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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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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72회

안 동일 지음

  민요.  민심은 천심

한강이 아직 얼어 있었다. 사람들이 얼음을 뜨고 있다. 일견 재미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저들은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전날 읽었던 시가 생각난다.

高堂六月盛炎蒸 고당육월엉염증

美人素手傳淸氷 미인소수전청빙

誰言鑿氷此勞苦 수언착빙차노고

君不見 道傍暍死民 군불견 도방갈사민

多是江中鑿氷人 다시강중착빙인

고대광실 여름날 푹푹 찌는 무더위에

미인의 고운 손이 찬 얼음을 내어오네

얼음 뜨는 그 고생을 뉘라서 알아주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한여름 더위 먹고 죽어 널부러진 저 백성들

지난겨울 강 위에서 얼음 뜨던 자들인 것을.

 

태을스님과 백결노사가 함께 필제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를 달래기 위해 만나고 있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다. 금원의 부탁을 받은 현봉스님이 적극 나서 마련된 자리였다.

필제가 저녁 무렵 도착했고 곧이어 두 노장이 따라오듯 도착했다. 때문에 금원이 필제와 따로 길게 말할 시간은 없었다.  서로 얼굴 보고 씩 웃었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녹번정 제일 깊은 뒤편 초가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앉자마자 금방 열을 올렸다. 금원이 다과상을 내갔을 때 망징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긴박 했기에 필제가 있는 자리 였음에도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한비자의 책에 망징이 다 나오지 않습니까? 백결 어르신.”

필제는 누구한테 들은 얘기나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금방 소화해서 자신의 말로 들려주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옆의 금원은 여러 번 들은 얘기인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사람들에게 천연덕스럽게 처음 하는 얘기처럼 했다.

‘망징’. 나라가 망할 징조다. 금원이 필제와 함께 추사 선생으로부터 들은 한비자의 망징이다. 필제가 추사를 인용하건 않건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고 추사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들려 주었던 나라가 망할 때의 모습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더 큰 규모로 보여지고 있었다. 하나둘 정도가 아니라 무더기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필제에게는 중요했고 두 노사의 동의를 구해야 했던 모양이다.

필제가 금원에게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기에 금원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이게 무슨 나라입니까?”

“이 나라는 기필코 조만간 망합니다,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망하는 나라 없을 겁니다.”

“이선달 급한 마음은 알겠는데, 그간 특별한 준비를 했는가?”
“예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서북지방을 다녀 왔습니다.”
“그래서 성과는 있었고?”

“그곳에서 여섯 개 군에 동도단을 꾸렸습니다.”
“여섯개 군에?”
“예, 민심이 들끓고 있지요.”
“굳이 대답하기 어려우면 안 해도 되네만 동도단이라면 어떤 형태의 조직이고 어떤 사람들이 참여 하는지 말해줄 수 있는가?”
“그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장수감들입니다. 군현 마다 서너 사람씩은 묶어 놨구만유.”
“그런 군현이 서북에 여섯 군데나 된다고?”
백결 노사가 짐짓 경탄하는 척 하는 태가 금원에게는 보였다.

“그렇다니까요, 다들 결기가 대단합니다.”

“삼남지방에는?”
“벌써 열 군데 정도는 동도들이 장악 하고 있지요.”
“장악을 하고 있다고?”
“장악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지요.”
필제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나갔다고 여겼는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정정했다.

“명일당이라고 혈맹을 결성했습니다. 다들 일당백 일당천 합니다.”

금원이 알기에 그 무렵 필제는 백명 내외의 무술 뛰어난 청장년들의 결사를 꾸려 낸 것 같았다. 가장 절친한 참모가 금원도 잘아는 안필주였다.

안필주는 흥선군의 수하 천하장안 중 하나로 호위무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내심은 결사에 두고 있는 이였다. 결노사의 먼 친척이라고 했다.

그에게 들은 바로는 새로운 날을 의미하는 明日(명일)黨(당) 으로 필제가 당주란다.

“애 많이 쓰셨네, 하지만 얘기 들어보니 이제 시작일세.”

“그래 이 선달은 항상 너무 앞서, 그리 쉽게 생각하고 흥분할 일은 아니라고 보네.”
노사들이 차분한 어조로 필제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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