 코트를 밟아 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코트는 극히 제한적으로 일반에게 개방 되었다. 대회가 없는 기간 동안 자격을 갖춘 일반인들이 이런저런 서식을 갖춰 신청하면 두시간 정도 코트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윌리가 윤호와 크리스와 함께 내셔널 코트에 도착한 시각은 그들의 예약시간 40분 전 인 토요일 오후 3시 였다. 세명의 테니스 솜씨는 막상 막하였다. 윤호는 체구에 어울리게 강한 스메싱이 주무기였고 윌리는 기교 섞인 발리가 주특기였다. 윌리는 오늘 만큼은 윤호를 격파 하리라 남몰래 칼을 갈면서 설레며 오늘을 기다렸었다.
아버지는 한국 애들과 어울리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스타이(스타이분센트)에 진학한 이후 윌리는 부쩍 한국 애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중에서도 유진과 크리스는 윌리와 단짝 중에 단짝 이었다. 이들 말고도 헤롤드가 한명 더 있었는데 녀석은 골프에 미쳐 테니스는 거들떠 보지 않았기에 이날 테니스 모임에 빠져 있었다. 유진은 윤호의 미국 이름이었다. 헤롤드의 한국 이름은 혜성이었다. 윌리는 자신의 한국 이름 재순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고 남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지만 유진을 부를 때는 꼭 윤호라고 하곤 했다.
그 무렵 윌리는 미 국무장관 까지는 못 되더라도 그에 못지 않은 지위에 오른 인물이 되리라고 내심 다짐하고 있었지만 학년이 들면서 미국이란 사회가 결코 만만치 않은 사회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중학교때의 추선생 처럼 고교 때도 윌리를 귀여워 하면서 윌리의 장래에 대해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선생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동양계 선생 들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만큼 인종 백화점인 뉴욕에서 피부색이 같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윌리즘 되는 똑똑한 소년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 의미를 자연스레 체득 할 수 있었다. 그 즈음 윌리는 생애 최초의 좌절을 맛보았었다. 학생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것이다. 표차가 당초의 예상 보다 엄청 났다. 지난해 학생회장이 한국 학생이었던 것이 가장 불리하게 작용한 요인 이었다.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 어떻게 명문 스타이븐센트의 학생 회장을 한줌도 안되는 한국인이 독점 할 수 있냐는 인종적 편견을 바탕에 둔 배타의식이 강력하게 불었던 탓이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윌리는 거의 정확하게 동양계 학생들의 숫자 만큼의 표를 얻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한국 학생이며 동양계에 의존한 선거 전략이 잘못 된 것이라고 논평 했지만 윌리로서는 미국사회의 보이지 않는 인종적 장벽을 실감 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아버지의 당부와는 달리 그럴수록 동양계 친구들에 쏠리는 자신의 친근한 감정은 더 진해지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가장 선량하고 고상한척 친절하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백인들과는 달랐다.

프로샵에서 수속을 마치고 락카를 배정 받고 코트에 들어섰을 때 코트에는 윌리 또래의 백인 소년들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관람석 모퉁이에서 윌리와 윤호는 멀찌기에 서서 그들의 플레이를 관찰 했다. 네명이 코트에 들어서 복식 경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그들의 플레이는 형편이 없었다. 그중 한명 정도가 겨우 공을 쳐낼 수 있을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도대체 어떻게 이코트에 들어 올 수 있었는지 의심 스러울 정도로 전혀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막되먹은 스트로크를 연발 하고 있었다.
윌리네가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저러구서두 학교에 가선 내셔널 코트에서 쳤다고 떠벌이겠지?”
윤호가 윌리를 쳐다 보면서 한마디 했다.
“그러게 말이야.한심하다 한심해.”
“그나저나 녀석들 시간 됐는데 왜 끝낼 생각 않하지.”
엠파이어 석에 올라 있는 한녀석은 도대체 심판을 보는 것인지 장난을 치는 것인지 콜라캔만 빨면서 딴청을 피고 있었다.
그러구서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떨어진 공을 줏으러 한녀석이 윌리등이 있는 쪽 가까이로 왔다.
“여 친구, 이제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윌리가 크게 불쾌 할리 없는 평상어로 한마디 했다. 녀석은 대꾸 않고 윌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그대로 코트로 가서 엉망인 자세로 서비스를 하는 것이었다. 녀석의 서비스는 네트에 걸려 폴트가 났다. 세컨 서비스 역시 폴트 였다. 윌리들이 알기에 녀석들의 조가 졌을텐데 녀석은 다시 “또 듀스야.” 하면서 서브를 날리려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가서 애기 하고 올까?”
크리스가 윌리를 쳐다 보며 물었다.
“뭐 사무실 까지 가니.”
윤호가 한마디 하더니 코트 쪽으로 한두걸음 앞으로 나갔다.
“여 친구들 너희들 시간 됐잖아.”
아주 큰 목소리였다.
“지금 듀스니까 조금만 기다려.”
녀석들 가운데 하나가 이쪽을 쳐다 봤다. 보며 말했다.
“그놈의 듀스는 밤새도록 하냐?”
윤호의 목소리가 더 격앙돼 있었다.
그때 저쪽에 있던 한 녀석이 이쪽을 보며 한마디 했다.
“염병할 놈의 치노들 되게 말많네.신경쓰지마.”
자기들 끼리 하는 말 처럼 말햇지만 분명히 윌리네 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뭐라고 야, 너 입조심해.”
윤호가 인상을 쓰며 녀석을 쳐다 봤다.
그러자 녀석이 윤호쪽으로 다가왔다.
“왜 내입에 뭐 묻었어? 네가 닦아줄래? 똥구멍.”
윌리도 이쯤되면 참을 수 없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녀석들도 우르르 몰려 들었다.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빨리들 가지, 우리도 게임해야 되니까…”
윌리가 한마디 했다.
“너희들이나 가, 이 치노들아.”
녀석들이 숫자를 믿고 험악하게 나왔다.
“뭐라고 말이면 다야, 이걸 그냥.”
윤호가 주먹을 흔들었다.
그때 코트 관리인 가운데 한명이 지나다 이 광경을 봤는지 이쪽으로 왔다. 콧수염을 기른 백인이었다.
“이봐 청년들 왜그래?”
“이 녀석들이 게임을 방해 하잖아요.”
녀석들 가운데 한녀석이 의기 양양하게 고자질하듯 말했다.
“방해 하긴 우리가 언제 방해 했냐? 우리시간 됐는데 얘들이 나가지 않
으니까 그렀죠.벌써 몇시에요 20분이나 지났잖아요.”
크리스가 녀석들과 콧수염을 번갈아 쳐다 보면서 말했다.
“이봐 청년들, 어차피 여기 예약 시간은 유동적인 것 아니야? 규칙에도 그렇게 쓰여 있잖아.”
콧수염이 다짜고짜 녀석들을 비호하고 나섰다.
“맞아요, 우리가 마지막 듀스하고 있는데 난리를 피우잖아요.”
녀석들이 살판 났다는 듯 떠들어 댔다.
“너희들 소속이 어디야?”
콧수염이 물어 왔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윤호의 대꾸가 다소 불공 스럽긴 했다.
“스타이븐센트 클럽이군, 이처럼 소란을 피우면 너희 클럽에 다시는 코트 사용권을 주지 않겠어.”
콧수염이 들고있던 예약 차트를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스타이븐센트라는 것에 점수를 주기는 준 모양이었다.
“소란은 누가 피웁니까? 얘들이 먼저 우리를 모욕하고 나섰는데..”
윌리가 한마디 했다.
“자 빨리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자네들은 빨리 게임을 끝내, 모두들 사용권을 몰수하기 전에… ”
그제야 콧수염이 상황을 정리 했다.
콧수염이 지켜 보고 있는데도 녀석들은 한껏 늦장을 부리며 경기를 했다. 그 실력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어서 녀석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콧수염도 인상을 치푸린 뒤 저쪽으로 가버렸다.
콧수염이 떠나고도 녀석들은 한껏 늦장을 부리다 억지로 경기를 끝내고 가방들을 들고 코트를 나섰다.
윌리들이 코트로 들어 서려는데 떠나던 녀석들의 하나가 ‘칭칭 차이나맨 어디 한 번 돌아봐라’하며 지나쳤다.
잔뜩 기분이 나빠져 있는 윤호가 대뜸 반응했다.
“뭐 이자식아.”
“왜 노려보면 어쩔래, 이 인터내셔널 팬케익아.”
팬케익은 동양계를 놀리는 또다른 욕이었다.
“너 정말 안되겠구나.”
윌리도 참지 못하고 그녀석의 앞을 막았다.
“왜 한 번 해볼래? 거지같은 쿵푸라도 했나 보지.”
“쿵푸 안했어도 너 같은 놈들은 한방에 날릴 수 있어.”
“날려 봐 어디.”
한녀석이 윤호의 앞에 딱 버티고 섰다. 체구가 큰 녀석이었다.
“너희들 진짜 한 번 붙어 볼래?”
윌리가 나섰다.
“말로만 그러지말고 덤벼봐. 이 노랑둥이들아.”
윌리 역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또 어차피 이 기분으로 게임을 즐기기는 틀린 일이었다.
“좋아 그럼 여기서 그러지 말고 나가자. 윤호, 나가자.”
윌리가 먼저 가방을 들고 나섰다.
“좋아 이자식들…”
윤호 유진도 가방을 들고 씩씩대며 따라 나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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