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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hinykorea
삽화 팔콘사 RPG '영웅의 진격'에서
연재소설

<장편 이민 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19회

안동일 작 

 

 / “자네 오늘 저녁에 미팅이 있다고 그랬지? 그거 어떻게 변경 할 수 없나?”
“왜? 회사에서 하는 거니까 내맘 대로 변경 할 순 없는데, 무슨 중요한 일 있어?”
“ 응 그래 갑자기 변경하라고 해서 미안한데 오늘 저녁에 왕대인을 모시고 뉴욕에서 조그만 파티를 열려 하거든 그래서 아침일찍 전화 한거야, 마침 왕대인도 자네를 꼭 보고 싶어 하시는데…”
“그래? 그럼 어쩐다, 몇시에 모임이 있는데?”
왕대인이라면 윌리도 꼭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다./

 

묘한 꿈이었다.
윌리는 중국인지 베트남인지 아무튼 별로 깨끗하지 못한 아시아 국가의 지방도시를 여행 중이었다. 험준한 산이 그 지방의 명소였던 모양이었다. 비가 오락 가락 하는 오후 무렵 이었다.

윌리는 호텔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은 3층 정도의 높지 않은 층이었다. 멀리 비안개 속에 보이는 산은 무척 경관이 수려 했지만 호텔 주변에는 지저분한 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강 이라기에는 너무 좁고 도랑 이라기에는 규모가 큰 개울이 호텔과 주택가를 사이에 두고 흐르고 있었다.

흙탕물에 가까운 물이 었지만 비가 내린 덕분인지 기운차게 흐르고 있는 것이 꽤 시원하게 여겨 졌다. 빗줄기가 가늘어 지자 동리의 꼬마 녀석들이 나와 시내에서 물장난을 하고 놀았다. 그 때 호텔 정문으로 이가영이 들어 왔다. 양키즈 야구모자를 쓰고 점퍼 차림이었다. 창을 통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윌리는 그에게 뭔가 대접 해야 겠다고 생각해 계단을 내려와 주차장 끝에 있는 매점으로 갔다. 매점 아저씨는 꽤 무뚝뚝한 사람이었는데 중국말로 대화를 했는지 영어로 대화를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과자며 음료수 그리고 과일 몇개를 사면서 대화를 했다.한국말은 아니었다. 윌리는 어제 가영과 함께 호텔 뒤 산 정상에 까지 다녀 왔다고 했다. 그러자 매점 아저씨는 누구도 하루만에 정상에 까지 다녀 올 수 없다고 막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별일도 다 많다며 매점을 나와 주차장을 가로 질러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길을 잃었다.

호텔 네온 사인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동리로 나오게 됐다. 개울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윌리는 개울을 따라 가면 길이 나올 것이라 여겨 바지를 걷고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처벅처벅 걷기 시작했다. 물살이 정갱이를 간지르고 있었다. 발가벗은 채 자신을 빤히 올려다 보는 귀엽게 생긴 예닐곱살 난 소녀를 쳐다보며 웃음 짓는데 갑자기 과자 봉지가 터졌다. 망고며 쵸코릿 등이 개울로 떠내려 갔다. 윌리는 그것들을 주우려 하다 미끌어 지면서 물에 휩쓸리고 말았다. 물은 꽤 깊었다. 그런데도 별로 당황 스럽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신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과자를 건져내 막 먹고 있는데도 화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떠내려 가야 했다. 숨도 별로 막히지 않고 무섭지도 않은 안온한 표류였다.

개울은 점점 넓어지고 있었고 주변에 보이는 경관들이 자꾸 달라지고 있었다. 아까의 빈민촌과는 다른 홍콩의 도회도 나타 났고 푸른 벌판도 나타났다. 다만 이가영이 기다리고 있는데 하는 생각만이 자신을 부담스럽게 했을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떠내려 가다 커다란 바위 하나에 걸렸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그 바위에 올라섰다.
다음 순간 윌리는 탄성을 질러야 했다. 너무도 푸른 망망대해가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멀리 보이는 조각 섬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었다. 뒷쪽은 얼음산이었다. 이 엄청난 경관을 보기 위해 이렇게 떠내려 와야 했구나 싶었다. 그때 저쪽에서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 오고 있었다. 이가영의 모습도 유진의 모습도 보였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승혜의 모습도 보였고 카니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뒷쪽에 있었다. 특별히 아는척을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기회가 있겠지 싶었다. 맨앞에 서 있는 뚱뚱한 체구의 노인이 윌리에게 반갑게 말을 던졌다. 영어였다.
“멋지지 않은가 윌리엄?”
그런데 윌리는 노인을 알지 못했다.
꾸뻑 인사는 했지만 누굴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멋진 새가 윌리앞을 날았다. 생전 처음 보는 멋진 새였다. 아주 큰 새였는데 깃털이 현란했고 눈에 위엄이 있었다. 추선생이 말한 대붕이 바로 이 새구나 싶엇다. 그 대붕이 윌리를 한번 썩 쳐다보더니 푸드득 날면서 요란한 울음을 울었다. 그때 윌리는 꿈을 깼다.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수화기를 들었다. 이가영이었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절묘했다.
윌리는 고개를 흔들며 ‘새벽 부터 웬일이야?’ 했지만 조금 전의 꿈이 너무도 생생 했다. 참 묘한 꿈이었다.
“지금 자네 꿈을 꾸고 있는데 전화가 오다니 이런걸 텔레파시라고 하는가?”
“무슨 꿈이었는데? 멋진 아가씨와 나랑 셋이서 데이트라도 했는가?”
“자넨 멋진 아가씨가 나와야만 신나는가?”
요즘들어 윌리는 이가영과 부쩍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붙어 다니고 있었다. 그저께만 해도 차이나 타운에서 꼭지가 돌도록 한잔 했고 어제도 점심을 함께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사람은 이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고 공통의 관심사를 지니고 있었다. 이가영은 카니문제를 매끄럽게 처리 해 줬고 윌리 또한 가영에게 톡톡히 신세 갚음을 했던 것이다.
사귀어 볼 수록 이가영은 능력이 있고 신의가 있는 인물이었다.
이가영을 만난 다음날 부터 카니 때문에 있었던 괴 협박 전화가 없어 졌다. 카니는 지금 홍콩에 가 있다고 했다. 그의 도움은 윌리에게 다시 활력을 주었으며 세상일은 거꾸로 시작해도 제대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무엇보다 그와 어울려 있으면 세상을 사는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꿈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무슨일이야? 신새벽 부터.”
윌리가 물었다.
“자네 오늘 저녁에 미팅이 있다고 그랬지? 그거 어떻게 변경 할 수 없나?”
“왜? 회사에서 하는 거니까 내맘 대로 변경 할 순 없는데, 무슨 중요한 일 있어?”
“ 응 그래 갑자기 변경하라고 해서 미안한데 오늘 저녁에 왕대인을 모시고 뉴욕에서 조그만 파티를 열려 하거든 그래서 아침일찍 전화 한거야, 마침 왕대인도 자네를 꼭 보고 싶어 하시는데…”
“그래 그럼 어쩐다, 몇시에 모임이 있는데?”
왕대인이라면 윌리도 꼭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다.
“아무래도 저녁 늦게가 되겠지 한 9시쯤이면 합류 할 수 있겠어?”
“그렇게 해볼께, 저녁 모임인데 늦어 지면 일찍 빠지지 뭐.”
어차피 요즘 윌리의 마음은 반쯤 회사를 떠나 있기도 했다.
“그래 그럼 9시에 회사 앞으로 차 보낼께.”
“아니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그쪽으로 가지 뭐.”
“그래 그럼 상하이로 와, 그곳에 안내할 사람, 기다리게 하도록 하지.”
“그래 알았어 일찍 전화 줘서 고마워.”
“천만에 내일인데 뭐.”
윌리는 전화를 끊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 꼭지를 틀었다.
언제 부터인지 샤워기 밑에만 서면 카니 생각이 났다. 이가영의 주선으로 별탈 없이 홍콩으로 건너 간 카니의 소식은 유진을 통해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오늘 따라 꿈에 까지 나타 났기에 더 그녀 생각이 났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비누칠을 하면서 윌리는 피식 웃으며 혼자 계면쩍어져야 했다.
카니가 꿈에 까지 나타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승혜는 잊을만 하면 꿈에 나타나곤 했었는데…
윌리는 부지런히 아파트를 나서 회사로 향했다. 조금만 시간을 지체하면 아침 출근 트래픽에 밀려 엉뚱한 시간을 링컨터널 안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파김치가 되도록 서류더미에 매달려 있었지만 미팅 시간이 다 되도록 성과는 별게 없었다. 그동안 너무 회사일을 등한히 했기 때문이었다. 윌리는 작문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도저히 시간내에 서류철을 다 들여다 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입사한지 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아무리 짜증나는 일이고 시시한 사건이라고 해도 윌리는 서류 검토 만큼은 빠짐없이 했었다. 어차피 다 읽어 본다고 해서 사건의 개요가 달라질것도 없었고 노회한 메니징 파트너 라고 해서 미팅 시간에 윌리의 서류 더미를 다 들춰보고 검토할 재간은 없을 터였다.
판에 박힌 이일 보다는 왕대인이라 불리우는 홍콩의 재벌 왕상문을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윌리의 예상대로 스티브는 윌리의 작문을 흡족하게 여겼고 대충 앞쪽의 서류를 몇개 훓어 보더니 수고 했다면서 다른 동료 변호사의 파일로 눈길을 옮겼다.
스티브가 두개쯤의 파일검토를 끝내고 옆에 있는 파트너와 잡담을 하기 시작 했을때 윌리가 슬며시 원탁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벌써 8시 3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처음에는 윌리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윌리가 스티브 곁으로 다가가자 눈치 챈 듯 한마디 던졌다.
“왜 먼저 나가려고? 오늘 미팅 끝나면 올 유니트 디너 있다고 예고 했잖아?”
“아주 급한일이 있어서…”
“그래? 할 수 없지, 모처럼 우리 디비젼끼리 돈독한 시간 가지려고 풀코스로 예약해 놨는데 섭섭하군.”
짜식 그럴것이면 빨리빨리 일처리 하고 저녁 시간 맞춰 줄 일이지 온통 잡담 다해가며 시간 죽이고 있을 것은 뭐람 싶었다. 파트너들 깐에는 그런게 팽팽한 긴장 풀어 주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하급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두달에 한번 꼴로 있는 유니트 디너 혹은 디비젼 디너라 불리우는 회식이야 말로 고역 이었다. 말로는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자고 해놓고 잔뜩 자기 얘기, 자기 자랑만 늘어 놓는 꼴이며, 어쩌다 바른 소리 한마디 하면 붉으락 푸르락 해가지곤 기어코 불이익을 떨구곤 하는 통에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어어야 했던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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