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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28회

안 동일 지음

하늘 또한 괴롭다고 하네 (仰面問天天亦苦)

초당에서 마지막 날 추사와 금원, 필 세 사람은 초당 뒤 청계산 초입에 있는 추사의 부친 김노경 대감의 무덤을 찾았다.
묘에는 비석조차 없었다. 아직 신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감은 효명세자의 급서 직후 안김의 집요한 농간으로 고금도에 유배를 갔어야 했고 사후에는 추사가 제주로 유배 가야했던 윤상도 옥사 사건 때문에 부관참시를 당할 뻔 했었다. 추사는 그때 자신의 목숨보다 부친의 부관참시를 더 걱정했단다. 다행히 벗 조인영 대감의 기지어린 구명으로 제주 위리안치로 형이 감해졌고 노경공의 부관참시도 사후 삭탈관직으로 마무리 됐었다.
금원의 남편 시랑 김덕희는 생전에 재당숙인 김노경 대감에 대해 몇 번 말하곤 했었다. 사서 고생을 하는 분이라고. 충분히 편히 살아도 되는 사람이 올곧은 성정 때문에, 위민의 정신 때문에 고초를 치르고 있다고 혀를 차곤 했지만 내심의 존경은 컸다.
간단한 재배를 한 뒤 추사는 무덤의 잡초를 한 두개 뽑았고 세 사람이 동리를 내려다보며 섰다.
“중환이 이 자리가 학이 알을 품는 자리라고 하던데…” 추사가 무심한 투로 한마디 했다. 택리지의 이중환선생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소동 하나가 징을 메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소동은 추사를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대감마님 나오셨습니까?”

‘그래 순욱이구나, 절에 올라가느냐?”
“예”
위쪽 절에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추사가 소동에게 징을 잠시만 한번 보자고 했다. 소동이 징과 채를 건네자 익숙한 솜씨로 징 줄을 잡아 손을 틀어 꿰고는 다른 한손으로는 채를 잡았다. 검지를 늘여 붙이는 테가 그냥 잡는 테가 아니다. 징을 허리 높이로 들었다. 한바탕 칠 기세였다.
“징도 칠 줄 이십니까?”“예전에 격쟁을 하느라 연습 좀 했었지.”
지금 이곳에 묻혀 있는 부친이 고금도에 유배돼 있을 때 추사는 임금의 행차 앞에서 징을 쳐대는 격쟁을 감행 했었다. 사대부 격쟁 최초다.
‘채앵’
징소리가 울려 퍼졌다.
‘챙 채앵’
이번에는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기운이 소동까지 네 사람을 숙연하게 했다.
추사가 손을 한번 더 세게 움직였다.
‘채에에앵’
그 소리는 학이 알을 품는 자리에서 알이 깨지는 소리였다.
추사는 목청을 가다듬고 시를 읆었다.

安排墷意盡名花(안배화의진명화) : 잘 꽂아 놓자구나, 모두 이름 난 꽃인데
五百年瓷秘色誇(오백년자비색과) : 오백 년 묵은 도자기도 신비한 빛깔을 자랑하네
香澤不敎容易改(향택불교용이개) : 향기와 윤택함이 쉽사리 바뀌지 않으니
世間風雨拒相加(세간풍우거상가) : 세간의 비바람이 어찌 서로 해치리오.

금원의 가슴이 뜨거워 졌다.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다음날, 흰 굵은 삼베옷을 입은 추사의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은 과지 초당을 나섰다.
구룡재 언덕을 넘으면서 금원의 귀에는 어제 오후의 그 징소리가 다시 들렸다.
자고 있는 감각 기관과 세포를 다시 깨우는 징소리였다.

12. 을해결사

 

금원과 이필에게 금과옥조를 들려주고 징소리를 울렸던 추사는 꼭 한 달 뒤인 병진년 시월 십일 저 세상으로 떠났다. 봉은사 판전(版殿)의 큰 현판을 진산마 대필을 들어 일필휘지로 쓰고 과천 초당으로 돌아온 그 다음날, 학이 하늘로 오르듯 깨끗한 모습으로 승천 했다. 대필의 녹모가 꼬리 날개였던 양.
그날, 철종 7년의 가을 하늘은 청명했다.
추사는 초당 안채의 마루에 앉아 오후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봄 햇볕은 며느리 쏘이게 하고 가을 햇볕은 막내 딸 쏘이게 하라고 했듯이 오곡을 마지막으로 살찌우는 유익한 햇볕이었다.
문득 추사는 나를 좋아하는 내가 진정한 나인가, 나를 싫어하는 내가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진정한 나인가 생각났다.
왜 좋은 일 싫은 일, 잘한 일 못한 일이 다 떠오를까.
다 분별심이다. 분별이 없는 경지. 차이가 없는 경지.
평화로운 고향 가야산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만 더 올라 가면 천축 고선생 댁으로 가는 길이 나올텐데…
달준이 다가와 물었다.
“필요한 것 없으십니까? 마님.”
“아니다 아주 평안하다.”
입술만 겨우 움직였다. 노인이 허리를 펴고 손을 앞쪽으로 모으며 곧게 앉았다. 하얀 손과 목의 파란 심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그리고는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노인의 자세는 목과 등이 약간 구부러져 내렸을 뿐 흐트러짐이 없었다.
달준이 다가가 다시 물었다.
“마님 여여 하십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풀썩’
달준이 어깨 쪽 팔뚝에 손을 얹었을 때 노인은 스르르 무너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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