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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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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제13회

안 동일 지음

이필의 고변

“이 상소문을 언제 발견 했다고 했는가?”
“지난해 큰 허 의원 서책을 정리하다가 발견했습니다.”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군. 하지만…”
“하지만 이라니요? 내용이 미덥지 않아서 그러시십니까?”
“내용은 나로서는 신빙성이 있다고 여기기는 하네만 너무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냥 덮어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특히 그 만동묘와 화양서원이 악의 소굴이라는데…”
“그럼 자네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소인은 일단 대감께서 이 일에 적극 관심을 가지시고 앞으로 명나라에만 자신들의 의리가 있다는 만동묘 화양서원 노론 벌열들의 면모를 색원하고 백일하에 드러내 척결하는 일에 적극 나서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왔습니다.”

추사는 이 대목에서 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감탄의 심정이 담겨 있었다. 갑자기 사투리를 거둔 것도 그렇지만 내용이 무척이나 당돌했다.
“나야 이미 늙고 힘없는 몸 아닌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꼭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대감마님, 만약 가능하시다면 상소에 나오는 소주방 주부와 서리, 그리고 내의원 제조와 부제조의 이름 특히 화양서원 만동묘와 연락을 맡았다는 의생의 이름과 행적을 수소문해 주십시오. 그러면 지가 찾아가서 어찌 한번 해보렵니다.”
추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었지만 왠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보아하니 단순히 부친을 신원하고 복수 하려는 것만이 아니었다. 청년은
‘노론 별열을 척결한다.’는 일에 자신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 보는 청년에게 상소문 초안 한 장 보고 덥석 그러자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인가?”
“그건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자네 태도가 매우 성숙해서 그러네.”
“순조 25년생, 서른둘입니다.”
“상당히 먹었군, 그런데 왜 그리 어리게 하고 다니고, 사투리를 일부러 쓰는가?”
“그래야 사람들이 경계를 하지 않지유.”추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깊이와 분별이 있는 청년이다.

신경을 썼더니 가슴에 동통이 밀려 왔다.
“자네 뜻은 충분히 알겠네, 하지만 알다시피 간단한 일이 아닐세. 차분히 생각 좀 해보도록 하세나.”
이필은 불만인 표정이기는 했지만 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 초안은 내가 가지고 있어도 되겠는가?”
“그러시쥬. 하지만 아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필이 흔쾌히 답했다.
그때 마루 곁에서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안에 계십니까?”
“차근히 함께 할 일을 논의해 나가세나. 며칠만이라도 내 집에 머물도록 하게. 그럴 수 있겠지?”
추사가 상소문을 서랍에 갈무리 하면서 필에게 말했다
“예, 그러지유.”
필의 표정이 밝아졌다.

“들어들 오시게나.”
추사가 밖을 향해 말했다.
일행이 추사의 서방으로 들어섰다. 이상적과 오경석, 변원규 였다.
천인 연희패에 이어 이제는 중인 역관 제자들이 스승을 지켜주러 달려온 모양이다. 이필은 일행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곤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박규수며 남병철 연배가 조금 있는 양반 제자들이 들어왔다.
책상 앞에 앉은 추사를 제자들이 위호하듯 앞에 둘러앉았다.
“무어 이리 호들갑스럽게 몰려들 오는가, 바쁜 일 하는 사람들이. 무슨 큰일 났다고…”
추사가 제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큰 일이 아니라니요, 이 보다 큰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상적은 두 손 으로 스승의 손을 만졌다.
“이만하시길 천만 다행입니다.”
“지금 나간 청년은 누굽니까?”
“그 청년이 바로 오늘 날 구해준 청년일세.”
탈패와 함께 나타났다는 남도 청년이군요.“
”남도는 아니고 충청도라는군. 내 남도 동무의 소개장을 가지고 왔어. 당분간 집에 머물게 할 생각이네.”
“예, 나가다 각별히 인사 다시 하겠습니다.”
“그렇게들 하게나. 앞으로 서로 교통할 일 있을 것 같기는 하네. 이름은 이필일세.” 경석과 원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행랑에서 길성 아범에게 오늘의 소동 전모를 들은 모양이다.
“양주패를 동원하고 우리한테도 기별을 해준 이가 삼호당 이었다면서요?”
경석이 확인하듯 누구에게 랄 것 없이 물었다. 제자들은 금원을 삼호당이라 불렀다. 그녀가 동무들과 시회를 열던 용산의 정자 이름이 삼호정이었다.
“그렇다는군”
“양주 연회패가 실제로는 바로 그 유명한 두물머리 향도계 아닙니까?” 원규가 말했다. 향도계는 상두계의 한자식 표현이다.
“자네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았나?”
“제 아비가 하는 말 들었습니다.”
“자네 춘부장 말씀이라면 맞을게여.”
원규의 부친 변광운 역관은 당대의 부자 이면서 세상사에 관심 많은 소문난 마당발이었다.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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