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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71회

안 동일 지음

신정왕후와의 만남

대비는 다시 금원을 대견하다는 듯 다시 쳐다보았다.
“어르신은 자나깨나 우리 백성 걱정 나라 걱정 그리고 잘못 알려진 역사 걱정하셨지요.”
“그런 대감을 그토록 고생 하게 만들었으니, 우리 모두가 면목이 없을 따름 아닌가.”
“그것이 왜 대비마마의 잘못이십니까?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세족들의 잘못이지요.”
“쉿 조심해야지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대비가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의 빛을 보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예 알겠습니다.”

금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목소리를 낮췄다. 방안에는 상궁 한명과 나인 한명이 저만큼에 읹아 있었다. 저들이 장동 김문의 세작은 아니겠지만 조대비의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오랜 기간이 금원에게 짠하게 다가왔다.
두 사람만의 공감대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그때였다. 앙증맞은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두 사람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쪽으로 다가 왔다.
대비가 기르는 암코양이 나비였다. 성하에게 들은 바 있었다.
나비는 대비 치마폭에 척하니 앉더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라도 하는 양 조용히 있었다.
대비도 큰 내색 없이 고양이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시선은 계속 금원에게 두고 있었다.
”그래 요즘은 무슨 책을 읽는고?“
화제를 바꾸려는 듯 대비가 다른 얘기를 물어왔다.
”청나라에서 들여온 소설책입니다.”
“소설책?”
“예, 미리견 이라는 나라 들어 보셨습니까?”
“미리견? 처음 듣는데.”
“구라파 사람들이 새 대륙을 발견해서 새롭게 세운 서양의 큰 나라랍니다. 그 나라의 여성이 쓴 소설인데 제목이 ‘도마 숙부의 움막집’입니다.”
“무슨 내용인고?”
“도마라는 것이 사람이름입니다. 그가 흑인 노비입니다.”
“흑인?”
“피부가 숯처럼 검은 사람 말입니다,”
“그래 그런 흉측한 사람들도 있다지.”
금원은 자신이 요즘 실제로 읽고 있는 “도마 숙숙의 소옥” 이야기를 대비에게 들려 주었다.

장원규가 청국에 갔다가 구해온 신간이다. 흑인 노예인 도마의 이야기를 통해 그곳 노예, 노비들의 비참한 삶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서 그곳 노비제도의 잘못된 점을 고발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 사람들 별 이야기를 다 책으로 만드는구나”
“그곳에서는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답니다.”
미리견의 한 중년 여성이 쓴 이 책이 당사국인 미리견을 비롯해 구라파 일대에서는 야소교 경전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고 할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그곳 생활의 습속이며 제도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사는 모습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말은 담담하게 했지만 금원은 요즘 적잖은 감동을 그 책으로 부터 얻고 있었다. 그러면서 작은 주먹이지만 부르르 떨리게 되면서 꼭 쥐게 됐다. 작가인 수도 부인은 금원의 또래였다. 그녀가 이 소설을 쓴 목적이 바로 이것인 듯 싶다. 노예제는 인간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한문으로 번역돼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읽기가 어렵겠구나. 어떻길래 그리 널리 읽힌다는지 궁금은 하다만 부끄럽게도 내 학문이 짧아서.”
“별말씀을 지난번 교지 내리신 글씨 보니까 그 필치가 대단하셨는대요.”
“늙은이를 놀리는 구먼,“
”마마 소인이 마마가 읽으시기 편하도록 언문 섞어서 윤문해다 드릴까요?”
“그래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고.”
이렇게 해서 다시 한 번 대비전을 찾을 구실은 확실히 마련해 둔 셈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펼쳐졌다. 별 중요하지 않았는데도 대비는 그리 제미 있어 했다.
아까부터 주상궁이 들락이며 이쪽을 쳐다보는 눈치가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마마 소인이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주상궁 저 사람도 참 눈치 없기는 이렇게 즐거운데…”
“그래 꼭 다시오너라.”
“예 빨리 책 만들어 오겠습니다.”

이제는 일어서야 겠다 싶은데 나비가 금원에게 다가와 치마폭에 앉아 머리를 들이 미는 것이 아닌가.
금원은 고양이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런데 털이 생각보다 보드랍지 않았다.
“나비가 금원 자네가 마음에 들었다는 구나, 여간해서는 곁을 안 주는데”
“아주 얌전합니다.”
“글세 그런 편 이기는 해도 성깔이 있어. 나비는 우리에게는 고조부 되시는 숙종대왕의 애묘 금손의 후손이란다. 그 아이 웃 대들이 이리저리 밖에 나갔다오곤 했지만…”
숙종은 잘보이려 고양이를 좋아하는 테를 내는 친한 신하들에게 고양이를 분양하곤 했는데 신하들 집에서는 그 고양이를 상전 모시듯 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금원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노론 대신 하나는 임금이 밉다고 고양이를 굶겨 죽였다고도 했다.
“마마 오늘은 이만…”
“그래 꼭 또 놀러오너라.”
절을 하고 나오려는데 대비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자신이 쓰던 벼루를 선물로 내 주는 것이었다. 최고급 담계옥석 벼루였다.

“자네 어쩌면 그렇게 말도 잘하시나, 내 왔다 같다 하느라 다 듣지는 못했지만 대비마마가 홀딱 빠지실만 하이. 그러니 그 아끼시는 귀한 벼루를 내리시지. 나도 다음이 기다려지네 그려. 자주 오시게, 마마 께서 그처럼 즐거워 하신 것이 얼마만인지 모른다네.”
궐문까지 다시 바래다주면서 주 상궁이 한 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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