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동일 지음
대원위 분부
다음날부터 흥선군의 사저이자 신왕의 잠저인 운현궁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증축 공사가 시작 됐다. 사랑채며 내당이 번듯해 졌고 담장이 새로 고쳐졌다. 그리고 운현궁과 창덕궁을 연결하는 특별 통로가 건설됐다. 지하통로였다. 워낙 길하나 건너 가까운 곳이어서 공사는 어렵지 않았다.
초기에 대원군은 장김 등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하여 궁중출입을 되도록 피했다. 그러나 세상인심 조석변이라고 그의 주변에 모여드는 이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그가 궁중에 자주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의 정치활동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중요대관들이 자진해서 운현궁으로 대원군을 찾아 문안하고 정치 현안을 상의 했다.
“나는 태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고,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고자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대원군이 그즈음 신료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다.
대원군의 지위는 확고부동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군보다 높다는 뜻에서 대원위라 했고 거기에 대감을 붙혀 대원위대감 이라고 불렀다. 벡성들은 대원이 대감이라고 부르면서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금원은 회주와 청계의 지침에 따라 다시 막후로 들어가 상황을 지켜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에 궁에서도 나왔고 운현궁과는 신대장 한사람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선에서 접촉과 내왕을 자제했다.
모처럼 광주향교 수호목 아래 태을 스님을 비롯해 노사들이 모였다. 자연스레 노반회의가 이뤄진 셈 이었다.
“가성행께서 이 나라에 새 기운을 불러 일으켰음입니다. 애쓰셨습니다. 수훈갑 이십니다. 수훈갑.” 격조했던 조 삿갓 노사가 공대로 금원을 추켜세웠다. 조 노사는 금원이 건네는 냉국 사발을 엉거주춤 일어서서 받았다.
“제가 한 것이 무어 있다고 송구스럽습니다.”
금원이 쟁반으로 앞을 가리면서 대꾸 했다.
“대원위라, 큰 바람이 있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대원위 대감이 백성들의 원대로 잘 할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가? 가성행 보살께서는.” 운학노사가 부채질을 하면서 금원에게 물었다. 그도 전에 없이 금원에게 공대를 하고 있었다.
“가성행님이 그를 어찌 아시겠는가? 만사가 다 인연 따라 흐르거늘…” 백결노사가 대신 나섰다. 그 또한 경칭을 사용했다.
동사에 와 있던 금원이 냉국을 만들어 내 갔더니 노사들이 반가와 하며 한마디씩 덕담을 던져 왔다. 그것도 약속이라도 한 듯 예의를 차린 공대어로.
“잘 해야지, 잘못하면 어디 될 말인가,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애를 썼는데… 안 그렇습니까? 우리 결사의 대들보 삼호당 행수님.” 정만인 노사도 한마디 보탰다.
회주 태을 스님은 빙긋이 웃을 뿐 아무 말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태을 스님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지니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있다는 것은 금원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실은 스님을 달포만에 보는 셈이다. 스님은 새 임금 등극 후 동사의 일을 금원에게 맡긴 채 주로 금강산에 가 있었다.
대원위 대감으로 격상된 흥선군이 본격적으로 섭정에 나선 것은 선왕의 능이 완성되고 발인과 공식 장례식이 치러진 직후인 갑자년 4월 부터의 일이다.
그의 개혁은 신속하면서도 눈부셨다. 자고 나면 쏟아지는 구악을 씻는 개혁정책들에 백성들은 찬사를 보냈다. 왕권 무시와 비리의 온상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부활시키는 것으로 개혁의 시작을 알렸다. 비변사의 인장印章을 아예 녹여 영원히 부활하지 않을 것임을 알렸다.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권세 양반네들의 은결을 색출해 내는 것으로 전정개혁을 시작했고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기준으로 하는 호포제를 실시했다. 환곡제를 폐지하고, 지역의 덕망있는 이가 곡식을 빌려주는 일을 맡는 사창제(社倉制)를 실시하게 했다.
또 남인, 소론은 물론, 북인과 반역향이라고 소외된 서북인, 함경도인 등 권력에서 소외된 계층, 왕가의 종친 그리고 서얼 등에게 출사의 문호를 열었다.
국정 명령 집행문서 에는 ‘왕약왈(王若曰: 왕은 이르노라)’대신 ‘대원위분부(大院位分付: 대원위가 명한다)’가 앞에 붙었다.
이 ‘대원위분부’ 다섯 글자에 온 천하가 들썩였다. 특히 그간 힘께나 쓰던 양반네들은 나무처럼 떨었다. 공식적으로 수렴 첨정하고 있는 조대비와는 와는 뜻이 척척 맞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