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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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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95회

 안 동일 지음

 색즉시공 공즉시색

여덟 호수의 물은 영롱한 비취색 이었고 녹음과 바위색은 짙었다. 금원이 금강산에 들어온지 닷새가 지난 날 새벽참 이었다.
“금원 자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조사 어록을 기억하고 있겠지?”
태을 스님이 상팔담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물어왔다.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서 나오는데 스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팔담에 함께 오라자고 해서 따라나선 참이었다. 스님은 팔담에 와서도 아무 말 없이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아무말 없다가 한참 만에 던진 말이 그 말이었다.
“예 그럼요, 그런데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곳에 있다 보니 그 말이 새록 다시 생각난다네.”
“그러시군요.”
금원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스님의 뜻을 알만 했다. 실은 금원도 그랬다.

스승 태을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은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달리 표현한 말이라고 했다. 이십년 가까이 전에 스님이 일러준 말이었다. 동사시절 초기였다.
그때 금원은 색증시공의 이치에 대해 스님의 가르침으로 단박에 문리를 터득했다고 여겼고 얼마 전 까지 의심 없이 지내왔다. 그랬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불현 듯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가 되새겨 지는 것이었다.
스승 태을스님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가르침이야 말로 비록 공한 세상이지만 집착 없이 열심히 세상을 살아 중생을 제도하라는 대승불교의 수승한 가르침이라고 하셨었다.
그런데 오늘 스님의 말씀과 태도는 그에 더해 무언가 더 있다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금원은 그것이 무엇인지 스님에게 선뜻 물어 볼 수 없었다.
또 여쭤본다 한들 스님이 예전처럼 명징하게 답변 해 주실 것 같지고 않았다.
스님은 더 이상의 말씀 없이 계곡아래 호수의 비취색 물길에 눈을 두고 있었다.
금원은 그토록 서원하면서 전념했던 하화중생이 생각지도 않았던 배신으로 좌절되던 허망한 순간 저도 모르게 공즉시색을 뇌어야 했다.

며칠간 그랬다. 금원은 색즉시공에 삶과 죽음을 대비 시켰던 것이다.
금원에게 삶의 터전 이었던 동사가 재로 변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법당과 부처 그리고 삶이 색이라면 죽음은 공 아닌가. 색즉시공.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자신의 생각에 집착해서 산다 한들 결국은 모두가 죽음에 이르니 허망할 따름 아닌가.
하지만 금원은 허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죽음에 이른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것이니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어 새 생명의 탄생에 기여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그것이 금원의 공즉시색이었다.

편조스님 신돈공이나 추사 대감처럼 결국은 세상을 떠나지만 그들 덕으로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승 태을 스님도 또 자신 김금원도 우리네 생명이야 말로 한 점 공 한 것 이지만 그 공은 바로 존재인 색이 아니던가 싶었다.

언제 부터인가 스승은 그런 금원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승은 무슨 뜻 인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다시 고개를 팔담 쪽으로 돌렸다. 이래서 불립문자 염화미소라는 말이 불가에서 널리 통용되는 구나 싶었다.
팔담을 내려다보는 스승의 모습이 추사의 마지막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랬다. 산은 산이었다.
세상은 현현하는 것이었고 벌어진 현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서 산과 물이 없어지거나 혹은 산과 물이 서로 뒤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니 깨달음을 얻어 차별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육신이 몸담고 있는 차별지(差別地)인 이 세상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스승은 말하고 있었다. 좌절은 현현하는 세상, 그 땅을 딛고 산처럼 우뚝 서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금원과 계의 식구들에게는 보듬어주는 산이 있었다. 태을 스님과 같은 스승도 산이었지만 수푹과 바위가 역시 산이었다. 산에 들어 있자니 산 같은 심정이 들었다. 조급하게 화가 끓어오르지 않았다.
금강산에도 설악산에도 치악산에도 그리고 내장산에도 또 안동 주왕산에도 산속 절과 사하촌 그리고 인근 부락에 결사의 은거지가 꾸려져 있었다. 전인회주 태을스님, 호법장로인 백결노사와 운학선생, 만인지관, 조삿갓 노인 모두 강건하게 자신들의 은밀한 거처에 건재해 있었다. 현봉도 늦게 동패가 된 이현성도 잘 있었다. 그리고 용호단이 거의 다치지 않았다.
정작 근거지는 산 속만이 아니었다. 산은 산이 아니었다. 금원에게는, 결사에는 큰 근거지가 있었다. 방방곡곡 백성들의 마음속이 바로 근거지였다. 그 근거지는 절대 양반네들이 찾아 낼 수 없는 근거지였다. 마음이 산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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