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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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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25회

안 동일 지음
응무소주 이생기심

용화종을 포함하는 대승불교의 핵심은 색즉시공을 근본으로 삼아 이 세상의 집착과 욕심이 허망한 허상임을 깨치면서 동시에 집착 없이 세상을 위하여 열심히 사는 것이기에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 곧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구현이었다. 스승이 강조하는 가르침도 그것이었다. 집착과 서원은 다른 것 이라고 했다.
그러자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색즉시공이 백척간두였다면 그곳에서의 진일보가 금원에게는 이생기심(而生其心) 이었다. 색즉시공이 관점이라면 이생기심은 행동을 담고 있었다. 전자가 이(理)라면 후자는 기(氣)였다. 금강경의 가르침 응무소주(應無所住)에서 나온 이생기심이었다.
응무소주는 바탕이었고 근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금강경, 금강경 하는 모양 이었다.

성호사설을 필두로 북학자들의 저서는 거의 다 망라 돼 있었다. 풍석 대감으로부터 물려받은 책들이지 싶었다. 연암의 열하일기는 한번 잡으면 손을 놓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정조임금은 문체가 경박하다고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데 시도 때도 없이 피워대던 담배연기로 신하들이며 궁인들을 괴롭혔던 골초 임금의 완고함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편조행장록도 다시 한 번 정독했다.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해 평등사상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실학, 북학파 들의 평등사상을 찾아 봤지만 의외로 평등을 언급한 이가 없었다. 반계 유형원 정도만이 노비제도의 부당함을 설파하고 있었다. 추사는 평등문제며 노비제도에 대해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추사의 저술에는 그런 얘기는 없었다.
꿀 같은 휴식의 나날이 보름 넘어 지속 됐다. 이래도 되나 싶어 좀이 쑤셨다. 모처럼 텃밭에서 가지를 따고 있는데 스승이 금원을 찾는단다.

금원이 방에 들어서자 스님은 옆에 놓여 있던 책 보퉁이를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서 씽긋 웃는다. 금원은 책 심부름을 직감했다.
“아무래도 추사 대감에게 한번은 다녀와야겠지?”

“스님, 제 속에 들어왔나 나가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날따라 추사 대감 생각이 부쩍 났었다.
“원춘이 먼저 연락을 해 왔어. 다회를 열겠으니 자네가 움직일 만 하다면 보내 달라는군.”“제가 무슨 차를 압니까?”“긴히 할 말이 있는게지, 오늘은 벌써 해 떨어질 때 되었으니 내일 일찍 인주와 함께 출발하도록 하게.”

“네, 고맙습니다. 스님.”
“고맙긴 내가 고마워해야지. 수고스럽지만 이걸 가져다 드리게.” 스님은 책이 든 보퉁이를 들어 금원에게 건넸다. 책상 위로 손을 뻗어 받아 들려는데 꽤 묵직했다.
보자기 묶은 사이로 林園(임원)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바로 이 책이군요 …” 스님이 틈 만나면 언문으로 번역하던 그 책이었다.
“그렇다네, 원춘 대감에게 가져다 주면 알고 계실 것이네, 실을 붙혀 표시해 둔 부분이 아무리 궁량을 해도 내 실력으로는 역을 할 수 없었던 부분이라고 말씀드리게나.”

11. 하늘 또한 괴롭다고 하네 (仰面問天天亦苦)

금원이 주암리 과지초당에 당도해보니 마침 추사가 마당에서 두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사람은 제자 심재 오경석 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이필 이었다. 이날은 수염을 말끔하게 깎고 있어 알아보기 어렵기는 했다.
“어서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  추사가 반갑게 금원을 맞았고 경석과 필도 목례를 해왔다. 추사는 조금 마른 듯 했지만 얼굴은 전에 없이 온화하고 평온해 보였다.
금원은 모두에게 미소를 띠며 목례를 했다. 각별히 필에게는 오래 머리를 숙였다. 지난번 일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그때는 재대로 아는 체도 못했었다.
달준이와 여주네, 순옥이가 우루루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어서 오세유 아씨”
금원은 여자들의 손을 한 번씩 잡아줬다. 여자들은 금원을 보고 모두 얼마나 고생했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추사와 금원 두 사람이 큰 방으로 들어 마주 앉았다. 언제나 처럼 금원이 큰절을 했고 추사가 반배로 답했다. 이런저런 안부가 오간 뒤 금원이 서탁 위에 태을당이 준 봉서와 서책을 올려 놓았다.
“임원경제지 언문책을 가져왔군.”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대단한 책 같습니다,”“대단하지. 어떻게 조선 땅에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준재가 나왔는지 계속 놀랄 따름이라네.”
“그러니 제가 쓴 시집이 더 부끄러워 졌습니다. 다 회수해서 없애고 싶은 마음입니다,”
“허허 굳이 그럴 것 까지는 없네, 그게 자네야 말로 계속 발전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네, 어느 선배가 그러더군 과거에 자신이 쓴 글을 보고 새삼 감탄하는 이야 말로 퇴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사가 금원의 얼굴을 빤히 보며 미소를 띠었다.
”그래 이번에는 며칠이나 초당에 머무시겠는가?”
“며칠 여유가 있습니다”
“그거 잘됐군.”
칠성이가 찻물을 들고 들어왔다. 쩔쩔 끓는 물을 솟 단지 채 들고 들어오느라 여간 조심스러워 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방에서 풍로나 화로를 이용해 물을 끓이는데 추사의 다도는 그답게 실용적이다. 어차피 물은 적당히 식혀야 했다.
“오늘은 금원이 자네가 지난번에 가져온 용봉 승설을 먹도록 하세나.”
추사가 다구를 펴면서 말했다.
“밖에 심재와 이선달 다들 들어오라고 하지.”
추사가 칠성더러 일렀다.
“아직 그 차를 가지고 계십니까?”
금원이 반가운 어투로 물었다.
“그럼 오늘을 위해 아껴두고 있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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