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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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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61회

안 동일 지음

나합 도내기

금원이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말일세, 한 가지 자네한테 꼭 일러줄 말이 있는데 자네 선에서도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기는 하지만 힘닿는 대로 일이 되게 해야 할 것이네.”
“꼭 되게 하라는 말처럼 들리네요 성님.”
금원은 안동김씨들의 씨족 서원과도 같은 서원의 복주촌이 형편없는 색주가로 변하고 있다는 말을 해 줬다. 특히 화양 복주촌은 나주 기생들에게는 완전히 악마의 소굴로 변해 있다는 얘기를 강조했다.
나합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적잖이 놀라고 흥분했다.
“석실서원이라면 지도 몇 번 갔던 곳인디, 경치 그리 좋은 그곳이 그렇게 변했단 말이요? 거기다 괴산서는 우리 아기들이 그리 고생을 한단 말이요?”
“그렇다니까.”
“자네가 영감한테 말해서 사정이나 알아보고 해결 할 수 있는 길을 알아봐주면 좋겠네.”
“예 그러지요.”
도내기는 술 한잔 더하고 노래라도 한 곡조씩 뽑자고 했지만 금원은 알다시피 그럴 경황이 없다면서 다음을 기약하자고 하고 도내기의 집을 나섰다.

23. 은사스님과 필제

세상과 사물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은 편리하고 명확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 할 수는 없다고 금원은 생각해 왔었다. 세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뉘어 있긴 해도 꼭 양쪽이 서로 싸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도저히 같은 하늘아래 함께 할 수 없는 부류들이 있었다.

오랜 체탐과 지재 종합 끝에 결사의 구체적인 적, 장김 뒤에 웅크리고 있는 노론벌열의 실체가 파악된 모양이었다. 때가 무르익고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회주의 당부가 하달 됐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분임 회합이 차례로 열렸다.
현봉스님은 지금의 청계가 역대 어느 청계 보다 저변이 넓고 탄탄하다고 얘기하곤 했다. 단결력도 기대 이상인데 의외로 규율이 잘 확립돼 있다고 자랑했다.
현봉이 이끌고 있는 용호단의 규모도 커지고 내실도 다져져 있었지만 덕배 아재야 말로 한수 이남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전국, 주로 삼남지방을 주유하며 상두꾼들과 연희패들을 만나고 있는데 성과가 눈 부셨기에 현봉당의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이보게 금원, 덕배가 또 한건 해냈다네, 어얼쑤 일세.”
충청도 덕산에서 그리고 경상도 진주에 이어 전라도 벌교에서 최상의 동패들을 엮어낸 모양이었다. 덕배 아재의 새 동패들은 그대로 용호단으로 편입될 만큼 힘 잘쓰고 날랜 이들이 많았다.
“어째 자네답지 않게 경하게 구시는가. 현봉.”
그날 현봉은 옆에 있던 태을 스님한테 한마디 들어야 했다.

태을 스님은 큰방에서 신도들과 상담을 하고 계셨다. 저들의 체탐을 피한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워낙에도 스님은 민초 신도들과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금원은 늘 하던 대로 조용히 들어가 합장을 드리곤 웃목 구석에 앉았다. 현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늘 금원을 호출 한 것은 현봉이었다. 장김 뒤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노론벌열에 대해 구체적 내용을 알아냈다면서 이를 자세히 설명해 줄 터이니 동사로 오라고 전갈 해왔던 것이다

수척한 여인네는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민생고를 털어 놓았다.
스님은 조목조목 왜 조석끼니가 없는지 따졌다.
“게으름을 부리고 일을 안했는가?”
“밤낮없이 남편하고 둘이 논으로 밭으로 뛰었지요.”
“그러다 병이라도 나서 몸 져 누웠는가?”
“아니요 그럴 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먹을 게 없어?”
“도지세가 너무 과합니다.”
“작년에 스무가마 했는데 열여섯가마를 가져갔습니다.”
“그랬군, 그리고 나머지는”
“그건 나라에서 군포대신 가져갔습니다.”
“다?”
“예, 그것도 모자란다고 내년에 더 내랍니다.”
“저런 처 죽일 놈들.”
“스님이 어찌 그런 험한 말씀을…”
“왜 우리 중생을 착취하는 못된 마구니들한테는 더한 말도 할 수 있지, 그럼.”.
그러면서 스님은 앞으로는 식량을 절대로 빼앗기지 말라고 식량 감춰 놓는 방법 까지 일러 주시는 것이었다.
“그 거짓말은 부처님 계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거든, 이 이치를 알아야 해 꼭.”
같이 앉아 있던 부녀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절에서 내려갈 때 매향비 앞에 놓인 곡식 자루를 하나씩 가지고 내려가라고 했다. (계속)

위 사진은 하남 춘궁동 동사지에  있는 국가보물 석탑  2기의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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