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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14회

안 동일 지음

이필의 고변

“삼호당 금원이 상두계원이라는 얘기입니까?”
“어째 어울리지 않는데요. 자칫 위험 할 수도 있고…”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 입니까?”
다시 밖이 소란스럽더니 샌님 한사람이 서실로 들어섰다.
“어이구, 스승님 괜찮으신 겁니까, 하응이 왔습니다.”
5척 단구 작은 키에 후줄군한 도포와 낡은 갓을 쓰고 있었지만 눈매는 형형했다.
사내가 들어서자 추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외씨 께서도 이리 오십니까? 민망하게.” 바로 흥선군 이하응이다.
추사는 흥선군을 외씨라고 불렀고 공대를 했다. 외씨는 외가 쪽 친척을 가깝게 부르는 말이다. 실제로 추사의 백모이자 양모인 홍씨부인과 흥선군의 모친 민씨부인이 절친한 이종사촌간 이었다.
추사의 흥선군 사랑, 흥선군의 스승 존경은 각별했다. 북청에 유배가 있는 동안에도 1년 여 남짓의 기간에 서로 8차례나 편지를 보내 건강과 주위 평판을 염려했고 스승의 안위를 간구했다. 그리고 스승은 제자의 난(蘭)을 지도 격려 했었다. 북청으로 떠날 때 제일 멀리까지 배웅한 이가 흥선군 이었고 해배를 제일 먼저 알려준 이도 흥선군 이었다.

‘외씨는 귀한 몸이시니까 부디 은인자중 하셔야합니다’
추사가 주문처럼 흥선군에게 되 뇌이곤 했던 말이었다.
이쯤 되면 영민한 제자들은 추사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고 그들 역시 남들이 뭐라 하건 평판이 어떻건 흥선군을 예우했다. 또 흥선군도 추사 동학들에게는 속내를 털어 놓는 편이었다.
상석까지 양보하려는 추사의 손을 흥선군이 잡아끌어 앉혔고 모두들 자리에 다시 앉았다.
책상 위에는 문제의 사충서원 서독이 놓여 있었다. 경황 중에도 달준이 챙겼던 모양이다.
“이게 바로 그 서독이라는 것이군요.” 좌중은 모두 실물은 처음 보는 듯 돌려 봤다.
내용이며 서체가 조악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 따위 수준으로…쯧쯧.”
“꼴에 인장은 꽤 잘 판 인장이군.”
“이것을 조 (彫)라 부르면서 그리 귀한 보물로 여긴다지요.”
“자기들 깐에는 옥새처럼 여긴다더군.”
“아무튼 춘부장 변 대감이 사충 일유사 만나 이 사단을 해결한다고 했는가?” 이상적이 변원규를 쳐다보며 말했다.
“해결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지금쯤 가셨을 겁니다..”

부친이 비싼 장서 몇 질을 기부하고 은자 꾸러미가 건네질 모양이라고 원규는 짐작하고 있었다. 원규가 알기에 저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었다. 저들은 오늘 추사 추포계획을 변씨가에도 넌지시 미리 흘렸던 모양이었다.
“저도 나서겠습니다.” 흥선군이 나섰다.
“대감이 나서면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스승님과 내가 각별하다는 것 세상이 다 아는데 가만있으면 더 이상하죠, 이런 일 들이댈 때 나름대로 요령이 다 생겨났습니다. 허허”
좌중 모두들 같이 웃었다.
“그나저나 스승님, 정말로 불문에 출가 하시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누군가 물었다.
추사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오죽하면 스승님이 그러시겠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봐요, 특히 유자를 자처하는 우리 벼슬아치며 서원 패거리 하는 짓들을 봐요, 스승님이 공연히 그러실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니 더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흥선군 대감께는 누가 기별을 했습니까?”
“삼호당이라는 사람이 보냈다며 어느 서동이 전서구 편지를 가지고 구름재로 왔더군요.” 구름재는 운현궁 흥선군 집을 말한다. 금원과 흥선군은 아직 일면식이 없었다.

금원과 덕배 패가 부용사를 떠난 직후 태을 스님은 지필묵을 꺼내 작은 기름종이에 세필로 해동청 서신을 적었다. 엽전 크기로 접은 편지들 위에는 통인동 변대감, 가회동 박 규수, 그리고 운현재 등의 수신자와 행선지가 적혔다. 해동청매가 동대문의 연락책 에게 당도하면 서동들은 각처로 달렸다,

“용케도 댁에 계셨구료.”“요즘은 집에 꼬박꼬박 들어갑니다.”
다들 웃었다.
“이번 일이야 삼호당 덕에 이 정도에서 끝났지만 오히려 저들을 자극해서 앞으로 더 힘들어 질수도 있음입니다.”
“허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의기소침하게 되었다는 말이오, 엄연히 국법이 있는데 법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법을 어긴 이는 누구라도 발고를 하고…”
“말이야 쉽지, 말로는 뭘 못하겠나.”
이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결론이 나지 않을 의론이기에 마침내 스승이 나섰다.
“이제 그만들 하지, 자네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고 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또 금원에 대해서도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있음일세”

흥선군과 박규수 남병철 등 조금 늦게 왔던 제자들은 돌아갔고 젊은 오경석과 변원규는 놈들이 다시 집으로 찾아올지 혹 모르는 일이라면서 하룻밤 묵어가겠다고 건넛방에 들었다. 그리고 보니 양반들은 떠나고 중인들은 남았다.
추사는 책상 앞에 앉아 오늘 일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엄청난 하루였다.
안동 김문의 사충서원에서 자신이 봉은사에 자주 가고 경판 일을 돕는 것에 쌍심지를 돋우면서 방해하고 겁박을 주려하고 있다. 더구나 저들은 무엇 때문인지 무언가에 쫒기는 듯한 급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다.
오늘 효명세자 죽음과 관련한 일에 대해 다시 듣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 듯 싶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온 힘을 집중하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힘을 분산하면 뜻을 이룰 수 없는 법이라 했거늘…
추사는 붓을 들어 서탁 위에 있던 한지에 예서로 휘호했다. 전에 없이 손이 떨렸다.

일광출동 여왕월 (日光出洞 如往月)
옥기상천 위백운 (玉氣上天 爲白雲)
‘일광이 떠울라 골짜기를 비추니 마치 만월과 같고
옥기가 하늘에 오르고자함은 백운을 위함이니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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