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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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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50회

 안 동일 지음

  녹번정 시대

허균의 문학. 시와 소설 산문을 살펴보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그의 저항사상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대치와 경석이 차례로 나서 선생은 ‘자기 몸을 위한 위기지학보다 남을 위한 공부 위인지학이 훨씬 웃길’이라고 갈파했다면서 “온몸으로 차별을 해소하고 민본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선각자가 바로 허균 선생이었다”고 강조했다. 금원은 온몸의 숨구멍이 열리는 듯 한 희열을 느꼈었다. 허균을 공부하던 날 그날은 필제도 참석 했었다. 내내 어찌나 의기양양해 하고 신나하던지…변대감도 소년처럼 얼굴이 벌개졌었다는 기억이다.
“사사로운 봉록이나 명망을 낚아 챌 뿐이면서 번드르르 꾸며 세상에는 군자로 알려지기를 바라는 이 땅의 거짓 유자들에게는 죽음도 아깝다. 하늘이 그런 교활함에 노하여 사람의 손을 빌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허균 선생의 격분이 귀에 들릴 듯 했다.

어느 날 저녁 이었다.
대문에 쿵하는 소리가 났기에 마침 마당에 있다가 나가보니 필제가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얼른 장쇠를 불러 안채에 눞히게 했다.
생명이 위급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디서 심하게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팔다리 중 한두개는 뼈가 부러진 게 분명했다. 얼굴을 포함해 온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리고 술을 마신 듯 술냄새도 났다.
대충 젖은 수건으로 씻기고, 찟어진 곳에 소주를 발라 소독하고 겹질러진 부위에 부목을 대는 동안에도 필제는 끙끙 신음만 낼 뿐 깨어나지 못했다.
“아니 이 힘센 장사를 누가 이렇게 만들었누?” 마침 녹번정에 와 있던 변 대감도 혀를 찼다.
“그래도 여기 까지 저 몸을 끌고 온 게 장합니다.”
새벽녘이 되어야 깨어난 필제는 끙끙 알아가면서도 ‘흥선군 이 나쁜 인간’ 하면서 길길이 뛰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만했다. 무과를 함께 치룬 천희연이라는 동무를 만나느라 서울에 올라와 자하문 밖 구기촌 주막에서 탁배기 한잔 하고 있는데 우연히 흥선군 이하응을 만나 술을 함께 마시게 되었단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구기촌엔 운치 있는 주막이 몇 군데 있었다. 언감생심 종친과의 대작은 생각도 못했는데 흥선군이 굳이 우겨 적잖은 양을 마셨단다. 사실 필제는 술을 잘 못했다. 평소보다 한 두잔 더 했을 테고 두주불사인 희연이 많이 마셨고 흥선은 언제나 처럼 적당량 마셨을 터였다.
“얘기를 하다 보니 장김놈들과 서원놈들의 행패에 대해 욕하게 됐쥬, 나야 그렇다해도 희연이야 말로 그눔들에게 뇌물 고이지 않았다고 무과에 통하고도 제수 못 받았으니까유.”
아무튼 한참 욕하고 있는데 술김에도 분위기가 이상하더란다.
“사충서원 놈들인지 석실서원 놈들인지 장김 서원 자경단놈들이 그 주점에 와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닐곱명이나, 구기촌 그쪽이 장의동하고 가까워서 장김 개놈들이 자주 들락거리죠. 그걸 깜빡하곤…”
장김 욕을 해대니까 자경단 놈들이 뭐라고 한마디 했고 이쪽도 참을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시비가 붙은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분통터지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쪽 무뢰배 녀석들이 이쪽으로 우루루 오니까 이하응 그 인간이 벌떡 일어나 그놈들 에게 아는 척 하면서 이놈들이 선량한 대감들 욕한다고 우리한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 아닙니까?”
“하도 어이가 없어 그 인간 쪽을 쳐다보려는데 그때 놈들의 몽둥이가 날라와서 피하지도 못하고…”
“하하 그렇게 당했구만, 흥선군이라면 넉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변대감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니 대감은 그런 인간 역성을 드세유?”
필제는 버럭 성까지 냈다.

녹번고개 산골이 명물은 명물이었다.
그토록 심하게 다쳤는데도 필제는 산골 달인 물 세 사발쯤 마시더니 이레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물론 의원이 다녀갔고 다른 약도 쓰기는 했다. 그래도 산골이 타박상과 뼈에 좋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필제는 자신이 벌떡 일어난 것이 모두 금원의 덕 이라며 “누이는 이제부터 생명의 은인”이라며 부쩍 더 살갑게 다가섰다.
추스르고 일어난 첫날, 뒷 마당에서 웃통을 벋고 장작을 패길래 아직 더 누워있지 왜 일어났냐고 했더니 이랬다.
“누님 제게 한번 업혀볼테유, 그래야 끄떡 없다는 것 알겠수.”성큼 다가오는 것 아닌가. 이 사내가 어찌 이리 용기를 낸단 말인가 싶었다. 건장한 팔뚝 넓은 가슴을 보면서 쿵 한번 했던 금원은 그의 땀 냄새에 갑자기 정신이 어찔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필제의 등에 업혀 있었다. 팔은 그의 목을 꼭 감고 있었다. 속곳도 제대로 입지 않은 엉덩이에 그의 손이 있는 것 아닌가.
“됐네 됐어 얼른 내려줘. 누가보면 어쩌려고…”
필제가 내려주자 걸음아 날 살려라고 안채로 들어갔지만 가슴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쿵쾅댔다.

며칠 뒤 필제는 두물머리에 함께 가자고 제안 해 왔다.
“난데 없이 양수리에는 왜?”필제에게는 존대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 본인이 그렇게 하자고 우기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면 이리저리 일이 불안해 졌을 때 말리기 쉬우리라 생각 됐기 때문이었다.
“석실서원에 가보려는구만유”
“왜, 이선달을 이렇게 만든 사내들 찾아 복수하려고?”말은 그렇게 했지만 반가운 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석실서원이 있는 석수리 미호에는 한번 가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곳 서국에서 책을 꽤 가져갔는데 연락이 없었다. 들리는 말에는 망해서 주인이 야반도주 했단다.
필은 필 대로 찾아야 할 사람이 거기 있다고 했다. 부친 상소문 사건과 관련된 일이라는 짐작은 갔다.
“나하고 꼭 같이 가야 할 이유라도 있나?”
짐짓 다시 물어봤다.
“그럼, 많이 있지유”
필제는 누이를 모처럼 눈 호강 입 호강 시켜주려고 한다고 떠벌이듯 늘어놓는다. 미호라고도 부르는 그곳 미음 나루의 봄 경치는 최고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객점도 많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었다.
“됐어 그만. 함께 가기로 함세.”
석실에 간 김에 내쳐 부용사까지 다녀오리라 마음먹었다. 미호 석실과 양평은 지척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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