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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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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66회

 안 동일 지음

 서국의 청춘

군관의 표정이 변했다. 몹시 당황한 듯 했다.
이때 성균관 유생복의 학생들 여나문명이 구경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연좌 시위에 참여 하려는 모양이다. 군관과 병졸 서넛이 화들짝 놀란 듯 그쪽으로 달려와 그들을 막아섰다. 병졸들은 창으로 학생들을 거칠게 밀었다. 유생들의 합세 만큼은 반드시 막으라는 지시를 받았던 모양이다.
“왜들 이러시오. 물러서시오. 사람 다치겠소.”
학생들도 완강했다.
“보아하니 명륜당의 유생 같은데 혼나지 말고 돌아가도록 하시오.”“무슨 말씀이시오. 군관 나으리나 다치지 마시오.”
옆의 똘망한 유생이 나섰다.
“군관 께서는 왜 대궐 문 마당이 이리 넓은 줄 정녕 모르신다는 말이오? 모두 우리 백성들이 상감마마께 아뢸 것이 있으면 직접 와서 말하라는 뜻에서 이리 넓은 것이오.”
다른 유생이 한몫 거들었다.
“저 현판을 보시오 왜 돈화문이라 했겠소? 널리 소통한다는 돈화 아니요?”“그리고 엊그제도 우리는 여기서 전하께 주청을 드렸는데 그때는 왜 막지 않으셨소? 세도있는 대감들의 뜻에 따른 권당이라 그런 것이오?”군관의 표정이 머쓱해 졌다.
군관과 병졸들이 주춤 하는 사이 끝 쪽에 있는 학생들부터 냉큼 자리에 앉았고 이내 여나문명 모두 앉았다.
못 이기겠다는 듯 병졸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구경꾼 들 가운데 스무명쯤이 학생들을 따라 그 뒤로 앉았다.
돈화문 앞 돌마당이 거의 다 채워졌다. 아주 드문 일이다. 함성이 다시 울렸다..
“백성들이 주리고 있습니다. 탐관들을 벌 하소서 상감마마.”
군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함성이 더욱 커졌다.
“탐관오리를 벌 하소서 주상전하.” 돈화문 마당을 뒤흔든 함성은 분명 대전에 까지 들릴 것으로 여겨졌다.

금원은 더 있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서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실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금원을 따라 왔다.
서국은 생각 보다 더 잘 운영되고 있었다. 사실 책이 없어서 못 팔지 남는 책, 안 팔리는 책은 거의 없었다. 조선 유생들의 책 욕심은 필사본을 만드는 사경사들의 일을 많게 했다. 또 팔릴만한 책을 사경했다. 목판이나 활판으로 인쇄를 하는 것 보다 그쪽이 훨씬 깨끗했고 싸게 먹혔다,
금원은 목록을 들고 지난달 동지사 일행이 청나라서 들여온 책들을 살펴 보았다. 역시 서양의 사정을 담은 해국도지 편집판 20권에 눈길이 제일먼저 갔다. 그 다음엔 천주학 비판 책이 몇 권 있었다. 천주학 책은 제목에라도 비판이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으면 반입 금지였다.

돈화문 앞 연좌 시위는 계속 되는지 장부 정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선상님 아까 그 유생들 아주 멋지지 않았습니까? 군관께서 다치실 텐데요. 허허허 ”
서가와 창고를 둘러 보고 온 경실이 금원에게 동의를 구해 왔다.
“그래, 아직 그런 의기 있는 유생들이 남아 있다는 게 다행스럽더구나.”
경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연실 생글 대면서 서가쪽의 책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했다.
간간히 들려오던 고함소리가 한참 안 들렸다. 그러더니 단말마같은 비명소리가 들린 듯 했고 우와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 졌다. 얼마 후 인사동 골목쪽에서 사람들이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이 군중들을 무력으로 해산하고 일부를 쫒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기어이 병사들이 시위대를 두들겨 패 쫒는 것 같은데요.”
경실도 눈치와 상황판단이 빨랐다.
“그런가 보구나. 얼마나 많은 이가 다치려는지.”
“제가 한번 나가 볼께요.”경실이 나가려는 순간 서국 문이 벌컥 열리면서 청년들 셋이 헐레벌떡 서국으로 뛰어 들어 왔다. 아까의 성균관 유생들이었다.
“이리로 숨으세요.”
불문곡직하고 경실이 뒤쪽의 서책 창고 문을 열어주면서 학생들의 등을 밀어 숨겼다.
곧이어 한성부 군졸들이 들이 닥쳤다.
“여기 유생들 들어오지 않았소?”
“그런 일 없는데요.” 경실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이리로 들어가는 것 봤는데…”
“그런일 없다니까 그러네.”
“안쪽을 봐도 되겠소?”
“이 군졸들이 어디서, 서국의 서가는 나랏님도 함부로 못들어 간다는 공자님 맹자님 이래의 지엄한 국법 모르시오?”
군졸들이 멈칫 했다. 금원도 처음 듣는 지엄한 국법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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