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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0회

안 동일 지음

화양서원 복주촌

필제가 엉뚱한 소리를 그것도 우렁찬 목소리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금원누님 당신 또한 이 땅을 정혁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추사 어르신의 인척이자 제자가 됐으며. 을해 스님을 만났고 그나마 깨어있는 양반들과 교분을 나누고 있는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금원은 필제를 쳐다보면서 씩 웃기만 했지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금원은 몇 걸음 더 내려가 개울가 바위에 앉았다.
진작부터 땀 차있던 발을 씻고 싶었기도 했고 코 없는 버선이었지만 오래 걸었더니 당혜 안에서 자꾸 쏠려서 발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아래 오전부터 손 물장구 치며 풍악을 올리던 양반네들이 생각난다. 금원이 버선을 벗고 하얀 발을 흐르는 물에 담갔다. 필제는 멋 쩍은지 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원과 필제는 같이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계곡 입구 쪽으로 내려갔다.
저녁에 열린다는 자경단 통문계 모임에 대해 알아봐야 하고 김성순과 팔뚝 전갈문신의 사내의 행적을 탐문해야 했고 무엇보다 초롱이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인연이라 그랬는지 초롱이는 너무나 쉽게 찾았다.
복주촌 객점거리에 들어서려는데 작은처녀가 “아씨” 하면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로 초롱이였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초롱이구나.”
와락 끌어안았고 뱅글뱅글 돌리기 까지 했다. 워낙 초롱이가 자그마했기 때문이다. 거의 2년 만에 보는데 많이 성숙해졌지만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초롱이는 낮에 금사담 입구에서 금원을 보았다고 했다. 선비들 풍류놀이에 술상을 날랐는데 그때 옆모습이 금원 같았기에 구곡 구경이 끝나면 복주촌으로 올 것이 분명했기에 객점 앞에 나와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똘똘함이 여전한 그녀가 그렇게 반가울데가 없었다.
“초롱아 다시 한 번 안아보자. 아이구 기특한 것.” 초롱이는 화양구곡에 와서도 계속 금원을 기다렸단다. 금원이 자신을 찾아 올 것을 철석 같이 믿고 있었다. 초롱을 빼내는 일에 중간 심부름을 했던 과천네가 오며가며 초롱에게 귀뜸을 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화양동으로 오게 됐지만 초롱이는 금원이 자신을 찾아 올 것을 믿었고 매일 복주촌 입구를 내다보는 일이 일과였단다. 그리고 틈만 나면 건너편 암자에 가서 부처님한테 간절히 빌었단다. 이렇게 오기를 참 잘했다 싶다.

금원은 다시 초롱을 꼭 안아 주었다.
워낙에 똘망한 초롱은 이곳에 와서도 색주가의 삼패가 되지 않고 객점에서 음식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초롱이를 데려올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너무 엉뚱한 값을 부르지 않는다면 몸값을 치를 준비는 돼 있었다.
필제가 나섰지만 객점의 서리는 자기 선에서 결정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지배인이 잠시 후 올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금원이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필제와 초롱이 애써 내색은 않는데 분명히 서로 아는 사이 같다는 점이었다. 금원이 고산 지하에서 나오던 날 얼굴을 보기는 했겠지만 둘의 태도는 그 이상이었다.
일이 되려니까 한꺼번에 쉬 풀렸다. 모두 고산의 장총관을 만난 덕분 이었다.
그날 열린다는 자경단 모임이 마침 초롱이가 일하는 황양객점 후원에서 열리게 돼 있었다. 후원으로 까지 갈 수는 없었지만 참석하는 면면은 객점 입구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손목에 전갈 문신을 한 사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고산의 장 총관이 모습을 보였는데 그는 객점에 들어서자 마자 초롱이를 찾았고 둘이 반갑게 해후하는 자리에 금원이 다가갔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장총관.”
“아니 삼호당, 당신이 여기를 어떻게…”
“초롱이를 데려가려 왔지요, 그런데 이렇게 총관어른을 만나게 됩니다.”
“동사 부용사가 점점 튼튼해 지고 있고 삼호당이 점점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소.”
“소식이 아니라 체탐이겠지요?”
“허허”
장총관도 초롱이를 금원이 데려가는 것에 적극 찬성이었다. 고산에서는 경계하는 눈, 신경써야 하는 눈이 많아 나서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덕분에 화양서원과 만동묘 자경단의 총관이라는 정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명목상 객점주는 있었지만 실제는 화양 자경단이 주인이었다.
필제가 나서서 일을 말끔하게 처리됐다. 초롱이의 몸값도 그리 비싸게 지불하지 않았다. 듬직한 장년 호패 선달이 친척 아저씨라고 나섰고 동료 총관이 주선하는 일이었으니 저쪽에서도 함부로 막 나오지 못했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독하게 구는 것이 저들의 생리였다.
초면인 필제와 두 총관과의 오가는 눈초리가 녹녹치 않았다는 점이 금원에게 각인 됐다.
금원은 다음날 아침 초롱의 손을 잡고 화양동 계곡을 떠나 청주에 가서 해어화 동패 계 조직의 일을 볼 수 있었고 필제는 진천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날 밤 금원은 석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색주집이 돼버린 복주촌 객점들의 가관스런 행태와 저속한 모습들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곳에 와있는 어린 삼패들은 전라도 나주의 기방에서 단체로 팔려왔다고 했다.
‘저 아이들을 어찌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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