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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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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32회

 안 동일 지음

을해결사

매골승 신돈, 그의 개혁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변정도감 설치 이외에도 유학의 고질적 병폐인 동문 파벌을 일컫는 좌주문생제를 타파했고 토호와 지방관리의 노략질을 막는 사심관 제도를 부활시켰다. 그러면서 개혁적인 신진 사대부들을 포용했고 대거 등용했다.
하지만 토지를 빼앗기고 권세를 빼앗긴 기득권 권문세족은 그에 대해 이를 갈았다.
저들의 집요한 음해 공세에 천도계획 틀어지더니 왕과의 사이가 점점 멀어졌고 급기야 체포, 투옥되기에 이르렀다. 개혁공사 7년만의 일이다.

“귀족들, 저들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이지.”
“끝내는 왕으로부터 사약을 받았다는 대목에서는 분노가 끌어 올랐습니다.”“사약이 아니라 참형에 처해졌지. 목이 댕강 짤렸다는 말일세.”
자신은 스승을 구하리라 철석같이 했던 왕의 약속이 천하의 허언이 된 것이다.
“피하거나 저항할 수는 없었습니까?”
“그 부분이 많은 얘기를 해주고 있다네. 사람들이 말 하는 대로 스님이 축첩을 했고 음행을 일삼는 요승이었다면 순순히 체포되고 그대로 앉아서 죽음을 기다렸겠나?”
“태을 스님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스님은 자신이 있었던 게야, 그러니까 공민왕의 체포령이 떨어졌을 때 미리 알았는데도 피신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 가셨던 아니겠어?”
“공께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후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바가 있었던 게지.”
운학 노사는 신돈이 온갖 추문은 추후에 그의 정적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고려사를 누가 집필했는가? 려말의 유교 사림을 계승했다는 사람들 아닌가? 어찌 그 사람들의 기록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사람들은 자신들 유교의 정당성을 위해 고려의 불교가 패악을 저질렀어야 했고 그 패악의 중심에 못된 중 하나가 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백결선생의 마지막 부연도 가슴에 닿았다.
“우리가 그를 완전무결한 성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에 설사 몇 가지 흠결이 있다 해도 그의 개혁정신과 평등정신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일세.”

정오 무렵 조정의 젊은 관리가 향교에 도착했고 이어 궁중에서 장악원 주부로 일하고 있다는 중년 사내도 왔다.
옥당에 근무한다는 젊은 관리는 백결과 은밀히 오래 얘기를 했고 장악원 주부는 운학과 오래 얘기를 했다. 노사들은 함께 차를 마시면서도 금원에게 정식 인사를 시키지는 않았다. 그저 눈짓과 목례만 주고받고는 적당한 선에서 금원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들려주게 했다. 그래도 묘하게도 동패의 정이 깊이 흘렀다.
암행어사를 지낸 서씨성을 쓰는 관리가 조정 돌아가는 얘기를 하면서 전횡하는 장김에게 그나마 볼멘소리라도 던질 수 있는 이들은 추사를 따르던 이들 밖에 없다는 얘기가 가슴에 남았다.
장악원 주부로 부터는 최고 어른으로 등극한 조대비가 가무를 좋아해 세상을 떠난 효명세자와 함께 궁중무를 안무창작 하기도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저녁 무렵에는 청계의 일원인 정만인 노사가 왔다. 조선최고의 지관으로 꼽히는 그와는 안면이 있었지만 청계 노반회의의 일원이라는 것은 몰랐었다.

“역시 자네였군, 여걸 인재가 있다 해서 달려왔더니…”
천문과 풍수의 대가 정 노사는 금원이 결사 맹원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면서 반가와 했다.
“아직 두 분 노사의 시험에 들지 못했습니다.”
“아닐세, 자네는 이미 통 일세. 자네 같은 이를 놔두고 누구를 동패로 한단 말인가.”
정노사는 말대로 더 이상의 시험은 없었고 다른 두 노사도 금원의 가입을 기정사실화 했는지 저녁 다회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을해결사에는 까다로운 입회식이 없단다. 이심전심으로 성원이 된 것을 자각하고 남들도 인정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청계의 해자(亥字) 회의가 다회를 겸해 열렸다.
전인회주의 주요 지침은 중요도에 따라 을, 해, 결, 사 4단계로 나뉜다고 했다. 해 자는 두 번째 등급의 주요 사안인 셈이다.

청계의 원로들 세 사람과 금원이 참석했다. 노사들은 금원에게 서기의 소임을 맡겼다. 현재 전인을 포함 노사는 모두 5인이었는데 조삿갓으로 알려진 조병연 노선비가 참석하지 못했다고 했다.
토론이 있는 회의라기 보다는 전인의 지침을 확인하고 업무를 분장하는 그런 자리였다.
“보셨겠지만 전인께서 해자 등급으로 내리신 지침은 외연의 총력 확장과 자체 무력의 확보 강화요. 조만간 일을 도모 하실 생각이신 모양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오.”
“예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더욱 분발 하겠습니다.”원로들 사이에도 각자 맡은 분야가 있고 서열이 있는 듯 했다.
좌상인 백결노사와 그의 주변은 향교며 향촌계를 관장하고 있었고 백운학 노사는 전국의 상두계와 창우패들을 이끌고 있어 덕배 아재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 자리에 없는 조병연 노사는 전국의 뜻있는 유자들과 보상 부상들을 묶어내려 애쓰고 있다 했다.
듣자니 노사들은 각 산하조직의 무장 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듯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자금, 돈 이었다. 결사의 자금은 장사하는 중인들, 각지의 상단에서 은밀히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상단과의 연계와 연락을 현봉이 맡고 있단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노사들은 금원에게 용화종을 중심으로 절 집 식구들을 연결하는 명등의 일을 계속 하면서 추사와의 인연을 살려 조정에 출사하고 있는 속 깊은 양반네들이며 재력 있는 역관들과 긴밀하게 지내도록 하라고 했다. 금원에게 내리는 회주의 심모원려의 전이기도 했다.
“이제 자네의 매일 매일은 자네가 두근거리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일세”
운학노사의 멋진 당부의 말이었다.
어디선가 청성자진한잎 대금소리가 향교 담장을 넘어 들여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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