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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1회

 안 동일 지음

16. 보안재 시회

보안재(寶案齋)는 숙경영시대 조선 최고의 부자였다는 역관 변승업의 통의동 저택 후원에 세워져 있는 정자다. 변씨 일가는 안동 김문의 강취에 의해 많은 재산을 잃기는 했지만 승업의 고손자 광운 대에 이르러서도 아직 장안 최고 부자였고 그 저택은 한양 성내의 명물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는 환재 박규수를 좌장으로 추사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관료 문인들의 시회(詩會)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보안재 시회라고 명명된 모임은 관문에 들어 있는 이가 많기에 관의 휴무일인 旬(순)일에 열린다고 했다. 추사의 유지에 따른 시회였다.

결사에서는 진작부터 금원에게 추사의 제자들과 돈독하게 지내 유사시에 강력한 우호세력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침을 내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금원을 친척 누이 대하듯 하는 심재 오경석이 버팀목이기는 했어도 양반네들의 완고함과 보수성은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아무리 추사가 재주를 높이 평가 했다지만 아녀자는 아녀자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금원을 자신들의 장식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보안재 시회 얘기를 듣고 금원이 넌지시 한번 참석하고 싶다는 얘기를 경석에게 꺼냈지만 감감소식이었다.
그 무렵 시회와 계가 많았어도 남자들만의 이야기였다. 간혹 금원처럼 기생 동무들이 모인 여자들만의 시회가 드물게 있었지만 여자가 회원으로 참석 할 수 있는 하는 남녀 공동 시회는 없었다.

경석이 회원들을 조르고 보챘지만 꼼짝 않던 양반네들이 움직이게 된 것은 역모사건에 연루 될 뻔 한 변광운 대감을 구한 일이 있고 나서였다. 황해도에서 역모를 꾀하던 인사들이 소문난 부자인 변대감을 끌어 들이려 하는 것을 현봉스님의 체탐단이 알게 되었고 이를 금원이 경석을 통해 일러 주어 위기를 모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알디피 역모 사건에는 이름이 거론되기만 해도 엄청난 고초를 겪게 된다.
초도 역모 사건이라고 서북의 불만 인사들이 초도에 살고 있던 소현세자 후손을 옹립해 역모를 꾀한 사건이었다. 주모자 가운데 한사람이 자신이 변 부자를 잘 알기에 끌어들이겠다고 주위에 떠벌였던 모양이다. 만약 변광운이 그대로 연루됐다면 자칫 보안재 전체로도 화가 미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일 이후 동사와 안면을 튼 변대감이 경석에 동조해 금원을 시회에 초청 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하더니 보름 전 이었던 9월 초순, 오경석이 밝은 얼굴로 금원을 찾아 동사에 왔다.
추사의 2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시회를 이달 말 보안재에서 갖는데 금원의 참석을 좌중이 동의 했다는 것이었다. 듣던 중 반가운 얘기였다.

시회당일 금원은 태을 스님과 현봉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듬직한 청년 한명을 대동하고 도성에 들어왔다.
안국동 서국 거리서 만난 경석을 따라 금원이 보안재에 들어섰을 때 벌써 꽤 많은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무평은 족히 돼 보이는 넓은 정자 가운데는 커다란 입식 탁자가 놓여 있었고 여나문 명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금원이 들어서자 다들 반가운 표정들을 짓고 있는데 저 쪽에 정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바로 이필제였다. 일단 환한 미소로 아는 척을 했다. 어려운 어른들이 있어 더 이상은 곤란했다. 필제도 말년의 추사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었던 제자의 한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화양구곡을 찾은 지 반 년 만에 얼굴을 보는 셈이다. 그동안 열심히 전국을 주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방 들닫이로 돼 있는 문과 벽 가운데 다른쪽은 들어 올려 놓았고 상석 뒤쪽 문들만 내려놓았는데 추사의 서화 몇점이 걸려 있었다. 초의선사에게 써줬다는 다선이라는 큰 글씨 그리고 오경석이 몇 해 전 강탈하다시피 가져갔다는 불이선란도 그리고 ‘이용후생 노심초사’라는 새 휘호가 눈에 띄었다.
금원으로서는 의자에 앉아 하는 시회는 처음이다. 북방인 의주에 있을 때 객점 몇 곳이 입식이기는 했지만 낯설었다. 조정 의정부나 비변사 회의나 군막 이외에서는 입식을 하지 않았다. 개화된 시회다.
경석이 금원을 좌중에 소개 했다.
“추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칭찬 하시던 삼호당 김금원 동도올시다.” 언제 금원의 참석을 꺼렸냐는 듯 모두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초의당의 미소가 그윽했다. 금원이 불가의 승복을 깔끔하게 개량해 입고 있는 것도 노승의 마음에 들었을 법했다.
박규수 대감은 먼 발치서 두어번 본적이 있었지만 초의선사는 처음 보는 터였다. 경석이 작은 소리로 금원에게 좌중을 소개했다. 나이 지긋한 대감이 우선 이상적이었다. 금원은 각별히 고개를 더 숙였다. 추사에게 그렇게 각별했던 이 였으니…
잘생긴 청년 선비가 경석의 막역지우 유홍기란다. 그의 별호가 대치라는 것을 금원도 알고 있었다. 키가 훌쩍 크고 말랐지만 재주 많아 보이는 노인이 우봉 조희룡 선생이었다. 구면이다. 금원은 환한 미소로 그에게 인사했다. 그 옆의 유최진 노인이 조희룡과 막역한 사이로 그가 중인 화원 모임인 벽오사를 결성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얘기는 익히 들었다. 남병길과 이상혁이 과학에 귀재라는 칭찬은 추사에게 들은 바 있었고 상혁은 만난바 있었다.

필제는 전라도 부안 향교의 장의 일을 하고 있다는 전창혁 선비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전 장의와는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고부의 전 장의는 유대치의 소개로 모임에 참석 했단다. 필제는 지난번 과지초당 때와 마찬가지로 수염을 말끔하게 깍고 있었다. 필제는 이번에는 아예 초의선사와 동행한 모양이다.
집 주인인 변광운와도 반가운 인사를 했다.
“삼호당 정말 잘 오셨소이다.”
광운은 금원의 손이라도 덥썩 잡을 기세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에 고마움의 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금원도 그에게 공손한 인사를 했다. 도움도 주었지만 금원도 그의 신세를 크게 진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산 지하옥방에서의 일 말이다. 그는 이 시회 뿐 아니라 많은 유익한 일들을 적극후원하는 바람직한 부자였다. 역관이지만 의과도 함께 급제해 의술에도 조예가 깊은 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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