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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제9회

안 동일 지음

 편조스님과 과지초당

“아우 덕에 모처럼 내 눈이 호강을 하네 그려.”
쌀쌀하지는 않았지만 화로가 여럿 놓여 있어 상석에는 더 온기가 돌았다.
잠시 풍광을 눈에 두고 있을 때 술병쟁반을 든 금원이 사부작이 정자에 올라섰다.
나름 고심 끝에 골라 입었을 터 였기에 그리 화려한 복색이 아니었건만 원춘의 눈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항아선녀가 따로 없었다.
“자네가 그리 뵙고 싶어 하던 원춘 정희 형님일세.”
금원이 다소곳한 자태로 큰절을 한다. 십여년 만에 받아보는 점고였다.
원춘도 엉거주춤 고개를 숙여 응대를 했다.
막내 딸 뻘의 나이고 기녀 출신이라지만 제수씨 아닌가.
“제가 복이 많아 어르신을 이렇게 뵙게 되는 광영을 누립니다.”

그날 술은 달았고 음식은 잠자고 있던 미각을 다시 깨웠다.
추사는 모처럼, 아니 10년 만에 거나하게 취했다.
이날 술자리서 금원은 특별한 글 재주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원춘이 대정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에 대해 몇 마디 했고 동파의 적벽부 몇 대목을 원춘과 덕희와 함께 주고 받았을 뿐이다. 추사의 기억에 적벽부를 외우는 시기는 없었다.
그날 밤길 살펴드리라며 덕희가 딸려 보낸 마당쇠를 앞장세워 초옥으로 돌아오면서 원춘은 계속 적벽부를 흥얼거렸다. 어느새 금원의 가락을 배우고 있었다. 노장적인 내용의 유장한 시였지만 그날 원춘의 적벽부는 흥겨운 적벽부였다.
흥이 남은 원춘은 초옥에 돌아 와서 지필묵을 꺼내 일필휘지로 글을 썼다.
‘一讀 二好色 三飮酒’
첫째는 독서요, 둘째는 여자요, 셋째는 술이라. 쿡쿡 웃음이 나왔다.
한 번 더 썼다. 이번엔 사람들이 추사체라고 말하는 예서로 썼다. 제주시절 끝 무렵에 개발한 재미있는 필체다. 풍자와 은유에 적합한 글씨체 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호 적벽의 풍류와 호사는 그날이 끝이었다. 모두 호시탐탐 꼬투리를 잡으려는 안동 김가들 때문이었다.    그날 주연이 있었다는 얘기가 새나간 모양이었다. 원춘의 초옥 앞집에 사는 우포청 나졸이 장김의 끄나풀이었던 모양이다. 주연이랄 것도 없는 다담상 규모의 작은 술자리 였음에도 심히 과장 돼 기생 연회를 했다고 말이 퍼진 모양이었다. 안동소배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원춘을 다시 벌 줘야 한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안동김가 에게 추사는 눈엣 가시였고 위협이었던 것이다. 특히 저들은 추사 주변으로 사람이 모여 드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다행히 실제의 상황이 소명 됐고 원춘 쪽 사람들이 나서 적극적으로 움직인 덕분에 원춘 에게는 큰 일이 생기지 않았지만 덕희는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급기야는 변방 외직인 의주부윤으로 좌천되기 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삼호정은 그 뒤 갈 수 없었고 금원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 원춘은 또 북청으로 유배를 가야 했다. 역시 안동 김문의 무고 때문이었다. 새 임금과 먼저 임금의 촌수가 격에 맞지 않는다는 바른 소리를 한 것이 꼬투리였다.

북청 유배는 다행히 1년 조금 넘는 짧은 기간이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원춘은 이곳 과천 주암리 瓜地草堂(과지초당)으로 들어왔다. 초당은 부친이 생전에 가끔 찾았던 별장으로 당신의 묘소도 초당 뒤쪽에 있었다.
겉으로나마 모처럼의 평온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런저런 과거를 반추 하면서도 금원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는데 제망부가를 접하면서 새록 떠 올랐고 그 글이 금원과 추사를 다시 이어주는 끈이 됐던 것이다.
마침내 금원이 도착 했다. 아침 차 맛이 유난히 달았던 날 이었다. 모처럼 전각도를 꺼내 돌에 댔는데 유난히 소봉래의 來(래)자가 멋들어지게 파졌던 날 이었다.
그녀는 개량한 잿빛 승복을 입고 아랫마을 사는 여자아이 하나를 앞세워 초당에 도착 했다.
마침 마당에 나와 있을 때 그녀가 들어섰다.
“어서 오시게”
온화한 목소리로 그녀를 맞았다.
“금원이 왔습니다. 어르신.”
마치 자신의 집에 온 듯 정겨운 목소리를 내는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띠어 있었다.
마루에 오르자 그녀가 인사를 올리겠다고 했다.
원춘은 그녀를 자신이 서방(書房)으로 쓰는 큰방 으로 들였다. 당초는 그녀를 묵게 할 건너방으로 먼저 안내할 생각이었다.
서책이 놓여 있던 탁자를 한 켠으로 밀어 내고 마주 앉았다.
금원이 다소곳이 큰절을 했고 원춘은 반배로 답했다.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일이 많으셨지요.”
사실은 두 번째 보는 셈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모두 격조하기 이전에는 자주 봤던 것 같은 절친한 태도로 서로를 대했다. 실제 두 사람의 느낌이 그랬다.
“자네야 말로 얼마나 신고가 많았나?”
원춘의 말투는 그때 삼호정에서 금원이 우겨 그리 정한 일이었다. 제수보다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덕희도 그게 좋겠다고 했다.
“신고라니요? 어르신이 저희들 때문에 겪은 간난에 비하겠습니까?”
“왜 자네들 때문인가? 시절이 하 수상하니 그렇지.”
“그래 시랑의 일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리 급작스레.”
시랑은 덕희의 자 였다.
“저도 임종 못했습니다. 흉통을 호소하더니 졸지에 숨을 거뒀다고 하더군요. 심장 급환이었던 모양입니다.”
도희의 심통도 다 장김의 전횡 때문에 생긴 울화였다는 얘기는 추사도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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