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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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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33회

안 동일 지음

13. 법주사 동패 고생원

방죽으로 내려가는 길목의 버드나무에 물이 한참 오르는 초봄이었다.
모처럼 현봉이 동사로 왔다. 부용사 보름 법회에 법문하러 가셨던 큰 스님을 모시고 온 것이다. 그런데 두 노장은 왠 말을 타고 왔다. 제주산 과하마 두필이었다.
“왠 말들입니까?”
“두물머리 장 부자네 말일세, 얼마 전에 구입 했다고 자랑하면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이용하라고 해서 오늘 처음으로 스님모시고 끌고 와봤지.”
馬政(마정)도 문란해 진 게다. 돈이 있다고 아무나 말을 살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전에는 당상관 이상만 그것도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말을 개인 소유로 할 수 있었다.
두 스님이 대강 행장을 푼 뒤 솥단지 앞 평상에 앉아 내달의 낭가계 회합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금원이 결사의 정식 맹원이 되고 난 후 이런 시간이 꽤 많아졌다.

그때 아랫마을 사는 강처사가 급한 걸음으로 절 마당으로 들어섰다. 과천의 역참(驛站)에서 목수 일을 하고 있는 신도였다.
그의 손에는 봉서가 들려 있었다.
“스님, 급한 전갈 같습니다. 법주사 쪽에서 왔습니다.”
충주에서 과천 까지 온 관용파발에 동사로 오는 편지가 들어 있었단다.
급한 일 아니면 관의 파발을 이용하지 않는데 꽤 긴한 일이 틀림없다. 역참은 병조소속 관부였지만 녹봉체계의 붕괴로 사문서 전달이야말로 파발꾼들의 주 수입원이었다.
현봉이 눈짓을 하며 금원에게 편지를 건냈다. 뜯어보니 반갑지 않은 소식이 들어 있었다. 법주사에서 동사로 보내는 급전으로 되어 있지만 보은의 낭가계원들이 보낸 소식이다. 보은현 회남면에 사는 지역분주인 고 생원과 그의 향촌계 동패들이 열흘 전 자경단과 관가에 크게 당해 고 생원이 내달 계회 회합에 오기 힘들게 됐다는 얘기였다.
보은 법주사 일원의 동패들을 이끌고 있는 고영주 생원은 금원도 지난해 모임에서 만나본 적이 있었다. 여러 면에서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인물이었기에 가슴에 더 담아 두었는데 그가 크게 다쳤다는 얘기 아닌가.

소싯적에 초시에 합격한 그는 유학의 소양도 깊었고 불교에 대해서도 식견이 있는 은자였다. 생원은 낭가계의 주요 인사일 뿐 아니라 결사에서는 백결노사 유영수 어른과 함께 전국의 향촌계 동계를 한데 묶는 중요한 작업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가 현청에 끌려가 곤장을 열대나 맞았다는 것이다. 서원의 소작일 때문에 일어난 사단이라고 했다.
“장독이 올라도 한참 올라 있을텐데…”
금원은 자신이 서너 대 맞고도 그 고생을 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여보게 현봉, 누가 보은에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그만큼 그의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현봉이 나섰다.
“어차피 안성에 가야하지 않습니까? 고생원님과 꼭 의논해야 일도 있고, 그리고 가능하면 진천의 이필 청년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긴 하다만, 내달 초 회합도 있고 한데 저쪽 토굴을 비워도 되겠는가?”
“급히 끝내고 돌아 와야지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태을당이 말을 이었다.
“그럼 자성행도 같이 다녀오도록 하지. 청주에 일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또 초롱이라는 그 똘똘한 여자아이가 괴산 화양서원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반가운 소리였다. 청주일도 일 이었지만 금원은 초롱이 일이 더 급했다. 눈이 초롱한 고산서원의 초롱이 말이다. 그때 그 사단 이후 백방으로 알아보니 적당한 속량전을 내면 그 아이를 빼낼 수도 있다고 했기에 금원은 아끼던 애장 장서 몇 질을 책쾌에 넘기기 까지 했었다.
그런데 일이 막 성사되려는 찰나에 쥐수염 일유사가 눈치를 챘는지 변덕을 부려 초롱은 화양서원 복주촌으로 팔려가게 됐던 것이다.
금원은 스승 태을스님이 이럴 때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갔나 생각하곤 했다.
“예 스님, 그렇게 하지요. 준비하겠습니다,” 흥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봉이 무슨 생각이 있는지 금원을 쳐다보더니 물어왔다.
“자네 말 탈줄 아는가?”
“예 떨어지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사실 일패기생이 되려면 말도 탈 줄 알아야 했고 남편을 따라 의주에 가서 마님행세를 할 때 꽤 자주 열심히 탔었다. 그것도 과하마가 아닌 큰 말을…
“그래 그럼 잘됐군. 장처사 한테는 내가 사람 보내 마필 더 쓴다고 전해두지.”
노스님이 정리를 해줬다.

다음날 동이 틀 무렵 두 사람은 노스님의 전송을 받으며 말위에 올라 남행길에 나섰다. 말이름이 종종이와 동동이란다. 과하마는 조선 재래종으로 과일나무 아래도 지날 수 있을 만큼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큰 말보다 여러모로 더 편했다.
어차피 먼 길을 기를 쓰고 전 속력으로 달릴 수 없는 바에야 힘세고 쉽게 지치지 않는 우리 조랑말이 훨씬 좋았다. 몽골 원나라 기병이 세계를 재패할 때 탔던 말이 바로 이 과하마였다.
금원은 동사지 입구를 벗어나자 종종이의 옆구리를 발 뒷굼치로 찼다. 종종이가 냅다 달리기시작했다. 금원은 말군이라 불리우는 승마용 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자가 그냥 치마바람에 말을 타면 경을 쳤다.
동동이가 쫒아 오는 기색이 없어 금원은 저수지 입구에서 기다렸다.
“뭐 그리 달리누? 착한 중 놀리려고 그러지?”
현봉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솜씨로 어떻게 양주에서 여기 까지 오셨수?”
“쉬엄쉬엄 왔지 노장님도 계시고…”
모처럼 사사로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됐다지만 화제는 아무래도 절 살림과 결사에 대한 이야기 가 먼저 나왔다. 현봉은 금원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재, 그런 재미없는 훈장님 말씀 그만 하고 아재 얘기 좀 해주세요.”
오랜만에 아재라고 불렀다. 사실 궁금했다. 얘기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
“뭐 그리 궁금한가? 다 지나간 얘기인데, 재미 하나 없어.”
“어떻게 해서 착한 스님이 되셨는지 아무리 재미없어도 듣고 싶은데요.”
생전의 죽서에게 들은 얘기가 있었다. 사연이 꽤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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