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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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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22회

안 동일 지음

고산서원의 초롱이

“강상의 도를 어긴 죄인 김금원 나오시오”
자경단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헛간 문이 열렸다.
마당에는 현청에서 금원을 인수하러온 포졸 두명을 포함해 이곳 자경단원들이며 남녀 하인들 이 웅성대고 있었다.
쥐수염의 일유사가 그 중앙에 서 있었다.
금원은 자경단원 두 사람에 의해 가운데로 끌려 나가 끓어 앉혀졌다. 그녀는 다시 묶여 있었다.
“시작해라”
쥐수염 일유사가 옆의 자경단원에게 말했고 그가 금원의 서독을 읽었다.
발음도 좋지 않고 문장이 하도 괴상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금원은 자신이 꿇려진 자리 옆에 놓여있는 얇은 한지 판자위에 씌어 있는 언문을 보고 깜짝 놀라야 했다. 목에 걸 끈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목에 걸 조리였다.

‘이녀자난 남정네랄 조아하는색녀로 본디기생인데 탈춤을추는풍물남정내달과오얼려엽색행각을벌이고시때업시 음담패설을주고받는악종인데 이녀자대문에 망가진집에 전국방방곡에 수십군데나된다.하여강상의도리를 세워조리돌림하야일벌백게한다’
일유사가 언문으로 조리글을 썼다더니 이것 이었다. 놈들은 이것을 금원의 목에 걸고 잔등에는 북을 메게 하고 현청까지 끌고 가겠다는 애기였다.
금원은 온몸에 피가 솟구치는데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완강한 힘으로 옆의 남자 두 사람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내 혀를 물고 죽는 한이 있어도 이 해괴한 글을 목에 걸고는 한 발자욱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마음대로 해보시오.” 금원은 부르르 떨면서 고함치듯 부르짖었다. 손이 자유롭지 못한지라 발로 판자를 걷어찼지만 헛발질이었다.
“어허 저년이” 쥐수염 일유사가 맞 고함을 쳤다.
“엄연히 국법이 있는데 당신들이 뭐라고 이런단 말이오?”
“이 일이야 말로 국법을 집행하는 일이다 이년아.”
“말끝마다 사람한테 이년 저년 하지 마시오. 꼭 쥐새끼같이 생겨가지고…”
“뭐라?”일유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듯 했다.
“네년이 어디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보자. 얘들아 저년을 멍석에 말아라.”

남자 하인들이 광에서 멍석을 꺼내 왔고 자경단 흑의가 금원을 그곳으로 끌고 갔다.
멍석이 펼쳐졌고 금원이 그 위에 놓여졌다.
매캐한 흑내음과 비린내가 밀려왔다. 얼굴에 닿는 멍석이 너무 껄끄럽다고 생각되는 순간 무슨 고함소리가 들렸고 등짝에서 둔통이 몰려 왔다. 둔통은 전신으로 퍼지면서 엄청난 통증으로 증폭된다. 한 번 더 엉덩이 쪽에서 그리고 한 번 더 옆구리 쪽에서 시작된 통증이 밀려왔을 때 눈앞에 불이 번쩍 하면서 금원은 정신을 잃었다.

9. 지하실서 만난 미륵

깨어보나 어제의 그 헛간이었다. 흙바닥이 아닌 널빤지위에 누워 있었고 초롱이가 옆에 있었다.
“깨어 나셨어요?”온몸이 천근만근이기는 했어도 특별히 부러지거나 찢어진 곳은 없는 듯 했다.
“천만다행이셨어요, 일유사 어른 보다 훨씬 높은 대감님이 마침 오셔서 그 소동이 금방 끝날 수 있었지요. 그렇지 않았더라면…”초롱의 얘기를 들어 보니 더 맞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금원이 정신을 잃었을 때 마침 부원장을 맡고 있는 호조참판이 마당에 들어서서 멍석말이를 중단 시켰다는 것이다. 호조참판 이언주라면 시아주버니인 김도희를 잘 따르는 절친한 동문후학 이었다. 김문서는 경고만 하라했지 그처럼 여자에게 멍석말이를 안기라고 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런데 초롱은 장총관이 참판에게 급히 부탁을 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아씨가 유명한 시인이라면서요? 저는 시가 뭔지는 모르지만 정말 대단하세요. 그리고 좌의정 이라고 높은 정승 벼슬에 있는 친척이 계시다고 하던데요?” 김도희 대감이 정승자리에 있는 것은 맞았다. 부끄럽게도 안동 김가들의 들러리를 서고 있는 셈이다. 시아주버니 그이는 금원이 쓴 제망부가를 추사 대감에게 보내 자랑을 했던 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고 금원의 딱한 사정에는 전혀 개입 않았던 그이였다. 오히려 금원의 요즘 행동을 달갑지 않게 여겨 제재를 하려 했던 이 아닌가.
그때 문이 열리더니 장 총관이 대원 한명과 함께 들어왔다.
“괜찮소 그대로 앉아 있으시오.”금원이 꼭 일어서려기 보다는 자세를 고쳤더니 총관이 그렇게 말했다.
“꽤 신경 써주셨다는 말, 초롱이 한테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어제 끝냈더라면 이런 사단은 없었을 텐데. 어쨌든 안됐소.”

총관은 간략하지만 저간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 안동 김씨인 신임 일유사가 추사 일문과 구원이 깊은 이라고 했다. 금원을 추포하라고 처음 말을 낸 이도 그였단다. 결론은 금원이 현청에 가는 것을 일단 보류는 시켰지만 풀어주는 것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 일유사가 집안 믿고 위세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낭패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천하에 수치스런 조리돌림은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약한 일이 생겼다. 총관이 나간 뒤 얼마 안 있어 사내 둘이 들어오더니 금원을 헛간에서도 흙 계단을 더 내려가는 지하로 옮겨 가 기둥에 묶어 놓은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가둬놓으려고 이러는가 싶다.

사람의 몸이 묘했다. 이 와중에도 잠이 쏟아진다.
누가 어깨를 흔든 것 같아 눈을 떴다.
헛간에 왠 남자스님이 와 있었다. 그것도 금박 장식을 한 화려한 승복을 입은 스님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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