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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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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21회

 안 동일 지음

고산서원의 초롱이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온몸이 뻣뻣했다. 허리를 펴고 팔을 돌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달은 구름에 가려 있었지만 별들이 초롱초롱 박혀 있었다.
“초롱이라고 했니? 누가 지어준 이름이지 너무 예쁘구나.”
“원래 이름은 귀분인데요, 총관님이 새로 지어 주셨어요.”그에게 그런 면이 있구나 싶다.
측간은 마당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있어 대충 만들어 놓은 돌 계단 서너개를 내려가야 했다.
“조심하세요.”초롱이가 작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금원은 깜짝 놀랐다. 작은 손이 너무 거칠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잠도 못자고…”
초롱은 자신도 측간 가고 싶었는데 잘됐다면서 아씨야 말로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고생한다고 오히려 금원을 위로 했다.

다시 헛간으로 돌아가니 탁자 위에 삶은 옥수수와 감자가 작은 소쿠리 째 놓여 있었다.
“시장할 텐데 요기나 하시오.”
사실 하루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염치 불구하고 감자를 하나 들어 베어 물었다.
초롱이가 물을 떠왔다. 어린 것의 마음씀이 살갑다.
물을 마시라며 사발을 밀어 주면서 총관이 말했다.
“내일 아침 나가게 되면 우리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임만성에게 단단히 전하시오. 쓸데없는 평지풍파 만들지 말라고, 특히 요승 신돈과 관련된 일은 우리 고산이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임만성의 동향에 대해 우리에게 일러주기를 바라는데 어찌 생각해 보겠소?”
아침이면 내보내 주겠다는 말은 반가 왔지만 그 다음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더러 첩자 노릇을 하라는 말이오, 천부당 만부당 입니다.”
“당신과 추사 김정희 대감, 그리고 애꿎은 신도들을 보호 하려고 하는 것임을 왜 모르시오? 만성이 신돈을 신봉하는 한 불온한 세력이 끼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오.”
“지나는 소가 웃겠습니다. 고산이나 사충서원에서 추사대감을 보호하려 한다니…”
총관은 그쯤에서 끝내겠다는 결심을 했는지 탁자를 세게 한번 집으며 일어섰다.
“아무튼 탈패들과 어울리고 불온한 중과 어울리는 일 자중하시오. 자중, 세상 그리 만만하지 않소이다.”
금원은 대꾸하지 않았다.
“오늘은 어차피 늦었고 내일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가서 눈 좀 붙이도록 하시오. 이곳이 객점 이기에 더 깨끗한 방이야 있기는 하지만 그쪽과 우리가 아직 그런 사이가 못 된다는 것이야 잘 알테고..”
“언감 바라지도 않습니다.”
금원도 한 마디 했다.

객점 여점원들이 쓰는 방은 헛간 옆쪽 객사의 끝 부엌 옆에 있었다.
금원은 초롱이 내주는 구석 자리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 하면서 잠깐 눈을 부칠 수 있었다.
이내 닭 우는 소리가 들렸고 여자들은 모두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금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날이 밝았으니 그냥 내 빼듯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시하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산 종이며 책자가 들어있는 바랑이 걸렸다. 어디 있는지 몰랐다. 배로 납치한 흑의사내들이 가지고 있을 게다. 그리고 이상하게 총관이란 사내 무섭지 않았다. 그자와 마지막 담판을 짓고 가야 뒤탈이 없을 것 같았다.
멋쩍게 객사건물과 헛간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엊저녁의 흑의 사내 둘이 선비 한사람과 함께
금원 앞에 섰다.
“이 여자입니다. 일유사님”
일유사라는 초로의 사내가 금원의 위 아래를 쳐다본다.
그 눈초리가 어쩐지 곱지 않다,
“역시 생긴 건 반반한 년이군.” 말뽄새는 더 나빴다.
금원은 인사를 하려다 말고 그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하고 있어, 저 년을 광에 다시 가두지 않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금원의 팔을 잡아 끼었다.
“왜들 이러시오, 엊저녁에 얘기 끝난 것 아니오? 총관은 어디 있소?”
뿌리치려 했지만 사내들의 힘은 완강했다.
“총관 보다 높은 어르신이오. 조용해요.” 한 사내가 나직히 말했다.
저들이 헛간문을 열고 금원을 밀어 넣고는 다시 문을 닫았기에 큰 헛간에 혼자 갇히게 되었지만 다행히 결박을 하지는 않았다.
금원은 어제의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었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신 새벽에 부리나케 빠져 나갈걸 공연히 꾸물댔다는 자책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제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심정으로 마음을 다스리려 애를 썼다. 이럴 때는 역시 주문이 효험이 있었다.
‘메테야 메태야 메테레야 보디삿따 사바하’

하늘이 노래 진다. 청천벽력도 이런 벽력이 없다. 도대체 일유사라는 쥐 같은 작자가 왜 이리 독하게 나오는지 모를 일 이었다.
조금 전 서독이 발행돼 여주 현청 옥으로 가게 된다는 얘기는 순돌이라는 자경단 청년이 초롱이와 함께 와서 얘기를 해줘 알고 있었지만 현청으로 가는 길에 조리돌림 까지 시키겠다는 얘기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순돌은 장 총관이 나서 어떻게 해보려 했지만 실무를 맡고 있는 상관인 일유사가 워낙 완강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었다. 한나절 만에 급변된 상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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