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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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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23회

안 동일 지음

지하실서 만난 미륵

“김금원 자네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목소리에 위엄이 있었다.
“누구시지요 스님?”“날세 편조일세.”
“아 편조 스님이시군요.“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면서 손 모음 합장을 했다.

스님도 맞받아 같은 합장을 하는데 스님의 손에서 금빛 광채가 눈부시게 퍼져 나왔다.
그런데 스님 옆에 왠 여인과 동자가 있었다. 귀티가 나는 부인과 잘생긴 소년이었다. 부인과 동자가 처음에는 웃었는데 나중에는 금원을 보고 화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부인이 미륵보살이고 소년이 선재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박옷의 편조스님이 그쪽 그만 보고 자신을 보라면서 도대체 어떻게 하려느냐고 닦달을 하는 것 아니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막 버둥거리는데 저쪽에서 조선 선비 한사람이 걸어왔다. 흰 수염을 날라면서 이쪽으로 오고있는 이는 추사 김정희 대감이었다. ‘어르신’하고 부르려는데 이번에도 입이 떨어지지 읺았다.
그리고는 꿈에서 깼다.
초롱이가 노란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결박은 풀어져 있었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초롱의 눈이 바로 보살의 눈 이었다.
“고맙구나 초롱아”
밤낮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기에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초롱이가 몇 번 물과 먹을 것을 가져왔고 결박을 풀고는 정성으로 몸을 주물러주고 바깥에서 소리가 들리면 얼른 나가곤 했다. 족히 사흘은 지난 것 같았다. 흙 계단 위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세면서 상념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미륵진언은 참으로 큰 의지가 됐다.
원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참결이 다시 나왔다.
‘메테야 메테야 메테에라 보디삿따 사바하‘

그때였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위쪽 헛간 한 구석이 허물어져 내렸다. 처음에는 작은 구멍이 었는데 몇 번 더 가격하자 구멍이 커졌다.
흙과 짚으로 돼 있는 벽이었기에 밖에서 몽치로 가격하자 쉽게 허물어 진 것이다.
뽀얀 흙먼지와 함께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밖은 대낮이었던 모양이다. 복면을 하고 있었지만 체구며 느낌이 며칠 전 구룡 언덕에서 만난 이필 같았다.
“고생하셨소, 얼른 나갑시다.”
사내가 초롱이 대충 눈가림으로 묶어둔 결박을 풀어주면서 등을 돌려 냉큼 업을 태세였기에 놀라 등을 밀어냈다.
“허허 이 판국에도 내외를 하슈?”
몸이 천근만근 이었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사내의 부축을 받아 구멍을 빠져나와 언덕 아래 까지 가는데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누가 쫒아올 것 같아 두근두근 거렸지만 서원 본채 쪽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간신히 나루까지 갔더니 뜻 밖에도 태을 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했구먼.”
스님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금원의 손을 꼭 쥐어 주었다. 며칠씩 씻지 못한 상 거지꼴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처음 잡아보는 스승의 손이었다. 스승의 손은 매일 텃밭을 가꾸는데도 의외로 거칠지 않았다.
다시 보니 대가족이 금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사의 동자승 인주도 있었고 과지초당의 달준도 있었다. 모르는 청장년도 두 명쯤 있었다.
금원을 구한 복면은 초립털보 이필이 맞았다. 그는 나루에 다다르자 복면을 벗었다. 이번에도 금원이 얼른 얼굴을 돌렸다. 워낙 자신의 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가운 초롱이도 있었다.
초롱은 금원의 바랑을 가져다 주려고 달려 왔단다. 너무도 의외였고 고마웠지만 경황이 없어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도 못했다.
이번에는 금원이 초롱의 손을 꼭 쥐어 주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작은 초롱의 손은 갈라지고 더 있어 안쓰러웠다. 아이들은 벌써 친해졌는지 초롱과 인주의 대하는 태가 남다르다.

이필과 초당의 달준 그리고 초롱이는 남았고 동사 일행은 배에 올랐다.
광나루에서 내려 스님과 함께 달구지도 얻어 타고 절뚝이며 걷기도 하면서 동사로 돌아오면서 대강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추사 대감이며 여러 사람이 애를 썼기에 금원이 쉬 나올 수 있었단다.
이필 그 털보 청년의 역할이 제일 컸다. 금원이 고산에 잡혀 갔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이 바로 이 필이었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금원이 잡혀가던 순간 우연히도 송파나루에 이필이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각 이후 그가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일을 풀어 갔단다. 최후의 순간에 곳간 벽을 허문 것도 그였다.

추사가 적극 나섰고 김도희 대감, 변광운 대감 등 여기저기서 거들고 손을 썼단다. 결정적으로는 고산 유사들과 자경단이 일유사 김유봉을 따돌리고 슬쩍 눈 감아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했다. 당초 금원의 추측대로 처음에는 옛 시댁 김문이 금원의 행동에 경계를 보내고 고산과 사충의 자경단은 그들대로 부용사와 동사의 동정을 파악하려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쥐수염 김유봉이 자신 형제의 구원을 폭발시켜 일을 키웠던 것이다. 그가 바로 지난 시절 암행어사 김정희에 의해 봉고파직 당한 비인 현감 김유원의 막내 동생이었다. 저들 형제는 평생을 추사와 그 주변을 모함하고 물고 내게 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독종들이었다. 세상 떠난 남편 시랑의 좌천이며 울화병 심통과도 무관치 않은 작자들 이었다.
태을 스님은 무슨 뜻에서인지 이렇게 말했다.
“하늘과 부처님이 다 자네를 필요로 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한 사람이라도 간절히 바라면 그 일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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