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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59회

안 동일 지음

22. 나합 도내기

세상일은 모두 사람의 일이다. 그 사람의 일을 재물과 권력을 얻는 일 출세하는 일로만 보는 이들이 세상을 메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 땅에서는 양반 사대부라는 사람들이 더 그랬다. 그들에게 유학의 가르침은 포장용 장식이었다.
세상의 부와 권력에 빌붙어 사는 것을 기생한다고 말한다. 기생 출신인 금원은 그 말이 참 싫었다. 하지만 그런 부류가 참으로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을.

금원은 모처럼 치마저고리에 장옷까지 차려 입고 가마를 대절해 한양 성내 행차에 나섰다. 동무 지선과 함께였다.  녹번에서 출발한 외바퀴 사인거는 홍제리를 거쳐 무악고개를 너머 사직골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택했다. 바퀴가 달려 있기에 4인이 끌어도 충분했다. 산길이라고 해야 왕래가 빈번해 언덕길처럼 다져 있었다. 그쪽 성곽에는 자하문 이라고 부르는 창의문이 있어 쉬이 도성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가마 탄 대갓댁 마나님인 줄 알았는지 일사천리 통과다. 또 무악재 가마꾼들이 수직군과 친한 모양이었다.

일사천리로 성안에 들어와 목적지인 장동으로 가고는 있지만 이번 행차는 마음 크게 편한 행차는 아니었다. 아직은 어떻게 나올지 모를 껄끄러운 상대에게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직골을 왼쪽으로 끼고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자락을 오르면 그 끝 무렵 동리가 장동이다. 상청계, 청운골, 장의동이 이 안에 있는데 사람들은 장동이라고 불렀다. 한양에 올라와 터를 잡은 안동 김문 일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 김문을 장동 김가, 장김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가마는 상청계 끝 무렵의 솟을 대문집 앞에 멎었다.
“도내기 있는가? 미리 전갈은 했네만.”
지선이 근엄한 목소리로 달려나온 청기지에게 말했다.
“예, 나합 마님께서 진작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청지기 까지도 나합이라 부르고 있었다.
나합 (羅閤), 양 도내기는 김좌근의 첩실이었다. 안동 김문의 수장, 사충서원 도유사, 영의정 김좌근 말이다. 지선과 동향인 후배 기생 도내기가 그의 소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합의 나는 도내기의 고향 나주의 앞 글자, 합은 바로 합하의 준말이란다. 정1품의 고관들에게만 붙여주는 경칭이다. 당시 벼슬을 원하는 사람들은 앞 다투어 김좌근을 움직일 수 있는 양씨에게 뇌물로 청탁했고 양씨의 마음에 들어야 벼슬을 땄다. 그래서 그녀는 권력의 정상에 있는 ‘나주 출신 정승’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합이 버선발로 뛰어 나왔다.
“아고 성님, 이게 무슨 일이다요. 이렇게 다 찾아오시고.”
나합, 도내기는 지선의 손을 부여잡고 반가와 했다.
교만을 떨면서 옛 동패들을 홀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일단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면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수월해 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형님이 바로 옥패 받으신 금앵 행수님 이시우?”
“그렇다네.”
“정말로 뵙고 싶었습니다. 형님.”
그러면서 중인환시리에 대문간 땅 바닥에 넙죽 주저앉아 절을 하는 것 아닌가.

다소의 과장기는 있었지만 진심인 모양이다. 자신의 가솔과 구경꾼들에게 기녀들의 의리와 규율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테 였기에 금원도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응대 했다.
“반가우이. 나도 자네 명성은 귀 따갑게 들었으이.”
기생은 일패, 이패, 삼패 세 부류로 나뉘었다. 일패 기생은 양반 기생이라고도 불리며, 행수(行首)나 선상(選上)이라고 했다. 금원과 지선이 바로 행수였고 도내기는 지선이 교방에서 가르친 제자이자 후배였다. 선상은 원래 뽑혀서 서울로 올라간 기생이라는 뜻이었다. 전라도 지방에서 선상님은 최고의 존경하는 이에게 보내는 경칭 아닌가. 도내기의 뒤를 따라 선상 두명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변대감 저택 보다는 크기는 작았지만 곳곳에서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이 묻어났다. 또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서 조망이 좋았다. 사랑채를 지나 부엌과 작은 채 그리고 중문을 지난 뒤쪽 안채로 올라갔다.
소문에 따르면 작은 채가 유난히 낮아져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소문이란 것은 그럴싸할수록 더 믿지 말아야 한다. 멀쩡한 집의 기둥을 잘라내서 주저앉힌다는 것이 애당초 말이 안됐다.
소문에는 나합이 전망이 탁 트이지 못해 답답해서 속병이 다 난다고 하자 김좌근이 급기야 아래채의 네 기둥을 서너자씩 잘라내어 높이를 주저앉히고, 집 앞쪽의 민가 몇 채를 사들여 때려 부숴 앞을 트이게 해줬다고 했다.
백성들은 끼니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이런 짓들을 예사로 해댄다고 짜하니 소문이 퍼지게 되니 나합을 욕하는 소리가 더욱 크게 번질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더한 일도 최근 금원의 귀에 들어왔다. 수륙제를 지낸다고 몇 가마니의 쌀로 밥을 지어 한강에다 퍼 부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천인이 공노할 일이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벼슬아치 지망생들 중 젊고 반반한 사내놈들이 나합의 눈에 들면 나합의 가랭이 사이에서 놀아나지 않은 놈들이 없다고 사람들은 입방아를 찢고 있었다.
“구경들 하시지요. 천천히 놀다 가시는 겁니다.”
“대단하긴 대단하네 그려. 없는 게 없군 그래”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지선이 말했다.
정말로 나합의 안채에는 없는 게 없었다. 으리으리한 화초장이며 경대 노리개와 패물들 그리고 장구와 가야금 그리고 화려한 춤복이 즐비했다.
영감 앞에서 간혹 재주를 선보이는 모양이다.
금원은 보지 못했지만 지선의 말로는 도내기의 춤 사위는 천하제일 이란다.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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