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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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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4회

안 동일 지음

보안재 쑥대머리

난세궁읍 상현월 亂世窮邑 祥月現
곡곡인인 자만개 曲谷仁人 自滿開
우봉이 목청을 가다듬어 우리말로 옮겨 시조식으로 읊는다 .
“어려운 시절 어려운 고을에
홀연히 나타난 가을 초생달
고을과 사람들 비추면서 커가네.“
그러면서 금원을 쳐다보는 통에 무안해져야 했다.
“조오씁니다.”
누군가 추임새를 넣었다.“왜 추사는 이런 영감에게 문자향이 없다 했는지 모를 일 입니다.”
“반어법 이었데두 그러는가?”

다음 필대에 선 노장은 이상적 대감이었다.
그는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한시의 명인이다.

燕居偏愛小窗明 남루한 거처 이지만 밝은 창 아끼노라.
瓦當借拓長生經 기와 위에 장생(長生)이란 글자 새겨넣어
海內親朋同好古 친한 벗들 모두다 옛 가르침 존중하니
矯首年年候雁聲 머리 들고 해마다 기러기 소리 기다리네.

모두들 경탄을 했다. 중국어를 잘 아는 변역관이 ‘년년후안성’이란 싯구가 중국어 음운상 압권이라고 크게 칭송했다.
“우리 금원당은 후안성이 뭐라고 생각하시오?”
변 역관이 금원을 지목해서 물어왔다. “기러기 소리 후안성이 우리 백성들 목에 흰쌀밥 넘어가는 소리라면 어떨런지요?“
몇몇은 고개를 주억 거렸지만 몇은 눈살을 찌푸렸다. 금원이 너무 티를 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작자인 우선이 환하게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기에 이 또한 금원 편으로 넘어갔다.
저마다 붓을 잡고 싯구를 적었고 사군자를 쳤다.

금원도 우봉의 재촉 때문에 국화를 쳐야만 했다.
과지 초당에 걸려 있는 국화가 조선 여인네가 그렸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는데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들이대는 통에 붓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는 붓으로 가지런히 밥풀 붙이듯 꽃잎 그려내고 중붓으로 잠자리날개 겉잎 물들이고 장봉으로 뒷뜨락 수수 같은 대 그려내니 우봉도 최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종이에서 향기가 나는 듯 하다고 했다.

술이 몇 순배 더 돌았다. 분위기는 더 무르익고 있었다.
“우리 예쁜 여스님 인기가 절정일세, 이 사람들 삼호당 없을 때는 어떻게 계를 끌어 갔었
누?”
흥선군도 한마디 하면서 자신의 절기인 난초를 쳤다.
역시 일품이다. 봉안과 어두 그리고 제에서 어떤 경지가 보였다.
제발에 ‘봄향기 물씬 품고 피어난 난화 사람들마다 칭송하네 그 칭송 애민으로 이어지면 금상첨화’ 라고 적었다.
오늘은 기승전 금원인 셈이다.

누가 박규수 대감에게 귀엣말을 했고 박대감이 헛기침으로 좌중을 모은 뒤 입을 열었다.
“우리 금원 도반의 인기가 시백(흥선군의 자)영감의 말씀마따나 절정입니다 그려, 도반님도 뭔가 더 보여 주셔야 할 것 같소. 그렇지 않습니까? 본직도 추사 선생님께 들었는데 적벽가가 그리 명창이라던데…”“당연 제청이요”
금원이 사양 않고 사부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 공간으로 나갔다. 그녀의 손에는 댕기하나가 들려 있었다. 탕과 술을 나르던 소녀의 것을 좀 전에 빌렸다. 그리 화려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잿빛 승복에는 도드라져 보였다. 머리 수건을 풀었기에 정갈히 빗은 머리에 도톰한 이마와 눈썹이 돋보였다.
“이리들 환대해 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 또한 있는 재조로 어르신들 잠시나마 즐거우시게 하는 게 도리일 것 같습니다.”
좌중을 둘러보며 던지는 미소는 원주 명시선의 그것이었다.
“대감께서 말씀하신 적벽부는 어르신들 다들 아시다시피 재미없습니다. 얼마 전에 경기도 양주 땅에서 고창사람 신 동리라는 재주꾼을 만났는데 그에게 소리가락 몇 대목을 배웠습니다. 아직 서툴지만 한 대목 뽑아 보겠습니다,”

고개 돌려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금원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쑤욱 대애 머리 구이신 형용 정모 옥방에 가쳤쓰이니 ….“쑥대머리로 시작하는 춘향가 중 옥중가중 한 대목이었다.
좌중은 첫 구절에서 벌써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춘향가가 영정조 시대부터 제법 노래로 불리기는 했지만 이처럼 정형을 지어 가락을 만들어 낸 것은 최근이다. 견문이 밝은 북학계원들이라도 제대로 들어봤을 리 없었고 금원의 청아하면서도 깊이 있는 소리는 그동안 들었던 남도의 걸쭉한 소리와 또 다른 묘한 매력을 풍겼기 때문이다, 거기다 여자는 판소리를 하지 않았다. 중국의 경극에 여자 배우가 없었던 것처럼.
“생각나는 것은 오직 님뿐이라, 보고지고 보고 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우봉과 최진 벽오사 동인들이 역시 소리와 함께 놀 줄 알았다.
“그으래”
작은 추임새가 그쪽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피를 내어 사정으로 님 찾아 볼까”
“어이구”
“간장의 썩은 물로 님의 얼굴 그려 볼까….”
“그렇지.”
은근짜한 추임새에 금원의 목청은 더 높아갔고 사람들은 폭 빠져 숨을 죽였다.
의외로 흥선군이 제일 심취해 있었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쑤욱 대머리”
짧은 단가로 만들었기에 더운 차 한잔 마실 시각 밖에 흐르지 않았다.
노래가 끝났을 때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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