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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78회

 안 동일 지음

28. 민요와 나라살림

“합하 형님과 호판 조카님은 어디계신가?”
화양서원 만동묘 아래 은밀한 후원채로 황급히 달려온 대사성 김일근이 땀을 흘리며 다급한린 표정으로 툇마루에 앉아 있던 조카뻘인 병조참판 김병훈에게 물었다.
“제조 숙부와 형님께서는 회의에 들어 가셨습니다.”
“벌써? 내가 한발 늦었구나…원상들은 다들 모였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만동묘 후원채에서 중요한 비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김일근도 참석할 수 없는 높은 권위의 회의였다. 바로 만동 원상회의 였다.
장김의 기세가 놀랄 정도로 단숨에 꺾여 있었다.
백성의 힘 , 민초의 힘이었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번 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안동 김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세도정치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만동이 저들을 버렸다고 보이는 징후들이 여러 곳에서 보여졌다. 오늘 열리는 만동 원상회의가 그 절정이었다. 오늘만해도 김일근과 김병훈을 대하는 이곳 서원의 유사들과 만동묘의 고직들의 태도가 전 같지 않았기에 저들의 심사를 더 뒤틀게 했다.
을해결사에서 각 지방 초군들이 외쳤던 격문을 즉각 입수해 장김 주요 인사들의 집에 화살에 매달아 배달한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한수였다.
그 내용도 저들의 그랬고 다음에는 불화살이 될 것이라는 협박에 저들은 전전긍긍해야 했다. 남아 있던 자경단이 총 동원돼 장김 주요 인사의 집을 지킨다, 남여와 연의 호위를 강화 한다 법석을 떨었었지만 한번 미끌어지기 시작한 빙판은 멈출 수 없는 법이엇다.
공화전이라 현액이 걸려 있는 만동묘 맨 안쪽 후미진 전각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번 일련의 사태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소?.”
“잘 알고 있음 입니다.”
“그동안 우리 회에서 당신들 안김에게 얼마나 많은 힘을 모아주었는지 잘 알고 계실 것이오.”
“예” 장김을 대표하는 두사람, 김좌근과 김병기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 두 군데 였다면 모를까 어떻게 쉰 군데 가까운 민요에서 모든 격문 마다 장김의 농단과 악행을 규탄하고 저주하면서 소요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동은 작금의 사태가 자칫 자신들 노론 벌열 전체의 화로 돌아 올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었기에 안김을 내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김이 워낙 오만군데 끈적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다. 저들의 암투는 진흙탕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모처럼 필제가 녹번정을 찾았다. 계해년 새해가 밝고서도 두 달이 흐른 3월 중순이었다.
“누님 필이 왔습니다. 초롱아 내가 왔다.”
지난번 민요 때 활약을 계기로 필제는 활력을 되찾은 모양이다. 목소리가 전례 없이 활기찼다. 실제 지난해 민란 때 그의 역할은 대단했다. 태을 스님 말 마따나 수훈갑이었다. 그런 수훈은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질만 했다.
필제가 전국각지를 돌며 만난 사람들 가운데 적당한 이가 있으면 금원의 결사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필제의 1차적 판단이 좋은 경우에 한해서 였지만. 그럴 경우 많은 사람들이 금원의 조직 쪽에 점수를 더 줬고 추후의 연계활동을 약속하는 예가 더 높았다.
이번 민란 민요 사태 때 지방의 협조자 가운데 절반은 필제가 먼저 접촉했던 인물들이었다.
필제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주는 부리는 창우, 따로 돈버는 아비 따로’라는 볼멘 소리를 던지기도 하였다.
마침 금원과 초롱이 함께 마당에 있을 때 였기에 이내 대문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필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과 함께 서 있었다.
금원과 초롱이 함께 놀라야 했다.
“아니, 총관님이 어떻게?”
초롱의 은인인 사충 자경단의 장총관이었다.
금원은 두 사람을 반갑게 후원 정자로 안내했고. 초롱은 정성 어린 다담상을 내왔다.
장총관은 지난해 민요 때부터 필제의 편에 적극 섰단다. 그리고 보면 필제가 그냥 건성으로 천하를 주유 하고 사람을 사귄 것이 아니었다.

격문 모으는 일이 그랬다. 민란이 일어난 쉰 곳 대부분 지역에서 그의 동무, 혹은 그를 따르는 이가 한둘은 꼭 있었다. 참 대단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씨는 필제가 뿌리고 수확은 을해결사가 거뒀던 셈이었다.
전직 자경단 총관 장현성과는 3년 전 초롱이 문제 때문에 서로 만난 이래 두사람은 계속 교분을 쌓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장총관은 결단을 내렸단다.
장헌성의 자경단 경험담이 나왔다. 장김의 주구로 사는 것이 늘 부끄러웠 단다. 무엇보다 저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백성들을 줘 짜고 있는데 이에 압장을 서야 하는 처지가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제 자경단은 뿌리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어 내부적으로 큰 금이 가고 있었다. 그랬다. 명분 없이 돈 때문에 몰렸던 군상들이 위기상황이 닥치고 돈이 나오지 않는데 충성을 다 할리 만무였다.

자경단은 자신들이 스스로 벌어서 운영하는 조직이었다. 장리 환곡쌀을 불리건 복주촌 세를 받던 아니면 복주촌 객점을 직접 운영 하던 스스로 재정을 만들어 해결 해야지 서원 자체에서는 운영비나 인건비를 지출하지 않았다.
민요와 더불어 환곡이 근절되고 복주촌 철거령, 특히 매음 근절령이 내려지면서 자경단 수입원은 봉쇄되다시피 줄었다. 민요가 일어난 큰 원인의 하나가 서원을 중심으로 한 향반들의 가렴주구와 수탈을 꼽고 있던 점이 저들에게 설자리을 잃게 했다. 많은 단원들이 보따리를 쌌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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