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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91회

 안 동일 지음

파 만동묘

농악대가 신나게 괭과리와 북을 쳐댔고 날라리 피리를 불어대며 상모를 돌리면서 구곡은 축제의 분위기에 들어갔다,
군사들이 다 올라온 모양이다. 선봉대가 만동묘 담을 둘러싸고 행진을 멈췄다. 만동묘는 계곡 큰길 오른쪽에 대문을 필두로 높은 언덕쪽으로 고직실 유사실 재실 그리고 가파른 돌계단 위에 사당이 있는 그런 구조 였다. 돌계단 위 사당이 더 왜소해 보였다. 이 작다면 작은 몇 채의 건물과 세 개의 문짝이 그리 행악을 떨었는지, 또 그리 사람들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는지 참 허무하기 까지 했다.
덩치 큰 한 장수가 큰소리로 고유문을 읽기 시작했었다.
“대원위 분부요”
금원과 태을당 백결노사가 있는 개울 건너 임서재까지 찌렁찌렁 들렸다.
“그동안 백성들의 고혈을 짜온 잘못된 사대의 온상 만동묘를 폐쇄, 철폐, 철거 하여 이땅이 백성의 땅임을 확실하게 할 지어다.”
장수는 이번에는 병사들에게 철거 개시명령을 내렸다.
“대원위 대감께서는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된다면 공자가 살아 돌아와도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기백으로 공성의 대열을 갖추라.”
“전 장병은 대오를 갖추라.”
“공성차 전진.”
세대의 공성차가 담쪽에 붙었다.
농악대에서 날라리 소리가 크게 울렸다.
“공격하라”
‘으랴차차’ 하는 함성과 함께 병사들이 공성봉을 뒤로 제꼈다.
다시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병사들이 그네처럼 매달려 있는 공성봉을 담장을 향해 던지듯 밀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담장이 무너졌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만동은 어찌되었는지 지재의 귀재 현봉도 잘 몰랐다. 쥐가 구멍으로 숨듯 쏙 들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은 휘청이고 있었고 정신줄을 놓아가고 있음은 분명했다.
“와아아‘ 하는 백성들 구경꾼들의 함성이 계곡에 메아리 쳤다.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적시는 태을 스님의 모습이 금원의 눈에 들어왔다. 태을은 이 순간 편조 스님 신돈을 떠올리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금원에게도 이 순간이 신돈이 전민병전도감을 설치해 농민에게 땅을 돌려주고 노비를 속량했을 때 백성들이 환호작약하는 그 순간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 위로 신돈 편조 스님의 얼굴이 보였다.
신돈은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 포효하듯 외치고 있었다.

같은 구름에서 금원은 추사대감을 보았다.
승호필 대 붓으로 힘차게 새을자(乙)를 쓰고 있는 노구의 명필을 보았다.

34. 파국 그리고 시작

녹번정 마당 한쪽에 불가사리 돌 장승을 세웠다.
축제와도 같았던 만동묘 철거 현지에 다녀온지 보름쯤 지난 기묘년 4월의 일이었다. 이천에서 석수 일을 하는 낭가 동패가 만들어 선물한 불가사리였다. 동사와 부용사의 불가사리 돌장승의 절반 정도 크기의 아담한 석상이었다. 특별한 의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이제 녹번정을 지켜 주리라고 금원과 식구들은 철석같이 믿었다.
편조스님 신돈은 참형에 처해지기 직전 감옥에서 나무조각과 밥풀로 신표를 하나 만들었다. 그 신표가 바로 불가사리 였다. 不可殺伊(불가살이)는 말그대로 죽일 수 없는 영물로 몸통은 곰을, 머리는 사자를, 코는 코끼리를, 다리는 범을 닮은 상상속의 동물이다. 백성들의 우환인 전쟁을 없애기 위해 쇠붙이를 먹어치우는 영물로 불을 뿜어 악을 제압한다고 믿어져 왔었다.
신표는 전인들에게 전해졌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재주있는 한 석공에 의해 석물 두개로 만들어 졌는데 그 석물이 지금 동사 입구와 부용사 아랫 마당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침 일찍 잠이 깨져 마당에 나와 불가사리 석상을 닦고 있는데 우당탕 대문을 열리더니 초롱이가 달려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어머니, 얼른 피하셔야 겠습니다.”
새벽같이 급하게 와서는 뜻밖의 소리를 했다.
“피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금원이 수건을 석상에 놔둔 채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지금 어머니 형편이 위급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 상궁님이 저를 불러서 어머니를 급히 피신 시켜야 한다고 그러셨습니다.”
주상궁 이라면 대비전 상궁이다. 그렇다면 조대비가 위험하다는 말인가.
여기 주신 편지가 있습니다. 초롱이가 허리춤에서 쪽지를 꺼냈다. 언문으로 된 편지였다.
‘금원이, 일이 다급하게 되었네, 이글을 읽는 즉시 지금의 거처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피신하시게,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내말을 따르기를 바라네, 구름재에서 보낸 자객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오. 그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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