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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7회

 안 동일 지음

  관악산과  흥선군의 경복궁

변역관이 잠시의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열였다.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 같은 얼자, 중간사람 들의 세상 아니겠는가? 지난번 공학 때 듣지 않았나. 구라파에서도 중인계급이 나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대단하십니다. 그 연세에도 그런 생각을 하시고…”
“나야 뭐 자네 같은 인재들을 적극 후원하는 일에 뜻을 두고 있다네.”
“대감,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금원이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내 진작부터 자네한테 할 말이 있었네.”
“무슨 말씀이신지?”
“세상일이 사람의 일 아닌가?”
“그렇지요.”
“삼호당 자네 요즘 기거하는 광주의 절집 사정도 내 알아봤고, 또 자네가 무슨 일에 관심이 있는지 대강 짐작은 하네. 그래서 말인데 내가 도성 근교인 녹번읍에 쓸만한 초가 한 채, 비워두고 있음일세, 당분간 거기 와서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고 그럴 수 있으신가? 우리 보안재 시회도 그리로 옮기고…자네의 기개와 수완을 한번 떨쳐 보이시게나. ”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인 일이었다. 하지만 냉큼 그러자고 하기에는 고려해야 할 일이 몇 있었다. 금원의 사정과 생각을 어떻게 얼마나 아는지 그리고 스승 태을 스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첫째였고 현명하게 대처할 자신도 있고 변대감 성정상 그럴리 없지만 잘못 들으면 소실로 들어앉을 수 있겠냐는 얘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주 동사의 사정이며 제가 관심 두고 있는 일이라면? 무얼 어떻게 아시는지…”
“자네와 그곳 스님네 들이 예전에 서산대사나 사명대사 본받아 호국 승병놀음 하는 것 아닌가?”
변대감이 올 때마다 묘하게도 동사며 부용사가 무슨 일들로 북적였었다.
“놀음이라는 말씀은 좀.. 체력 단련들 하고 있었던 거지요.”
“아, 미안하이, 말이 잘못 나왔네…”
영 허투루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두고 얘기해야 할, 두 스님과 상의해야 할 문제였다.

변대감과 태을스님은 오래전 전부터 교분이 있었던 것이 확실했고 현봉당과도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최근에 보니 변대감은 현봉과도 서로 터 놓는 속내가 꽤 깊었다.
그때 일행들이 계단에 들어섰다. 거친 숨소리가 여기 까지 들렸다.
“아 형님은 연행 길 발품자랑 하시더니….”
둘만 있던 게 멋쩍었던지 광운이 먼저 얼굴을 모습을 보인 종운에게 큰 소리로 한마디 했다.
“어이구 죽겠다. 좀 앉자.”
변종운 대감에 이어 올라온 우선 대감, 두 사람은 체통 다 던지고 계단에 털석 앉았다.
금원이 옆에 놓고 있었던 호로병을 노인들에게 건넸다.
사양도 않고 그냥 입을 대고 들이킨다. 이어 건네받은 우선은 입을 살짝 떼고 들이키는 조심성을 보이기는 했다.

“이걸 또 올라가야 되는가.”
계단을 올려보며 노 대감이 말했다,잠시 땀을 삭였다. 아래쪽 경치는 여전히 그림이다.
“그런데 흥선군하고 우사는 어디 쯤 옵니까? 영 보이질 않네요.”
“흥선군, 그 양반 젊은 사람이 술과 계집에 곯았어. 곯아.”
종운이 여자에 곯았다는 말이 과했다 싶었음을 느꼈는지 금원을 흘끝 보며 스스로 움찔한다.
“그렇지 않아요 그 양반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입니다. 내가 유심히 봤는데 떠들레 과음하는 것 같지만 술도 석잔 이상 마시는 법 없더라구요. 잠도 밖에서 자는 법이 없어요.”
우선이 한마디 했다.그제야 흥선군과 우사 대감의 모습이 보였다.
우선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의외로 두 사람은 그리 지치거나 못 견뎌 하는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무슨 긴요한 애기라도 나누며 여유 있게 오른 그런 표정이다.
“건강들 하십니다. 비호처럼 오르셨습니다.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이쪽 걱정을 해준다.
늦게 온 두 사람이 숨을 돌리자 다시 출발했다. 죽을 고비 돌계단이 공연히 죽을 고비가 아니었다. 빤히 꼭대기가 보이는 데도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것 같다.

마침내 계단이 끝났고 평지가 펼쳐졌다.
꽤 큰 규모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연주암이다.
산문이 따로 없는 절이었기에 계단 끝에 올라서자 금원은 금당과 3층 석탑을 향해 합장 재배를 했고 다른 일행은 성큼 대중방으로 쓰이는 극락전 툇마루에 앉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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