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46 F
New York
September 19, 2024
hinykorea
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67회

안 동일 지음

서국의 청춘

“저쪽으로 뛰어 가는 소리가 들렸으니 쓸데없이 경 치지말고 저쪽으로 가보시오.”

군졸들은 미심쩍은 표정을 감추지 않으면서 서국을 나갔다.

“정말 고맙소 처자.”
세 청년 가운데 키가 크고 훤출한 청년이 경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의외로 경실은 부끄러워 했다. 청년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청년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려 할 때 금원이 청년들을 만류했다.
“아직 기찰이 심할텐데 조금 더 있다 나가도록 하시지요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경실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 한잔 들 하십시다. 경실이는 준비 좀 해 주지.”
“네 선상님,”
금원이 청년들을 탁자로 일행을 이끌었다.
서국 한쪽에는 다용도로 쓰이는 긴 탁자와 장의자가 있었다.
“차 보다도 냉수나 한사발 씩 주십시오.”
“찬물도 드시고 차도 드십시다.”

경실이 뒤 안으로 나가 찬물을 작은 백항아리에 담아 왔다. 청년들 셋이 벌컥 벌컥 들이켰다.
청년들 셋이 한줄에 앉았고 금원이 앞에 앉아 차를 내렸다. 경실은 차마 앉지 못하고 저쪽에서 서성이면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성균관의 유생들 같은데 그런 시위에 참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여기 오면 숨겨 줄 것이라고 어떻게들 아셨는가?”
“여기 성하가 앞장섰기에 따라 뛰었습니다.”
두 청년이 가운데 앉은 키큰 청년을 쳐다보며 말했다.
청년의 이름 아니면 자가 성하인 모양이다.
“지난번에 여기서 초당 선생 동생분의 책을 구했습니다.”
성하의 이 말이면 충분했다. 초당은 허균의 형 허봉의 호다. 허균은 아직 입에 올릴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랬군요. 허 선생의 책은 잘 읽으셨고?”
“예 호자가 든 대목을 아주 흥미있고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이 친구들도 같이 읽었습니다. 그 때문에 오늘 시위에도 가볼 생각을 했고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금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자대목이라면 호민론이다. 청년들은 의외로 깊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차 대접 해야 하겠군요,”
금원이 각자의 앞에 차를 따랐다.
“오늘 시위는 그동안 명륜당 유생들이 참여 했던 시위와는 성격이 사뭇 달랐죠?”
“그렇습니다. 오늘 시위야 말로 제대로된 권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성균관에서는 시위를 권당(捲堂) 이라고 했다. 원래는 성균관 식당으로 몰려가 식사를 거부 하면서 농성하는 일을 일컫었는데 근자에 들어 유생들의 시위 농성을 모두 권당이라고 불렀다. 성균관을 비우는 동맹휴학 공관(空館)도 권당이라고 했다. 서국에 나올 때 마다 간간히 청년 유생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된 일이다.
“저희들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동안 많은 유생들이 마음에도 없는 권당을 해야 했습니다. 다 장김 때문이지요.”
작고 다부지게 생긴 유생이 거리낄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아무튼 청년들은 보기 드물게 의식이 바른 유생들이었다.
장김이 문제라는 것, 그 때문에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격분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장김과 노론의 전횡 속에서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있는 점, 나라의 곳간은 텅텅 비어 가는데 세도가의 곳간과 몇몇 서원의 부와 위세가 점점커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제대로 된 진단을 하고 있었다.
계속 이쪽에 귀를 쫑긋 하고 있던 경실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실의 눈길은 줄곧 키 큰 청년에 가 있었다.
학생들은 성균관 2백여 전체 유생 가운데 자신들과 의기가 투합하는 숫자는 10여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래도 금원은 아직도 이런 유생들이 남아 있다는 것에서 저윽이 위안을 느꼈다. 더 늦게 되면 경을 친다면서 학생들이 인사를 꾸벅 인사를 하며 돌아갔다.

24. 풍양조씨 조대비

 

또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녹번정 뒷채의 초가 정자에서 금원은 언덕 아래 쪽으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내린 것 같지 않은데 개울이 온통 흙탕물로 뒤덮여 큰 강이 되어 있다. 하늘이 무심했다. 지난해에는 삼남지방이 물에 잠기더니 올해는 경기 충청지방이 물에 잠겼다.
올해 신유년은 지금의 상 강화도령이 즉위한지 12년째 되는 해였고 장김의 전횡이 꼭 60년에 접어드는 해였다. 하늘이 노했음이 틀림없다. 홍수에, 가뭄에, 큰 불에… 백성들은 이제는 그런 재해가 나도 임금을 원망하지 않았다. 임금이 힘없는 허수아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그런 일이 있으면 장김을 원망했다.
‘저들이 저러고 있는데 하늘인들 노하지 않겠어.’

모르긴 해도 이번 비에도 삼남에서 들려오는 원성에 장김은 귀가 간지러울 게다. 장김 뒤에 숨어있는 송시열의 후예를 자처하는 만동은 가렴주구 헐벗은 백성들에게 갈취한 재화를 국경 너머로 계속 반출 하고 있었다.
만동이 그 말도 안되는 일을 벌써 수년째 게속 벌여 왔다는 것은 변원규가 나서 연경의 요로에 확인까지 마친 사안이었다. 사신단의 일원으로 연경에 갔을 때 청 왕실 직속이라 할 수 있는 동창을 통해 확인 한 지재였다.
만동은 암암리에 태평천국의 난을 돕고 있었다. 태평천국이 야소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도 복명반청의 대의에 입각해 있고 중화를 중흥한다는 명분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말도 안되는 이같은 명분으로 백성들을 쥐어 짜 그 돈을 중국에 상납했던 것이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제31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42회

안동일 기자

<실록(實錄)소설> 순명(順命) 그때 거기 지금 여기 (연재 19)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