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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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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98회

안 동일 지음

조선여인 전말

 -후기를 겸한 작가해설

탑에 이끌린 나는 그 후 몇 차례 뒤 동사를 다시 찾았고 주지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젊은 스님이었다. 절이 조계종 소속 이었기에 당연히 소정의 교육을 마친 영민한 비구였다.
스님은 내가 절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에 상당히 관심을 표하면서 반가와 했다.
다른 것보다 절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화제로 올렸다.
“정부 권력, 나라에 의해 절이 멸실되게 되면 모든 기록까지 삭제 할 수 있을 겁니다.”

“무슨 역모나 모반 사건 같은 큰 일이 일어났던 것은 틀림없겠지요?”
“그럴겝니다.”
스님은 고려말 개혁승 신돈과 연관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동리의 노인들이 전해오는 이야기라며 그리 말했다는 것이다.
개혁승 신돈이라…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신돈이라면 권좌에서 쫒겨 나면서 참형이라는가장 끔찍한 탄압을 받았고 역사적으로도 못된 패륜배 취급을 받아야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나 증좌는 없다고 했다.
스님과 잠시 더 대화를 나누다 헤어진 나는 절 마당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살피며 걸었다.

절 마당 한쪽에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부서진 기와로 된 돌탑이 이었다. 산 입구나 이나 성황당 나무 아래 있는 돌무더기 형식의 탑 이었다 사람들이 정성을 빌면서 하나씩 올려놓는 그런 탑 말이다. 돌이 아니라 붉고 검은 기와 조각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달랐다. 아무튼 저쪽의 고색 창연한 두 개의 돌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영어에 디브리즈(debris) 는 단어가 있다. 911사태 이후 널리 알려진 단어다. 부스러기를 뜻했는데 사태이후 잔해더미, 건물 폐기물을 뜻하는 것으로 확장 전이 됐다.
이 기와더미 돌탑을 보면서 대뜸 디브리즈가 떠올랐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엄청난 것을 발견 했다. 무슨 기와들 인가 한번 보자는 심정에서 그쪽을 가 밑에 뒹굴고 있던 깨진 기와 한조각을 집어 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깨진 막새였다. 그런데 아래쪽을 보니 한 귀퉁이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손으로 흙을 문질러 털어 냈더니 글씨가 확연해졌다. 乙亥結社 편조후인 화엄院主 錦園 합장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금원이라는 이름을 수막새에서 발견 했던 것이다. 거기다 을해 결사라, 아무튼 무언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다. 그리고 편조후인은 알 수 없었으나 화엄 원주 금원 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혹시 그 금원이 아닐까.

같은 모양의 막새를 몇 개 더 찾아 집어 올려내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글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막새는 원래 기와의 특정부분을 막는 기와를 말한다. 수막새는 숫기와라는 뜻으로 둥근 기와의 앞부분을 끼워 막을 때 사용하는 기와를 암막새는 긴 부분을 받아들이듯 오목하게 생겨 받치는 기와를 말한다.
막새를 들고 주지스님에게 다시 갔다.
주지스님도 몇몇 막새에 그런 글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막새와 기와들에 대해서 알이 봤는데 옛날 것이 아니라 백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이 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 전에는 깜빡 잊고 알려주지 못했는데 편조가 바로 신돈의 불명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을해결사라는 불교결사가 편조스님 신돈과 연관이 있으며 동사의 멸실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무렵 불교계에서는 결사라는 말을 많이 사용 했기에 이절에 그런 결사가 있었는지 아니면 신도회를 아예 결사라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 이조말엽이나 일제 강점기, 불교 그룹들은 결사라는 용어를 잘 사용했었다.

아무튼 나는 결사 보다 금원 이라는 이름에 꽂혔다. 혹시 그 금원이 아닐까. 대뜸 추사의 제자이자 6촌 제수인 김금원을 떠올렸던 것이다. 사실 그 금원이라는 글자의 이름이나 호는 흔한 편이다.
그 금원을 내가 아는 금원으로 치부 하면서 상념은 이어지기 시작했다.
1857년 정사년 이후 김금원 그녀는 한양 인근의 불교 사찰로 들어간 뒤 종적이 끊겼다. 호동서락기를 썼던 걸출한 여류 김금원이 그냥 자취 없이 산사의 공양주 보살로 살았을 리 없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생각이다.
하지만 불교 사상가운데 미륵신앙을 상정해 보면 불명을 편조로 했던 신돈과 4백년쯤 뒤의 인물인 금원이 전혀 연이 전혀 닿지 않는다고는 얘기할 수 없다.

신분 질서 때문에 절로 들어가야 했다면, 적극적이면서 진취적인 성격의 금원이 불교사상 가운데 가장 역동적이고 현실 참여적인 미륵사상과 또 그 사상을 현실화 하려 했던 편조스님 신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풀려나가지 않는가.
신돈은 한때 자신이 미륵이라고 자처했고 속퇴 이후에는 그의 양자인 신해인을 미륵동자로 불리게 하면서 미륵사상을 전파했다. 신돈은 기실은 화엄경을 소이경전으로 하는 화엄종 출신이다. 그의 스승 천희 스님이야 말로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지만 화엄과 미륵을 조화시킨 독특한 불법을 창안해 낸 학자이자 승려로 꼽히고 있다.

대방광불 화엄경이야 말로 대승경전의 꽃이다. ‘화’는 깨달음의 원인으로서의 수행에 비유한 것이고 ‘엄’은 수행의 결과로서 부처님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것, 즉 보살이 수행의 꽃으로써 부처님을 장엄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때에 중요한 것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만을 뽑아서 장엄하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 무심히 피어있는 이름 모를 잡초들까지도 모두 다 포함된다는 점이다. 그야 말로 대승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을 일명 잡화경(雜華經)이라고도 부른다.
실제 화엄경 마지막품인 34품에는 선재동자가 미륵보살을 찾아가 보살도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엄에서의 미륵은 상대적으로 온화한 보살이기는 하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일어 난 것처럼 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이를 밝히는 것이 다큐멘터리다.
바로 그랬다. 금원이 핍박 받고 설움 받는 을들의 조직, 신돈을 비조로 하는 연원 있는 을해 결사에 들어 끝내는 그 수장이 되었다고 하면 어떨까.
내 상상은 이렇게 출발했고 실패한 개혁가 신돈과 만나면서 무르익어 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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