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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30회

 안 동일 지음

을해결사

“어서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 난 백결일세, 기울 결이 아니라 굳을 결 이네. 자네가 그동안 보내준 서찰이며 전서는 잘 받아 보았다네. 듣던 대로 눈과 이마에서 총기가 뚝뚝 떨어집니다. 그려 운학.”
“백운학 일세. 수리가 매의 알을 품은 형국의 상입니다, 그려.”
두 노인은 자신이 느낀 금원의 상을 서로에게 얘기하는 형식으로 금원에게 들려줬다. 금원은 봉서를 전했다.
“전인께서 드디어 움직이려 하시는군”
봉투에 적힌 글씨를 보면서 백결이 입을 열었다.
운학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태을당 께서 우리 乙亥結社(을해결사)의 傳人會主 (전인회주)라는 사실을 처음 듣겠지?”서한을 읽어본 뒤 백결이 금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을해결사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예 그렇습니다. 실은 결사에 대해서도 짐작만 하고 있었지 처음 듣습니다.”“그랬군, 전인께서 자네에게 결사에 대해 일러 주고 자네의 생각을 들어 보라고 쓰셨다네.”
“무슨 생각을?”“자네가 스스로 결정하는데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신 것이지. 대개들 그렇게 한다네.”금원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인께서 발탁하신 이들은 우리가 만나 마지막으로 생각을 듣고, 우리가 천거한 이들은 전인 태을당께서 점검하고 결정을 내리는 그런 방식이라네. 무엇보다 본인의 자발적 의지가 중요하니까.”충분히 이해 할 만 했다. 가끔 태을당이 은밀하게 꽤 심도 있게 사람을 만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었다.
“우리는 태을당을 회주로 받드는 을해결사 청계의 계원들일세, 우리 결사는 려말 개혁승 신돈 편조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세상을 바로 잡자는 원력으로 결성된 연원 있는 조직 일세.”“예, 말씀 드린대로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전인회주를 전인 또는 회주로 줄여 쓰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겠지 그동안 전인의 옆에서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가, 또 자네는 이미 결사의 일을 많이 도왔지.”“과찬이십니다.”

“이번에 전인께서 결사의 큰일을 도모 하시면서 자네를 결사의 정식 맹원으로 맞아 들여 중요한 일을 맡기시려 하시네.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큰 영광으로 알고 신명을 다하겠습니다.”“역시 그렇게 나오는군, 이 길이 위험하고 고생스러운 길인데도 굴하지 않고 초심을 다 할 수 있겠는가?”
“예 틀림없이 그리 하겠습니다..,”“자네 뜻은 이제 알았네, 그러면 며칠간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몇 가지 의논을 하도록 하세 그 의논이 끝나고 나면 그때 매조지 하도록 하세나. 내일 몇 사람 만날 이도 있고.” 의논이라고 표현 했지만 일종의 시험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 함께 들어가세나.”
금원은 노인들을 따라 향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 사람들이 일행을 친절히 맞았다. 이곳 장의가 백결과 동문수학을 한 절친한 사이라고 했다. 향교에서는 금원에게도 저녁에 묵을 찬모들이 쓰는 방 하나를 내줬다.

결사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을해년이었던 조선 태조 4년 (1395년) 경기도 광주의 彌勒棟寺(미륵동사)에서 제폭구민 만민평등을 내세운 결사가 결성됐다. 초대 회주는 미륵동자로 불리웠던 신돈의 양자이자 제자인 신해인. 신돈의 개혁정신과 평등 정신을 기억하는 이들의 결사였다. 을해년에 결성 됐기에 을해결사라 불렀다.
고려의 신진 사림과 변방의 무력이 결합해 조선을 세운 직후였다. 회주를 위시해 맹원들은 새 왕조에 기대를 가져 보면서 주시했으나 저들 역시 자신들 사대부만의 나라를 꾀하고 있었기에 결사는 기대를 버렸다. 힘을 비축해 신돈의 원력인 민초들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억불과 함께 중앙집권 정책을 강력하게 추구하던 신 정권에 의해 이내 체탐되어 무자비한 탄압을 받아야 했다. 그 때 실패의 흔적이 바로 동사, 미륵동사의 멸실 이었다. 부상을 입고 도피하던 회주는 후일을 기약하며 전인(傳人)을 세웠다. 그 뒤 을해결사는 비밀조직으로 전승되어 왔다. 桐寺址(동사지)는 오랜 성지 였는데 태을노사 대에 이르러 결사가 다시 그곳에 둥지를 틀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것이다.
노사들은 결사의 수뇌부를 노반회의 혹은 청계라고 부른다고 확인해줬다.
“특히 우리 청계는 그림자 조직일세.”
“그림자라면 무슨 의미인지요?”“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세상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과 조직을 돕는다는 그런 얘기일세.” 금원은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산하 조직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림이 그려졌다.
을해결사 자체가 존재를 아는 맹원이 한정된 상층부 조직이었다. 신돈의 평등정신, 신해인의 미륵사상을 바탕으로 결성됐지만 불교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 쪽의 향교, 농촌의 향촌계 전국의 상두계, 이런 계와 조직들이 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용화종 처럼 노출된 조직이 서너 개 쯤 되고 그 외 비밀스런 소 조직이 여남은 되었다. 산하조직의 일반 신도나 계원들은 상층부 결사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세상을 보는 눈은 결사의 맹원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근본은 사해평등과 이었다. 두 노사는 이 나라 조선이 상하질서를 강조하는 유학을 숭상하고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는 한 인정할 수 없는 타도의 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격분의 정도가 사뭇 달랐다.
운학은 조선의 역사를 훈구와 사림의 대립, 그리고 사색당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대부, 양반들의 양민에 대한 수탈의 역사로 보고 있었다. 운학은 년전 추사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이 유학을 숭상하면서 정치과잉의 나라가 됐다고 진단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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