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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54회

 안 동일 지음

두물머리 석실서원

그때 여러 번 울리는 편경소리가 났다.
그러자 말을 나누던 사내가 급한 기색을 보이며 일어섰다. 마당 이곳저곳에 있던 검은 옷 사내들이 안쪽으로 급히 몰려간다. 집합 신호인 모양이다.
필제와 금원도 대문 쪽으로 가야 했다.
대문간 주변의 다른 대원들을 의식해서였는지 사내는 짐짓 근엄한 소리를 낸다.
“오늘은 집사 어르신이나 집강 어르신이 안 계시니 다음에 찾아오도록 하시오”
사내는 필제와 금원의 등을 떠밀다 시피 밀어내고 대문을 닫았다.
“이보오 새돌이, 그럼 이따가 .”
필제가 안에 대고 나지막히 말했다.
“알았소.”
사내도 대문 너머로 작게 답했다.
몇 걸음 걸었을 때 퍽하는 소리가 나더니 으악 비명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렸다.
조금 전 잡혀 들어간 사내가 곤장을 맞는 게 틀림없었다.

매를 맞는 사람에게는 안됐지만 금원은 필제가 다시 보여 그의 사정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필제의 친화력과 임기응변이 대단했다. 이렇게 사람들을 사귀는구나 싶어 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날 밤 금원과 필제는 부용암으로 가려 하다 그냥 석실에서 묵기로 했다. 곧 해가 떨어질 테고 해 떨어지면 부용사가 가깝다고는 해도 밤길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약속대로 새돌이라는 자경단원이 객점으로 나왔는데 필제는 자신은 마시지도 않고 시늉만 내면서 탁배기 두어잔과 함께 그를 단박에 자기사람으로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 금원과 결사가 꼭 알고 싶어 하는 소식의 대강을 알아냈다. 자경단원 새돌은 높은 양반들이라고 하면서 자경단은 물론 안동 김문을 좌지우지 하는 조직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저들이 지난해 초부터 그렇게 돈을 재촉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돈이 중국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엄청난 지재를 필제에게 들려주고는 다음을 기약하지며 단으로 돌아갔다.

객점은 계속 꽤 붐볐다.
저녁식사와 필제의 잠자리는 해결이 됐는데 금원의 잠자리가 문제였다. 여자가 묵을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쩐다 싶어 사정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낮에 만났던 양평네가 아는 체를 해 와서 가까스로 잠자리를 해결 할 수 있었다. 여 종업원들이 자는 큰 방 한구석에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2층 객실이 꽉 차 빈방이 전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었는데 방이 없다고 할 때부터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잠자리에 바랑도 둘 겸 한번 살펴보러 부엌방에 갔는데 여자 우는 소리가 나서 가 보았더니 낮에 만난 순정이 부엌 끝쪽 목간통 앞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순정이 아니냐?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아 아씨마님.”
순정이 가슴을 가리면서 금원을 보며 반가운 테를 냈다.
목욕은 대충 끝낸 모양이었다.
금원은 시렁에 놓여 있는 옷가지를 가져다주었다. 고급도 아니었고 새 옷도 아니었지만 저급하게 화려한 무늬의 옷이었다.
순정은 울면서 사정을 털어 놓았다.
나라 안 에서 손꼽히는 명문 서원이라고 자랑해왔건만 장김의 탐욕은 서원과 서원촌을 인신매매의 소굴로 나락에 떨어뜨렸던 것이다.

2층 한쪽을 유곽 매음굴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어린 시골 소녀를 유녀로 만들려 하고 있던 것이다.
객점 부엌에서 일 하는게 아니라 유곽에서 일해야 된다면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하라했다는 것이었다. 침모는 화장품을 가져 온다며 내려갔단다.
“어떻게 하면 좋아요? 아씨마님”
하며 순정은 계속 오들오들 떨면서 울었다. 이럴 수가…이제 겨우 열다섯인데…객점 계단에서 마주쳤던 우람한 뱃꾼 부랑배 같은 사내들의 음탕하고 저속한 모습이 떠올랐다.
금원은 분이 올라 고함을 쳤다.
“여기 누구 없소? 여기 사람 없냐는 말이오.”
그제야 이쪽으로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부용사 원주에게 건넬 어험, 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고 순정의 복 이라면 복 이었다.
참으로 숭악한 놈들이었다. 놈들의 두목이 바로 정만식 이었다. 원주 청루에서 악덕 집사 노릇을 하다가 덕배 아재에게 실신 하도록 떡매를 맞았던 그 작자였다. 어음을 받아들고 히히덕 거리던 그의 비열한 표정.
“아무리 소시적 동무 김행수라 해도 이 애를 그냥은 못 데려가시지, 들인 돈이 얼만데…”
“내가 어찌 당신의 동무요? 가당치 않게,,, 그래 얼마를 내놓으면 이 딱한 아이를 내놓겠소?”
작자는 잠시 사이를 염두를 굴리더니 이렇게 나왔다.
“쉰 냥은 받아야겠는데…”
마침 쉰냥으로 쪼개놓은 어험이 있었다.
“여기 있소.”
쌀 세섬, 여섯 가마라면 열다섯냥 이었지만 더 이상 실랑이를 하기 싫었다.
오들오들 떨었던 열다섯 순정은 긴장이 풀렸는지 이내 필제의 등에서 잠에 떨어졌다. 금원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자신은 순정과 다르기는 했지만 이 땅의 가난하고 신분 약한 여자들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어 그랬다. 금원은 해어화 사발계 확장에 힘을 쏟아야겠다고 생각을 다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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