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동일 지음
두물머리 석실서원
“여기 사람 필요로 하고 있다고 해서 왔는데…”
“사람? 사람이야 필요로 하지. 그런데 누구한테 들었소? ”
“구기골에 사는 천희연이라는 동무한테 들었소.”
사내는 필제의 위 아래를 다시 훑어본다.
“그 사람이 누군지 난 잘 모르겠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와서는 안 돼요, 게다가 집강 어른이 지금 계시지 않으니…”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누구요?
“내 안사람이오.”
필제가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통에 금원도 속으로는 적잖이 당황해야 했다.
“거 참 일 하겠다면서 안사람하고 함께 오는 사람 처음 봤소.”
금원도 사내에게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까닥였다. 사내는 순진한 편이었는지 오히려 자기가 당황해 한다.
“그나저나 당신 뭐하던 사람이요, 무예는 했소? 여기 그리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닌데…”
“고향은 충청도 진천 인데 내자와 함께 보따리 장사 일을 했었소. 그치만 워낙 사람들 살림이 어려워서. 무예는 소시적에 조금….”
“그러면 아주머니도 일자리를 찾는 거요?”
금원에게 묻는 말투가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마땅한 자리라도 있으면…”
금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여자들 일이야 많은 편이지, 여기 석실에선, 꼭 여기 자경대 아니더라도 그런데 알다시피 신분은 확실해야 된다오,”
필제가 시간을 더 끌고 얘기를 나누겠다는 심산인지 성큼 옆의 화단 쪽으로 가 평평한 돌 위에 털썩 앉았다.
“앉으슈, 다리 아픈데 서 있지 말고 .”
사내도 안쪽을 한번 흘끔 보더니 그 옆의 돌에 앉았다.
“그래 형장은 여기 들어 온지 얼마나 되셨우?”
“햇수로 벌써 5년이오.”
“5년씩 이나…그래 재미 좀 보셨수?”
“재미는 뭐 자식새끼 살리자고 하는 일인데.”
“애들도 있소?”
“자그마치 셋이오.”
필제가 옆 쌈지를 뒤지더니 콩엿을 꺼내 놓는다. 언제 그건 준비 했는지. 엊그제 녹번정 찬모 가 열심히 만들던 것이다. 엿은 먹기 좋게 조각 져 있었다. 자신이 먼저 하나 입에 넣고 손짓을 했다.
“사내가 주전부리는…”
하면서도 사내는 엿으로 손을 가져갔다.
뭐라도 같이 입에 넣으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법이다.
금원에게는 필제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변대감, 오경석, 조희룡 모두 골초였다. 냄새 때문에 참으로 괴로웠다. 담배를 물고 살았던 골초 정조임금이 담배 예찬론을 펼친 이후 이 땅의 담배인구가 날로 늘어갔다. 소화에도 좋고 심신안정에 효과가 있다나. 그 때문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사연이 많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의 경제를 좀먹는 또 하나의 원흉이기도 했다. 몇몇 거상이 쓸만한 담배는 매점매석해 폭리를 취하고 있어 비싸기 때문 이었다.
“실은 내가 뭐 좀 은밀하게 물어 볼게 있소.”
“뭔데 그러시오?”
“혹시 이곳에 김성순이라는 사람 있소? 전에 오위장인가 했던 사람인데.”
“그 양반을 왜 찾소?”
“아시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모르겠지만 나는 아오. 천주쟁이들 고변해서 오위장 벼슬 받은 그 사람 아니요?”
“맞소, 맞아. 제대로 찾았네.”
“그 사람 여기 없소, 벌써 지지난해에 화양 구곡 만동묘로 갔소.”
“만동묘?”
“왜 못 들어봤소 만동묘 묘지기가 나랏님보다 높다고.”
“만동묘야 잘 알지, 그런데 그 사람이 거기 가서 뭘 한단 말이오?”
“뭘하긴, 돈 벌지, 거기선 뭘 해도 한몫 잡는다고 하더이다.”
만동묘는 벌써 다녀온 곳 이고 김성순이라는 작자가 떠났다는 말은 이미 들었다. 그런데도 필제는 시침을 떼고 그렇게 응대했다. 무슨 꿍심이 있는 모양이다.
필제는 사내를 끌고 저쪽으로 가더니 뭐라 얘기하면서 또 뭔가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뭐라 하는지 무엇을 건네는지 금원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는 무슨 얘기를 주고 받는데 두 사람의 표정이 꽤나 심각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